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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Nov 13. 2022

글쓰기, 그 가볍고도 무거운 행복에 대하여

뜨거운 심장을, 차가운 현실에 담아


뭘 써야 할까? 무얼 느껴야 할까?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공감 가는 이야기를 쓸 순 없을까? 요즘 많이 하는 고민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등 꽤 많은 작품을 읽었다. 내가 느낀 이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어둡고 현실적이라는 것. 그렇지만 한편으론 밝은 미래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다는 것.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왜 그런 이야기를 지어내야만 했을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 또한 삐걱거리고 불안한 삶을 살았을 텐데, 왜 시간을 쪼개고 쪼개 이야기들을 쏟아낸 걸까.


생각이 난 김에 나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나란 인간이 계속해서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


예전에 한 번 고백했었다. 살기 위해 쓴다고. 글을 쓰는 시간 외의 내 정신은 대부분 죽어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혼란스럽고 냉혹하기에 글쓰기로 하루 혹은 내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정리해 놓지 않으면 마음은 수시로 무너지고 만다. 그렇게 믿기에 그리고 그렇지 못했을 때 그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위로받고 싶어서다. 어린아이처럼 한 없이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 성숙하지 않고 바보 같이 솔직하고 싶은 순간이. 적어도 쓰는 순간에는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현실이란 세상엔 견뎌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그렇기에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우린 어른이 되어 간다. 하지만 아주 조금 일부분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아름답든 망가졌든 이 세상의 순수한 목격자인 어린아이로 남고 싶다.    


가끔 아주 정말 가끔, 내 쓴 글이 가슴을 찌른다. 알 수 없는 말들로 가슴에 가득 찬 고름들을 콕 찌른 듯한 느낌.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오래 잠겨있던 마음의 문을 열어준 것처럼.


이렇게 적고 보니 난 참 결핍이 많은 인간인 것 같다.





▲뜨거운 심장을, 차가운 현실에 담아


가끔은 혼란스럽다. 슬픈 노래를 듣고 아름다운 영화를 볼 때 차오르는 감정이 정말 이 뜨거운 가슴 때문인지. 때론 거짓말 같다. 순식간에 타올랐던 감정이 한순간에 잊혀가는 걸 보면.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우울은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현실의 괴리감에서 오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뜨거운 가슴의 온도를 낮추거나 차가운 현실에 더욱 익숙해져야 한다.



난 그런 세상처럼 양면성을 모두 품은 글을 쓰고 싶다. 아프지만 위로가 되는 이야기. 그냥 내 얘기 같아서 잠시 들어봤는데 너무 깊숙이 스며들어 버리는.


멀리서 바라보면 핏기 하나 없는 아스팔트 같은 세상이지만, 그 위를 걷고 있는 어떤 사람의 발에는 또 간절한 사랑이 담겨 있다는 걸 믿게 되는 이야기.


뜨거운 심장을 차가운 현실에 담고 싶다. 그럼 언젠가 둘 중 하나는 무너지겠지. 하나가 하나를 집어삼키고 말겠지. 하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그건 뜨거운 심장이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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