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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Feb 05. 2023

제부도 바다에서

만약 우리가 헤어진다면 그건 저 파도가 멈췄을 때


1.  

제부도 바다에서 너를 그렸다. 가끔씩 삶이 지칠 때면 찾아가곤 했던 그곳 푸른 섬에서. 네가 떠난 뒤 혼자 남겨진 내 맘에는 자주 파도가 쳤다.


하루에 3번 바닷길이 열릴 때마다 네가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라진 너를 찾고 싶었다. 만약 네가 다시 온다면 그리고 이 바닷길이 닫히면, 나는 바다의 신에게 빌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바닷길을 영영 닫아달라고. 내 모든 삶이 다 고립되어도 좋으니 너와 함께 영원히 머물고 싶다고.   





2.

섬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하나밖에 없다. 너에게 닿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어도 곧장 그 길로 가는 것. 다른 목소리는 듣지 않고 오직 네 숨소리 하나만 쓰다듬으면서 너를 꼭 끌어안는 일. 억만 겹의 파도를 견디며 살아온 네가 안길 수 있는 포근한 햇살이 되는 일. 그리고 네가 만약 세월의 밀물을 따라 잠겨야 한다면 기꺼이 너와 함께 침몰하는 일.      





3.

만약 우리가 헤어진다면 그건 별 것 아니지만, 꽤 오래 우리의 맘 속에 남아 있던 말들 때문일 거야. 하지만 그러더라도 그 안을 함부로 헤집지는 말자. 그땐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이 바다 내음에 바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을테니.


아무도 열어보지 않더라도 그래서 먼지가 쌓이고 조금 얼룩지더라도 네가 찾아와 주었던 그 시절을 간직할게. 나를 울리는 저 파도처럼 언제나 변하지 않고 여기 서 있을게.


만약 내가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파도가 멈춰서일 거야.


-글로 나아가는 



2023년 2월 5일 제부도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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