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03

by 진혁

실내는 저항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나뒹굴었고, 쓰러져 있는 경비요원들의 목에는 하나같이 짐승에게 물린 듯한 상처가 있었다. 진대표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뱀파이어의 흔적을 보게 되다니, 나비서는 손에 잡힐 듯한 공포에 소름이 돋았다.

보안잠금장치 때문에 차 바오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한 나비서는 테이저건을 들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갑자기 꺼져 버리는 전등.

건물 전체가 암흑천지로 변해 버렸고, 비상용 전등만이 바람 속 촛불처럼 위태롭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당황한 나비서가 방향을 잃고 허둥거렸다. 희미한 전구색 비상조명에 의지하다 보니, 신경이 가시처럼 곤두섰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요동쳤다.

식은땀이 흘렀다.

젖은 손을 번갈아 바지에 닦다가, 빛 사각지대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검은 형체와 맞닥뜨리게 된다. 오페라 소프라노의 클라이맥스 고음 같다고 해야 할까? 나비서의 비명이 정적을 깨뜨렸다.


"나와!"


테이저건을 조준하고 있는 나비서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검은 형체는 장발의 젊은 남자였다.


"누구세요?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요!"


예상했던 차 바오가 아니라서, 나비서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대답 없이 나비서를 향해 다가왔고, 겁먹고 뒷걸음치던 나비서가 엉겁결에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참치캔 뚜껑 따는 듯한 금속성 소리!

카트리지의 전극 침이 날아들자, 순간 몸을 비틀어 피한 남자가 강한 힘으로 나비서의 손목을 잡아챘다. 손에서 테이저건을 떨어뜨린 나비서가 한동안 버둥거렸는데,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끌다시피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한 남자가 나비서의 손등을 인식기에 밀착시켰다.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렸고, 남자는 나비서를 버려둔 채 문밖으로 나갔다.


"너, 누구야?"


비상계단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에게 나비서가 소리쳤다.

발걸음을 멈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비서를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보였다.


"왜, 기도라도 하고 싶나? 신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까?"


나비서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 바오..."


나비서는 중얼거리 듯 말했고, 남자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수면가스에 깊이 잠든 아이들이 채혈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흰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체중 기록을 확인하며, 그중에 발육이 더딘 아이는 채혈에서 제외시키고 있었다.


"채혈관을 연결하고, 200ml 팩이 가득 차게 채혈하세요."

"네"


흰가운을 입은 남자가 잠든 아이의 팔을 걷어 올리고, 에탄올을 바른 후 채혈관 바늘을 삽입하려는데, 누군가 그 손을 잡았다.

차 바오였다.

차 바오는 강한 힘으로 바늘을 쥔 남자를 제압하며, 소리칠 수 없게 날카로운 이로 목을 물었다. 그 모습이 마치, 포식자가 사냥감을 절명시키는 행위처럼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둥거리던 사냥감이 이내 축 늘어졌다.

차 바오가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묻은 피를 훔치는 그의 모습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검은 그림을 보는 듯, 광기와 공포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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