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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Dec 07. 2022

때론 집돌이라도 괜찮아

끝없이 뭔가를 하고 있는 당신에게


나에겐 한 가지 강박이 있다. 삶에 필요하지만 때론 날 아주 곤혹스럽게 만드는 녀석. 최근에는 녀석의 힘이 더 세졌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나를 더 옭아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생산적이어야 해. 머물러 있는  나약하다는 증거이며 생존하지 못하면 결국 버림받게 돼."


조금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요 며칠 고민하고 주변 대화를 나눠결과, 분명 나는 이런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근 1년간 주변 사람들에게서 주로 들었던 말은...

 

"정말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바쁘다고 들었어요."

"시간 없지 않으세요?"
"어떻게 계속 뭘 하세요?"  


이었으니.



좋게만 생각했다. 빈틈없는 삶이라 만족스러웠다. 난 늘 에너지가 넘치는구나 자만하며 집 안에 퍼져만 있는 이들을 한심하게 바라본 적도 있었다. 그렇게 많이 지친 날에도 이건 뇌가 지친 거라며 몸을 밖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 맞이한 몇 번의 번아웃은 나를 집돌이로 만들어 버렸다. 12월 5일만 해도 그랬다. 간만의 연차임에도 난 또 무언가 생산적인 걸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날 보며  말했다.


"아니, 그냥 집에 있어."

 

며칠 고강도의 운동과 잦은 약속으로 몸이 지쳤음에도,


"그래도 운동은 해야 하지 않을까. 어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글거리를 찾거나 예전에 보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영화라도 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 그냥 가만있어. 있다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 해. 그러다 그만해도 좋아. 그냥 잠들어도 좋고. 오늘은 그냥 집돌이로 있자."


 쉼이 절실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끝없는 생각마저도 멈춰야 한다고.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너의 존재를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니까. 그만해도 괜찮다고.


한편으론 궁금했다. 내가 계속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뭘까? 이건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같이 근본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결핍을 채우기 ? 생존하기 위해? 매력적인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나조차도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한 가지 확신은, 지쳤을  몸과 생각 둘 다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가장 편안한 장소에 머무르며 오직 내면의 소리와 침묵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걸 자유롭게(멈춰도 괜찮다)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난 소위 집돌이,  집순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번 집돌이가 돼 보고 나니 이젠 알 게 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짊어진 긴장들을 모두 내려놓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어쩌면 집돌이, 집순이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 밖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아부은 후 집에 돌아와서는 장렬히 전사하고 마는 것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물론 이건 뇌피셜이다)


아무튼 이제서라도 내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게 돼서 참 기쁘다.


"집돌이가 돼도 괜찮아. 정말이야. 정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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