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02

by 진혁

해질 무렵,

검정 세단 한대가 요양원 정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슈트 차림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요양원 본관 안으로 들어갔고, 어둠이 짙어질 때쯤, 휠체어에 차 바오와 함께 나왔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차 바오의 물음에 그들은 답이 없었다.


"당신들 누구야?"

"저희는 모셔오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가셔서 말씀하시죠."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잘라 말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자동차는 인적이 없는 한적한 숲길을 지나, 벚나무가 있는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낯선 사람들에게 납치되다시피 오게 되었지만, 한정된 공간에 오래 갇혀 살았던 그였기에, 두려움보다는 흥미로움이 앞서고 있었다.

그들 손에 이끌려 들어온, 높은 층고의 응접실에는 커다란 샹들리에와 엔틱스러운 가구들, 그린 컬러의 모던한 인테리어가 멋스럽게 장식되어 있었지만, 실내 중앙에 놓인 오크색 소파에 앉게 된 차 바오의 시선을 머물게 한 것은, 창을 가린 긴 커튼이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중후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핼쑥한 얼굴에 싸구려 스킨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제야 만나는군요."

"누구시죠?"

"이런... 서운한데요.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까 뭐 이해는 합니다. 그것보다도 선생을 빼내려고 가석방 심사에 관여했었는데, 모르셨나 봅니다?"

"가석방 심사... 왜?"


[나비서, 가져와요]


남자는 차 바오의 물음에 답 없이, 인터폰 너머 비서에게 말했다.


또각거리는 구두소리. 문을 열고 들어 온 보이쉬한 여자는 유리컵을 차 바오 앞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피비린내... 차 바오는 고개를 돌렸다.


"갈증 나실 텐데, 드시죠."

"뭐 하는 겁니까?"

"원하시던 거 아닙니까?"

"이거 당장 치워!"


차 바오의 달라진 눈 빛에 움찔한 남자가 비서를 불렀고, 문을 열고 들어 온 비서가 비웃는 듯한 미소를 보이며, 유리컵을 가지고 나갔다.


"기분 상하신 것 같아 유감이군요. 갇혀 있는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차 바오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뒤에서 소리 없이 다가선 차 바오가 손으로 목을 잡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봐! 나는 식은 피는 안 먹어. 철철 흐르는 뜨거운 피를 좋아하지."

"......"


문이 열리고, Security라고 적힌 안전조끼를 착용한 경비요원들이 전기 충격기와 삼단 봉으로 무장하고 들어왔다. 남자는 그들을 제지시키고, 차 바오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거? 원한다고 들어줄 수 없을 텐데... 교도소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목이 반쯤 잘리고, 가슴에도 자상이 심각했었다고요."

"......"

"일반 사람이었다면 이미 죽었겠지만, 선생은 며칠 만에 상처가 아물고 회복하셨다고요."

"그건..."

"뱀파이어!"


차 바오의 눈이 커졌다.


"선생이 어떻게 뱀파이어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뱀파이어가 지닌 신체적 능력에 대해, 내가 관심이 많습니다."

"나는 그냥 힘없는 노인일 뿐이야. 사람을 잘 못 봤군!"

"잘 못 봤다고!"

"미친 소리 집어치우고, 가야 하니까 요양원에 전화해!"

"미친 소리! 그래, 미친 거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겠어!"


남자가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했다.


"다미..."


차 바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남자의 입에서 다미라는 이름이 나오자,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다미가 죽어 갈 때, 나는 그 끔찍한 자리에 있었지. 너무 무서워서 벽 뒤에 숨어 생쥐처럼 떨고 있었어. 그날 동생을 죽인 놈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게 평생 한으로 남게 되었지."

"진 시명?"

"그래, 이제 날 기억하는군.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동안 널 만나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했다. 이렇게 널 만나게 되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난, 하찮은 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지."

"......"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했던가? 죽음을 앞두고 보니, 생각이 많아지더군. 뭐, 세월에 무뎌지기도 했고. 그동안 죽이기 위해 널 원했다면, 지금은 내가 살고 싶어서 널 원하고 있다."

"내가 있는 곳은 끔찍한 지옥이야."

"지옥?, 설령 지옥이라고 해도..."


비서와 경비요원들이 들어왔다.


"데려가"


경비요원들이 팔을 잡자, 차 바오는 손을 뿌리치고 그들과 맞서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으나, 비서가 쏜 테이저건에 차 바오는 힘도 못쓰고 제압당했다.

그들은 차 바오를 부축해 문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하로 내려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복도를 지나 보안 잠금장치가 되어있는 유리문 앞에 그들이 멈췄다.

생체 인식 잠금장치.

비서가 손등으로 잠금을 해지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에는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모니터를 통해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차 바오가 모니터에 시선을 뺏기자, 나비서가 그에게 다가섰다.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육원입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죠. 대표님께선 이 아이들을 통해 양질의 피를 선생님께 공급할 계획입니다. 물론, 선생님이 대표님의 뜻에 동의해 주신다면 말이죠."

차 바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기도하시나요? 신께서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나비서의 비꼬는 듯한 말에 차 바오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놈들..."


험악한 표정으로 비서에게 다가서자. 옆에 있던 남자들이 차바오를 막아서며 전기 충격기를 사용했다. 순간 바닥에 쓰러진 차 바오에게 삼단봉을 꺼내 여러 차례 가격했고, 차 바오는 바닥에 늘어졌다.


"말로 해서는 안되는군!"


양쪽 팔을 잡아 올린 남자들은 축 늘어진 그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한 차바오는 옆방에서 비서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네, 피는 뽑아놨습니다. 샘플은 오박사에게 바로 보내겠습니다. 근데, 노인은 어떻게 할까요? 네, 알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경비요원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묶여 있던 차 바오의 팔을 풀자, 차 바오는 남자의 손을 낚아채듯 움켜쥐고, 길어진 송곳니로 손목을 물었다. 순간,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남자가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차 바오가 팔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동료가 삼단봉을 꺼내 차 바오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겨우 떨어진 차 바오가 순식간에 침대 밑으로 들어가 숨었고, 남자는 피가 흐르는 손목을 감싸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0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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