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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Nov 04. 2022

창작의 시작은 참사였다

세월호, 그리고 이태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8년 전이었다. 차디찬 바닷속으로 앳된 아이들이 사라져 버린 건. 그 후 나는 한동안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그땐 내가 좀 예민한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재난이나 참사를 겪으면 누구에게나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었다. 이런 증상의 여파는 이번 이태원 참사 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창작의 시작은 참사였다."


세월호 사태가 있은 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다만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들을 털어내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거대한 감정의 물살에 휩쓸려 잠겨버릴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가슴 안에 쌓인 숱한 감정들을 털어낼 길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살아오며 공감받지 못했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그러다 보니 아픈 일에 더욱 마음을 쏟았고, 그들에게 공감함으로써 나도 함께 위로받았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울적해진다. 그리고 아이들을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이런 일을 겪으니 허망하기도 하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나라에서 수많은 꿈들이 그리고 누군가에겐 삶의 이유였던 존재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이들과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아파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떠난 친구들이 하늘에서는 부디 평안했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분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남깁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세월호 참사 추모시(詩)>

그래서 돌아오지 못하나 보다
-글로 나아가는 이

아이들은 꽃인데
꽃은 땅에 심기면
다시 피어나기 마련인데

땅이 아니라
바다에 묻혀서

그래서 꽃은 다시 피어나지 못하나 보다

그런데 해는 떠올랐다
해가 바다에서 떠오르는 걸 보니
이제 와서 보니

아이들은 꽃이 아니라
해였나 보다

<2014년 4월의 어느 봄날>

<이태원 참사 추모詩>

검은 가을
-글로 나아가는 이

축제가 끝났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잎새들에 물었다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왜 떠나갔느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조차 너무 무거워
흔한 한숨도 담을 수 없었을테니

차가운 폴리스라인
바람 하나 지날 수 없었던
좁디좁은 골목길에서
황량한 숨을 내쉰다

이렇게 뱉기만 하면 되는데
왜 그럴 수 없었을까

차라리 황량했더라면
나았을까

이태원, 그 좁은 골목길
낙엽 하나도   
지나길 허락할 수 없는

가을, 그 검은 가을

<2022년 11월의 어느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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