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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Sep 24. 2018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하면 정당방위가 될까?

-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부인의 사정_<캐리어를 끄는 여자>

○ 남편 살인죄로 법정에 선 부인

 부자 남편을 만나 최고급 주택에 거주하는 조은선(가명)의 삶은 지옥에 가까웠다. 불행의 원인은 바로 남편.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은 그녀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남편의 폭력은 술을 마시면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어떨 때는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건이 발생한 그날도 남편은 만취해서 집에 들어왔고 조은선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남편이 자는 틈을 이용해 남편을 끈으로 묶은 뒤 베개로 얼굴을 눌러 살해한다. 


 조은선의 변호를 맡은 마석우 변호사(이준)의 변론 전략은 정당방위였다. 조은선이 한 행동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행위인 정당방위이므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검찰은 자고 있는 남편을 죽였으므로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맞선다.     


조은선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볼 수 있을까

말도 많고 그만큼 논란도 많은 정당방위란 도대체 무엇일까     


<출처: "캐리어를 끄는 여자" 화면 캡쳐>


○ 위법함을 없애주는 특별한 사정

 범죄가 성립하려면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일정 행위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려면 다른 사람의 집에 동의 없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집에 동의 없이 들어가는 행위’ 같은 범죄를 성립하게 하는 일정한 요건(조건)을 법학에서는 구성요건해당성이라고 한다. 

 구성요건해당성이 있다는 말은 형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의 행위는 일단 ‘위법’한 것이 된다. 하지만 위법하다고 해서 모두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예외적으로 위법성을 없애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데, 이렇게 위법성을 없애는 사정을 위법성조각사유(違法性阻却事由)라고 한다. 위법성조각사유라는 말에서 ‘조각’은 재료를 새기거나 깎아서 입체 형상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조각(彫刻)이 아니라, ‘방해하거나 물리치다’라는 뜻의 조각(阻却)이다. 좀 쉽게 표현하자면 ‘위법성 제거 사유’ 정도가 될 것이다. 형법에서 규정하는 위법성조각사유는 여럿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당방위다.     


○ 정당방위는 언제 성립하나?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현재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정당방위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곧 ‘현재의 침해’가 아닌 ‘과거의 침해’에 대해서는 정당방위가 성립할 수 없다. ‘지금’ 누군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몽둥이로 자신을 공격한다면 방어 차원에서 공격자에게 주먹을 날릴 수 있지만 몽둥이로 맞은 ‘다음 날’ 그 사람을 찾아가 때린다면 정당방위라 볼 수 없고 개인적인 복수에 불과하다. 법은 개인적인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여야 한다. 타인을 지키기 위한 행위도 정당방위에 속한다. 곧 강도가 가족을 위협한다면 강도를 힘으로 물리치는 것도 정당방위가 될 수 있다. 정당방위는 말 그대로 방위(방어)를 위한 행위이므로, 가만히 있는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는 행위를 정당방위로 보기는 어렵다. 

 셋째, 방위행위에는 상당한 이유(상당성)가 있어야 한다.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말은 방위행위의 정도가 사회적 상식 또는 일반적 윤리 감정에 따른 적정한 정도여야 한다는 의미다. 견문발검(見蚊拔劍)이라는 말처럼 모기를 잡는 데에는 두 손이나 기껏해야 파리채 정도면 충분한데도 굳이 칼을 빼 드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다. 다시 말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면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출처: "캐리어를 끄는 여자" 화면 캡쳐>


○ 싸움이 나면 무조건 맞아야 한다?

 얼마 전 도둑뇌사사건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대의 A씨는 새벽 3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도둑(당시 55세)이 서랍장을 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도둑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빨래 건조대로 도둑을 내리쳤다. 그런데 A씨에게 맞은 도둑이 의식을 잃어 뇌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A씨는 도둑을 다치게 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안타깝게도 그 도둑은 A씨가 재판을 받는 중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피고인이 된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으니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도둑이 흉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A씨를 보자마자 도망가려 했는데, A씨가 도둑의 머리를 여러 차례 걷어찼고 빨래 건조대로 등을 가격한 데다 허리띠를 풀어 때린 것은, 도둑에 대한 방어행위로서는 지나쳤다고 본 것이다. 결국 A씨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당방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A씨를 옹호하는 이들은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가 너무 드물어서 선량한 시민이 보호받지 못한다고 주장했고, 법원 판결을 옹호하는 이들은 정당방위를 너무 쉽게 인정하면 오히려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둑뇌사사건’과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 우리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상대방이 먼저 공격해 맞받아치는 차원에서 폭행한 경우에도 방어를 위한 행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싸움 나면 무조건 맞아야 한다”라는 말이 상식처럼 통용된다.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법원이 국민의 법감정과 너무 동떨어진 판결을 내린다고 분개할 법도 하다. 하지만 법원이 정당방위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출처: pixabay>

 하나는 정당방위는 원래 위법한 행위인데 특별히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해주는 예외적 성격이므로 제한된 경우에만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외는 자주 사용되지 않을 때 의미를 가진다. 다른 하나는 정당방위를 너무 쉽게 인정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정당방위가 아닌 상황에서 명백히 범죄를 저지르고도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범죄자를 처벌할 수 없다면, 그건 매우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 피해자가 살아 있다면 반박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만약 사망했다면 억울함을 토로할 수 없게 되니 말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하는 건 당연하다. 방어 과정에서 공격한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더라도 괜찮다는 것이 정당방위지만 앞서 말했듯 방어를 가장한 공격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정당방위는 잘 인정되지 않고 있다. 결국 피해자가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할지, 좁게 인정할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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