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 Sep 03. 2022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

내가 품고 싶은 것들



"내가... 상황이 정말 안 좋아서 그런데 한 3~4만 원만 보내줄 수 있겠나? 밥도 못 먹고 그래서... 진짜 미안하다."


두 번째였다. 평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중학교 동창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온 건. 친구는 사채업자에게 빚을 지고 집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간절하고 처량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여러 감정이 들었지만, 일단은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다 있을 수 있다. 그 정도는 괜찮으니 붙여줄게. 힘내그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나는 "힘내라"는 건조한 메시지와 함께 4만 원을 붙였다. 4만 원 정도야 내게 당장 없어도 괜찮은 돈이지만 그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만약 금액이 조금 더 컸더라면 분명 나는 고민했을 것이다)


사실, 처음 연락이 왔을 때는 돈을 보내지 않았다. 부담되는 액수이기도 했고, 카톡만으로 대화를 해서 그런지 그의 사정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무언가에 엄청 시달린 듯한 목소리였다.  


통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러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연극배우 생활을 하며 잘 지냈는데 어쩌다 사채까지 지게 된 걸까. 남일 같지 않았다.


만약 나였다면 누구에게 연락할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고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인간이 한심하고 팔자가 처량해서 큰 빚을 지고 길바닥에 나 앉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이다. 세상에 빚 한 번 져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기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그게 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런 상황을 목격할 때면 나는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줄어드는 유대감에 대해. 그리고 늘어가는 무관심은 어느 정도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인간의 이기심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인지. 알게 모르게 정신적 고통으로 병들어가는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이를 위한 자본과 인력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는 언제까지 효력을 다할 수 있을디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게 그런 환경에 처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고, 때문에 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난 한 고등학교 동창이 빚에 쫓기다가 압박감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은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요즘, 내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예민하게 느끼려 한다. 글로 써서 남기기 위함도 있지만 의미를 찾기 위함도 있다. 삶에는 정말 많은 순간들이 있다. 평생을 함께한 노부부의 꼭 잡은 두 손같이 아름다운 광경부터, '빌어먹을'하고 감탄사가 나오는 고통스러운 일까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있지만, 색다른 일탈도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사건도 있다.


그런 삶의 순간 순간을 기록하려는 노력은 갈수록 죽어가는 몸의 세포들, 그리고 세속의 연기 속에서 점점 흐려지는 정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나는 나의 뇌가 무관심과 친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이 글을 쓰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린, 젊지만 젊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