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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Oct 19. 2022

[끈기의 미학#2] 생존을 위한 글쓰기

끈기는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다


무언가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일을 하며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몸이 지쳤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것. 이런 순간엔 고통을 피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불편하고 짜증이 나다 못해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이렇게까지 하면서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리는 원래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만약 고통을 견뎌야 한다면 이성을 백번 발휘해 그걸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동기부여라고 부른다.


근래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에 성공한 이들의 동기부여에 대한 영상들이 많이 올라온다. 이는 성공에 있어 동기부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글쓰기를 할 때 동기부여가 꼭 필요하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왜 쓰고 있을까? 회사일이라서 돈을 벌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써야 하는 거라면 고민이 차라리 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글을 쓰는 나만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앉자마자 금방 엉덩이를 떼게 된다.


"생각이 안 나. 이게 무슨 (강아지) 소리지?"


때론 내가 쓴 글을 보고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 의식의 흐름을 끌어오든,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든, 잠시 머리를 식힌 후 다시 시작하든, 정답은 없다. 유일한 방법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자리에 앉아 쓰는 것이다.


나의 글쓰기 동기는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서'다. 하루에도 수백 번 드는 복잡한 생각들을 털어내기 위해. 끝없이 내리는 생각의 빗방울들을 주기적으로 비워내지 않으면 나는 이미 미쳐버렸을도 모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더미에 깔려 죽을지도...


결국 내게 글쓰기는 살아가기 위한 생존 수단 중 하나다.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안에서 정돈이 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든 글의 소재를 찾는다. 치졸하고 구차할 정도로 말이다. 직장에서 있었던 일, 모임에 나가서 들었던 이야기, 책에서 찾은 지식들, 친구가 말하는 은밀한 비밀 얘기까지, 모든 것들이 글의 소재가 된다. 


짜낸다. 과즙을 짜듯 모든 경험들이 문드러질 정도다. 갑자기 떠올라서 쓰는 글은 없다. 누구라도 만나서 들어야 하고, 뭐라도 찾아서 읽고 봐야 한다.


  

천재가 아니라면, 매일 아이디어가 솟구쳐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태생부터 끈기가 있어서 어떤 일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끈기의 미학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어떻게든 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할 뿐이다.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완전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묻지 않는다." 니체는 말했다. 대신 “우리는 마치 그것이 마법에 의해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현재의 사실만을 즐긴다.”
"아무도 예술가의 작품 속에서 그것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지 못한다." 니체는 말했다. “그 편이 나은 점도 있었다.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경우에는 언제나 반응이 다소 시들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 니체가 말했다. “왜냐하면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릿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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