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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May 27. 2022

모든 욕망에는 책임이 따른다

욕망과 소망의 차이


▲욕망과 소망은 한 끝 차이



얼마 전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욕망보다 소망을 많이 가지고 살고 싶어. 욕망은 항상 날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욕망이 아닌 소망? 두 단어를 평소에 구분해 본 적 없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둘 다 뭔가를 바라는 마음이긴한데 어감이 달랐다.


욕망은 어두운 분위기가 강했고, 소망은 하얗고 맑은 느낌이었다. 단어가 주는 뉘앙스 때문일까 해서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소망: 어떤 일을 바람. 또는 그저 간절히 바라는 것 (기독교 성경에 자주 나오는 표현임 / 선한 신의 뜻이 이뤄지기를 바람)
 욕망: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의미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소망이 나의 소유와 상관없이 착한 마음으로 어떤 선한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면, 욕망은 다른 것보다 오직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대로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둘은 뭔가를 바란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그 근본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결국 둘의 끝도 큰 차이가 난다.


물론 살면서 매번 두 마음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분별이 가능하다. 지금 내 마음이 둘 중 어디에 더 가까운지 말이다.


필자의 생각에, 둘을 구분하기 위해선 이 세 가지를 항상 생각해 봐야 한다.


첫 번째는 목적이다. 내가 지금 그것을 바라는 목적이 무엇일까?이다. 단순히 내 배 채우기 위함일까? 아니면 누군가를 돕고 달래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일까? 그 바람의 근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감정이다. 그것을 바라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 감정에 나는 떳떳한까? 그리고 그것이 이뤄졌을 때 그 감정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 감정도 책임질 수 있을까? 까지 생각해 본다.


세 번째는 영향력이다. 그것을 바라고 이룸으로써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이다. 누군가에게 혹은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혹 내가 생각한 방향이 아니라 다른 영향을 주진 않을까? 등을 고민해 본다.


만약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그건 소망보다 욕망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기에 다시 한번 마음을 점검해 본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매 순간 소망만 가지고 살아갈 순 없다. 때론 욕망에 이끌려 충동적인 선택을 하고, 시간을 헛되게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경험을 통해 무엇을 깨닫고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이다. 욕망과 소망은 한 끝 차이라 수시로 왔다 갔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자주 들여다 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지금 그것을 바라는 이유는 뭘까?" 




▲모든 욕망에는 책임이 따른다


지난 일요일 아침, 잃어버렸던 이어폰을 찾기 위해 아침 일찍 양재역 스타벅스에 들렀다. 햇살은 밝았지만 약간 무더운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 배를 채우기 위해 모닝빵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도림천 벤치에 앉았다. 햇살이 물에 씻기듯 흘러가고 있었다. 앉은지 한 5분쯤 흘렀을까 갑자기 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시원한 콜라 줄까?"


할머니는 도림천 근처에 간식 매대를 설치한 채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그는 지나가면서 쉬는 이들에게 물도 건네고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웠다.


어쩌면 참 익숙한 모습인데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일, 이젠 그 일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돼 버렸으니까.


잠시 후, 큰 쓰레기봉투를 든 또 다른 할아버지께서 다가왔다. 그는 내 옆에 놓인 음식 포장지를 보며 말했다.


"여기다가 버려요. 내가 버려줄게."



두 분은 합심이라도 한 듯 서로 쓰레기를 자기가 가져가겠다며 정리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저런 마음의 여유, 타인의 욕망을 주워담을 수 있는 책임감이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다수의 욕망을 주워 담는 소수의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다수는 욕망 표출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에 대한 책임과 결과에 대해선 깊게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길가에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와 꽁초들,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 환경을 고려치 않고 무분별하게 지어진 건물들, 남겨질 이들은 생각지도 않고 가볍게 벌인 일들,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만난 후 방치된 수많은 관계들 등이 모두 그렇다.  


우리 모두, 각 개인이 자신의 욕망만이라도 책임지고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더 깨끗해지지 않을까? 예전에 한 어르신이 뉴스를 보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떤 부모가 부양 능력이 없지 있었음에도 낳은 아이를 돌보지 않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기억한다.  


"애를 싸질러 놓았으면 어떻게든 악착같이 라도 키워야지. 참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슬프다 슬퍼."


부모에게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욕망의 결과에는 생각보다 큰 책임이 따르고 때론 누군가의 생명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잘 다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우린 무수한 욕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욕망은 타인을 통해 주입되기도 하고 어떤 정보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욕망의 수에 비해, 그에 따른 대가를 책임지고 무게를 견디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가 꼭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욕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욕망을 표출하고 그에 따른 결과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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