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매칭캠프에서 결혼할 여자를 꼭 만나야 한다. 인구문제로 심각한 시기에 짝이 없어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위법한 일이기도 해. 정부의 지원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다는 것을 너도 알잖니! 당국이 개입하지 않도록 신경 쓰기 바란다. 강제 매칭되는 일은 없어야지."
"알았어요"
나 체로는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방에만 있지 말고 친구를 만나든, 여행을 가든, 밖에 좀 나가라. 모니터 앞에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
"우리는 갈 테니까 매칭캠프에 입소할 때 연락해라."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고, 함께 있던 중년의 여성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나 체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힘내"
"알았어요. 엄마"
두 사람이 가고 난 뒤, 나체로는 한동안 텅 빈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물속에 가라앉는 기분이랄까? 사방이 너무 어두워서 방향조차 찾을 수 없고, 팔다리를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지만, 헤어 나올 수 없는 감정 속에 휩싸여 있었다.
창가에 둔 아펠란드라 뒤로 빗소리가 들린다.
나 체로는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그는 타인에 대한 회피성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생활에서 오는 거절, 상실감, 모욕감 등, 타인과의 관계 스트레스가 외출을 꺼리게 되는 이유였지만, 그의 소극적인 일상은 무력감에서 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말뚝에 묶여 자란 어린 코끼리는, 성체가 된 후에도 말뚝에서 도망가지 못한다고 한다.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노출되고, 좌절이 반복적으로 학습되다 보면, 그 상황에서 도망칠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자포자기 심리상태가 되는데, 바로 무력감인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렸던 그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것은 자신의 처지를 회피하려는 감정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무력한 자신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그는 쏟아지는 빗속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들을 지우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런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 있었다.
[134340]
아이러니하게도 숫자로 된 카페 상호명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다. 생선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고양이처럼, 이끌리듯 카페 출입문 앞으로 다가갔다. 보통은 유리문이라서 실내가 보이기 마련인데, 여기 문은 손잡이가 없고, 작은 쪽창 달린 게 전부라서, 실내를 보려면 타조처럼 고개를 길게 내밀어야 했다.
전기차 지나가는 소리라고 해야 하나? 뭐, 그 비슷한 소리가 들렸고, 미닫이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란 나 체로가 뒷걸음질 치다 균형을 잃어 넘어질 뻔했다. 의도치 않던 몸개그가 어색했는지 시침 뚝하고 안으로 들어간 그는, SF영화 속에 빨려 들어간 것 같은 실내 분위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닥은 행성의 지표면 같았고, 천장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났으며, 홀 인테리어는 우주선 내부처럼 꾸며져 있어서, 나 체로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미어캣처럼 한동안 두리번거리던 그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받아 들고, 배변하려는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맴돌다 테라스 벤치에 무거워진 몸을 맡겼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도 없었고, 어닝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듣기 좋았지만, 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세련된 음악이 더 좋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앱 하나를 선택했다.
"나 체로님, 반가워요. 잘 지내셨죠?"
AI가 말을 걸어왔다.
"응, 반가워."
"기분이 우울해 보여요."
"내가 보여?"
"바이오 리듬이 그렇다고 하네요. 호호"
"사실은 좀 힘들어"
"이유를 물어봐도 돼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사는 게 어렵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24시간 음성데이터를 검색해 봐도 될까요?"
"음... 그래"
"부모님이 다녀가셨군요. 매칭 때문에 가족들 모두가 걱정이 많을 것 같네요. 이번엔 잘 될 테니 힘내세요"
"고마워...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네, 얼마든지요."
"음... 너에게 이런 말을 하기가 좀 쑥스럽네"
"......"
"연애를 하고 싶어. 매칭 프로그램 이런 거 말고, 벼락 치는 운명처럼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하고..., 나만의 욕심일까? 나이가 들수록 누구를 사귄다는 게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대답하기 곤란하지?"
"생각 중이었어요. 근데, 벼락 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응?"
"농담이에요. 시랑 하기 좋은 나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사랑에 빠진다면 모든 게 해결될 문제처럼 보이네요. 몇 가지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알려드릴 테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성과의 만남은 첫인상이 중요해요. 짧은 순간, 상대에게서 느낀 시각적 이미지가 폴라로이드 카메라처럼 기억에 남게 되는데, 호감 가는 이성일수록 그 이미지는 더 오래가죠."
"첫인상?"
"네, 첫인상의 호감도를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레벨 1부터 10까지 단계를 기준으로 한다면, 8 정도 상태일 때, 포커스 현상을 경험하게 되죠.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밝고 깨끗한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포커스 현상..."
"호감 가는 이성과 눈이 자주 마주친다면, 첫인상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는 시그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하지만, 첫인상은 좋은 감정일 뿐, 이성의 마음을 얻었다고 하기엔 부족해요.
이성의 마음을 얻으려면 대화가 중요해요. 관심, 취향, 성향 등의 유사성을 찾았다면 그것을 화제로 이야기하세요. 대화의 핵심은 바라보기와 티키타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성의 눈을 바라봐 주고, 공감해 주는 거 잊지 마세요.
상대가 마음에 들면, 이런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테니까 여기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돼요. 상대의 반응을 잘 살피다 보면,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느낌, 예를 들어 설렘, 떨림 같은 감정들이 생길 텐데, 이때 관계발전의 중요한 포인트가 적절한 스킨십이에요"
"스킨십?"
"호호, 네 스킨십이요. 작은 스킨십 만으로도 상대 마음에 큰 울림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상대가 스킨십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시그널 해석이 잘못된 거니까 조심해야 돼요. 속도를 늦추고, 상대방의 반응을 잘 살피면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얻게 되실 거예요. 꼭, 사랑에 빠지시길 바랄게요."
0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