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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Jan 27. 2023

명절의 재탄생

좋든 싫든, 가족과의 시간은 내 삶의 배경이 된다

편안하고 즐거운 설 연휴가 흘렀다. 취업을 하고서 두 번째로 맞은 명절. 긴 휴일이 끝나니 아쉬운 마음만 한 움큼 남았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마음을 다 잡아본다. 일상을 견디는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다시금 힘을 내본다.




▲명절의 재탄생


설날 가족들이 모인 술상 앞, 아버지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새 명절은 예전 같지가 않다니까.(경북 사투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예전'은 북적북적했던 과거의 명절을 뜻했다. 약 15년 전쯤(2000년대 초반) 그 시절의 명절을 떠올리면, 지금과는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때엔 명절이면 대청마루가 있는 친할아버지댁에 모여 모든 식구가 다과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전을 굽고 제사를 드리고 성묘에 다녀와 저녁에는 함께 고스톱을 쳤다. 그리고 떠나는 날이면 아쉬움에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물론 이건 어린 시절 나의 기준에서다. 당시 어머니가 느낀 시댁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분명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친가로 향하는 발길은 뚝 끊겼다. 어른들만 아는 어떤 사건 때문이었다. 아마 대다수의 가족은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 오래전 일이라 이젠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 친가와의 추억은 점차 흐릿해져 갔고, 비로소 나의 1세대 명절은 종말을 맞았다.


종말... 종말이라고 하니 좀 슬프기도 하다. 차라리 시대의 변화니 공동체 문화의 상실이니 가족 해체니 하는 말로 포장하는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모쪼록 이후 내 삶의 2세대 명절이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면 성인이 되면서 독립을 하고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의 명절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일생을 도시에서 살아오신 외할머니는 2011년경 시골에 집을 지어 귀농하셨다. 굽이 굽이 첩첩산중, 밭과 계곡이 있는 충청북도. 이때부터 명절이면 우리 가족은 외가 식구들과 함께 그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넓은 집과 단독 마당은 가족들이 편히 쉬다 가기에 딱 좋은 공간이었다. 제사나 차례도 지내지 않았다. 연휴는 온통 가족끼리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얘기를 나누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되려고 된 일인가 싶기도 다. 어린 시절 약 20번의 명절을 주로 친가에서 보냈지만, 성인이 된 후부터는 10년째 명절을 대부분 외가에서 보내고 있으니까. 물론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건 아니다. 그저 그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는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명절의 가치가 계속 보존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먹하고 불편했던 식구들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꼭 봐야겠다는 마음이 드니까. 언젠가는 모두를 맘 편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 행복하고 감사한 추억들


일상을 살다가 힘이 들 때, 바쁜 삶 속에서 뜻밖의 여유가 생겼을 때, 돌아가 안길 수 있는 품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만약 그게 가족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세월에 어떤 일들이 있었든 명절의 추억은 모두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람은 지난 추억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아름답게 포장한다는데,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친가에서의 추억들


-대청마루에 한쪽 귀를 대고 누워 마당에 비췬 햇살을 바라보았던 기억.

-낮잠을 자는 아버지 옆에 누워 코 고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던 기억.

-큰어머니와 어머니께서 부친 고구마전을 빼내와 큰방에서 몰래 먹었던 기억.

-친할아버지의 방에 걸려 있는 친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겼던 기억.

-할아버지댁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를 주워 맛있게 먹었던 기억.

-조금 자라 고학년이 된 나에게 다 큰 어른이 된 큰 사촌형이 10만 원의 용돈을 쥐어주었던 기억.

-일련의 사건으로 10년을 찾아뵙지 못했던 친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 장례식장에서 아버지께서 펑펑 우시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작은 사촌형의 장례식날, 온통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있던 친가 식구들의 모습.



가에서의 추억들


-외삼촌의 차를 타고 외할머니댁으로 향하는 길, 삼촌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기억.

-외할머니댁 뒷마당에서 가족들과 함께 솥뚜껑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별을 구경했던 기억.

-외할머니와 지역 시장에 가서 장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기억.

-식구들과 함께 김장을 했던 기억.

-외삼촌, 아버지, 이모부와 함께 할머니댁 마당 벌초 작업을 했던 기억.  

-매번 티격태격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은 누구보다 진한 국물 같은 시간. 그 시간을 바라보았던 기억.



떠올려보면 내 안에는 가족들과 함께 한 많은 추억이 깃들어있다. 내 삶의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날들. 그 시간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니 잊었던 나의 명절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든다. 명절의 재탄생이다.


앞으로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이 명절이라는 시간을 좀 더 뜻깊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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