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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Jan 21. 2024

문득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

기시미 이치로의 '지금이 생의 마지막이라면'을 읽고


설령 네가 3000년을 산다 한들, 30000년을 산다 한들 기억하라. 누구나 지금 사는 삶 외에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며 지금 놓쳐버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오래 살든, 짧게 살든 사는 것은 똑같다는 말이다. 


지금이란 시간도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며 놓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금을 놓치는 것은 순식간이다. 과거와 미래의 삶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있지도 않을 것을 어떻게 놓칠 수 있단 말인가(2.14) 


-청년 아우렐리우스, 지금이 생의 마지막이라면 中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살아야 할까?" 먹고살기도 정신없는데 이런 생각을 할 시간이 어디 있겠냐마는, 난 이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꽤나 많이 던지는 편이다. 시기의 차이만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생각을 하는 때가 온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삶의 한 시점에서 이 같은 질문을 마주한다면 우린 어떻게 답하고 스스로의 삶을 이어나가야 할까?


저자 '기미로 이치로'는 수천 년 전 18세의 어린 나이에 황제로 직위해 궁정 생활을 영위하며 삶의 깊은 고민을 했던 청년 아우렐리우스의 기록들을 묶어 놓았다. 하나로 잘 정리된 내용은 아니지만 인간관계, 삶과 죽음에 대한 짧고 그의 강렬한 글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고민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래전 읽었던 미움받을 용기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다시금 묵직한 삶 자체의 동기부여를 받은 느낌이다. 




★ 오직 지금, 지금 여기에 현재를 살 것



일을 하고 먼 미래를 계획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다. 클릭 한 번이면 미래를 점치는 수많은 이야기들, 나와 큰 연관이 없고 내 삶을 바꿀 수도 없는 너무 많은 정보들까지. 삶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일과 내가 마실 수 있는 공기. 풍경. 그리고 안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믿는 신념까지. 이들이 훨씬 중요하다. 이거 하나만 보고 하나씩 하나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절실하다. 마치 농부가 자신에게 주어진 땅을 자연의 흐름에 따라 경작하고 돌보아 나아가듯. 


일이 잘 돼도 하늘의 뜻이며 잘되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고 그저 다음을 기약하며 노력하는 자세. 어쩌면 청년 아우렐리우스가 바랬던 삶도 그런 삶이 아니었을까. 





★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나간 일은 잊으며, 미래는 희망을 가지라



어른이 되었다고 하는 3~40대까지도 삶의 이유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몸은 다 자랐지만 마음은 어린아이 같은 경우도 많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대다수 이럴수록 더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오히려 그런 마음은 자신을 질책하고 자괴감에 빠지게 할 때가 많다. 


"도움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7.7)" 


그보다는 자신이 완벽하거나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지는 편이 훨씬 자유롭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편하게 요청하고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언제든 도움을 건네줄 수 있는 삶. 오히려 사회 전체를 봤을 때, 그런 삶이 더 완벽에 가까운 세상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청년 아우렐리우스의 고뇌와 삶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청년의 이른 나이에도 전장과 궁정을 오가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던 사람. 물질 만능주의와 정보의 바닷속에서 갈 길을 몰라 길을 헤매고 있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얘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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