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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Sep 10. 2018

오줌싸개라고 말하면 명예훼손인 걸까?

- 모의법정에 선 유재석_<무한도전 193회>

○ <무한도전> MT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9년의 일이다. 당시 <무한도전> 멤버들은 제작진과 함께 제주도로 MT를 갔다. 밤에 재밌게 놀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닥에 정체불명의 액체가 흥건했다. 그 액체 옆에는 길성준(‘길’)이 누워 있었는데 바지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 장면을 본 유재석은 “길이 밤에 술을 마시다가 방에 오줌을 싼 것이다!”라고 말했다. 길은 그런 적이 절대 없다고 결백을 호소하며 자신을 ‘오줌싸개’라고 말한 유재석이 명예를 훼손했다고 펄쩍 뛴다. 길은 거짓말로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킨 유재석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으로 10억 원을 달라고 요구하는 가상의 소송을 제기한다.     


 유재석의 말 때문에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길과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며 반박하는 유재석두 사람 중 누구 말이 맞을까?     


<이미지 출처: 무한도전 방송 화면 켭쳐>

    

○ 지켜야 할 것명예


 명예는 누구나 추구하는 고귀한 가치다. 명예를 얻고 싶은 욕구가 당연하듯, 명예가 훼손되는 일을 싫어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쉬운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뒷담화’ 욕구가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면 화병이 나는 것도 뒷담화의 욕구가 충분히 해소되지 못해서다. 


 어느 정도의 험담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표현 수위가 일정 수준을 넘어 다른 사람의 명예가 심하게 훼손되는 지경에 이르면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명예는 돈이나 부동산처럼 눈에 보이는 재산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우리 법도 명예를 보호하고 있다.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구제수단으로는 형사적 방법과 민사적 방법이 있다. 〈무한도전〉에서 길은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므로 여기서는 민사적 해결방법 위주로 살펴보겠다.     


○ 어떻게 하면 명예훼손이 될까?


 명예훼손이 되려면피해자가 누구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피해자의 범위가 좁혀져야 한다. “서울에 사는 김 모 씨가 나쁜 짓을 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데, 그건 서울에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워낙 많아서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로 연예인에 대한 각종 추문을 담은 정보지(이른바 찌라시)에 연예인 실명은 나오지 않고 “탤런트 A” “가수 B”로만 표시되는 것도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해서 명예훼손이 되는 걸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명예훼손은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나쁘게 할 만한 구체적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다. 어떤 표현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나쁘게 만드는지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고 구체적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모 대학의 철학과 교수는 강의 시간에 “노무현은 전자개표기 사기극으로 당선된 가짜 대통령이다.”라고 발언했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녀에게 2,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전자개표기를 조작해 당선된 가짜 대통령”이라는 말은 그 표현의 대상이 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회적 평가를 깎아내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이 되려면 ‘사실’을 말해야 하는데, 사실과 구별되는 것으로는 ‘의견’(생각)이 있다. 구체적 사실을 말하지 않고 단지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관해 비평하거나 견해를 표명한 것에 불과할 때는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 거칠게 구분해서 “홍길동은 도둑질을 한 나쁜 놈이다”라고 말한다면 사실을 말한 것이 되고, “홍길동이 한 행동은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면 의견(생각)을 말한 것이 된다. 물론 현실에서는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유의할 사항은 반드시 허위 사실을 말해야 명예훼손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더라도 그 사람의 명예를 깎아내릴 수 있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 명예훼손 vs 표현의 자유

 명예 보호와 자주 충동을 일으키는 가치는 표현의 자유다. 사람의 명예는 당연히 보호되어야 하지만 명예를 지키는 일에만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면 자칫 자유롭게 의사를 드러내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언론•출판의 자유와 직결된다.

 판례에 따르면 언론보도가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깎아내리더라도 진실성과 공익성을 갖추고 있으면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 곧 언론보도의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보도의 내용이 진실한 사실이면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언론에서 다루는 문제는 주로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공적 영역이므로, 특정인을 원색적으로 깎아내리지 않는 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을 비교적 쉽게 인정할 수 있다. 특히 우리 법원은 명예훼손을 당한 피해자가 공직자나 정치인처럼 광범위하게 국민의 관심과 감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일 경우에는 대체로 그에 관한 보도가 공익성이 있다고 보는 편이다.     


 문제는 진실성이다. 언론보도의 내용이 반드시 진실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법원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라는 잣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단기준은 뭘까?

 이는 언론인이 보도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적절하고도 충분한 조사를 했는지, 그 진실성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에 따라 뒷받침되는지 등을 보고 결정한다. 보도를 하는 사람이 사실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취재를 충분히 했고, 취재 결과 확인한 여러 증거나 자료를 볼 때 사실로 믿을 만큼 설득력이 있다면 설령 결과적으로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명예훼손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충분한 취재 없이 추측하여 기사를 작성해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에는 언론사 기자라 해도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 유재석 vs 

 “제주도에 MT를 가서 술을 마시던 중 방에서 오줌을 쌌다”라는 유재석의 말은 길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할까? 정확한 판단은 법원 판결을 통해 내려지는 것이지만, 일반적 법리에 따를 때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무한도전>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특성상 오줌을 쌌는지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펼쳤지만, 진실한 사실을 말하더라도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실제로 길이 오줌을 쌌는지 혹은 싸지 않았는지는 명예훼손 여부를 가리는 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유재석의 발언이 길의 명성, 신용, 품성 등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성인 남성이 술을 먹고 오줌을 쌌다면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가 매우 나빠질 것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출연해 활동하는 연예인은 다를 수 있다. 유재석이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화제의 중심에 서고, 하나의 캐릭터를 얻는다는 건 매우 좋은 일이다. 곧 ‘오줌싸개 길’이라는 이미지는 자연인 길성준 입장에서는 사회적 평가를 훼손시킬 수 있지만, 예능인(이었던입장에서는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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