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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Aug 27. 2018

농담으로 한 말도 지켜야 할까?

- 정용화가 FNC의 경영권을 요구한다면_<라디오스타> 411화

 ○ 정용화 vs 이홍기

 

 FNC엔터테인먼트는 성장에 크게 기여한 아이돌 그룹으로는 FT아일랜드와 씨엔블루가 꼽힌다. 그러니 FNC를 이끌고 있는 한성호 대표는 두 그룹에 대한 애정이 무척 클 것이다. 특히 두 그룹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이홍기와 정용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법하다.

<라디오스타>에 한성호 대표가 게스트로 출연하자 MC 김구라는 한성호 대표에게 만약 회사를 물려준다면 정용화와 이홍기 중에서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지 짓궂게 묻는다. 한성호 대표가 “용화에게 물려준다”라고 답하자 정용화는 굉장히 좋아하면서 “구두계약 아니냐”라고 되묻는다.

 그러자 김구라가 정용화를 타박하며 “뭘 써야지!”라고 말한다. 김구라의 주장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구두계약도 법적 효력이 있는 계약일까

농담으로 한 말도 지켜야 하는 걸까?      

<이미지 출처: “라디오스타” 방송 화면 캡쳐>

  

○ 계약에 필요한 두 가지


 계약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뭔가 거창한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고층 건물 꼭대기 층의 통유리로 둘러싸인 고급 회의장에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대동한 채 회사 경영권을 다투는 M&A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계약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이례적인 일로 인식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상에서 수많은 계약 행위를 하고 있다.


 계약은 청약(請約)과 승낙(承諾)으로 되어 있다. 청약은 계약을 체결하자는 제안이고, 승낙은 청약에 부응해 계약을 성립시키겠다는 의사표시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간단한 행위에도 버스운송계약이라는 법적 행위가 숨어 있는데,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하고 승객이 버스에 오르는 행동은 버스운송계약의 청약에 해당하고, 버스 운전기사가 승차를 거부하지 않고 승객을 받아들이는 것은 버스운송계약의 승낙이라 볼 수 있다.

 계약이 성립하려면 청약과 승낙을 통해 양 당사자의 의사가 일치하면 되는 것이지반드시 계약서가 작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외적으로 서면으로 된 계약서가 있어야 계약이 유효한 경우(예를 들면 보증계약)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계약서가 없어도 된다. 계약서도 없는데 법적으로 유효하다는 게 얼핏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매우 당연한 이야기다. 만약 모든 계약이 계약서가 있어야 유효하다면 생활이 상당히 피곤해질 게 분명하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려해도 계약서를 작성해야 할 테니 말이다.     



○ 계약서의 중요성 


 계약서가 있어야 계약이 법적으로 유효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계약을 체결할 때는 가급적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로만 계약을 체결하면 그 계약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아 나중에 분쟁이 생길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는 계약서 작성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계약서를 작성해야 할 필요성이 더 높다. 특히 친구끼리 동업해서 일을 할 때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처음에 동업을 시작할 때는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일을 해 나가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사업이 커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동업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 사업 자금 마련, 수익금 배분 등 미리 합의해두어야 할 부분이 매우 많다. 그런데 이런 사항을 명확하게 계약서에 적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잘못하면 친구도 잃고 사업도 잃게 되는 최악의 결과가 생긴다.


 가급적 송사에 휘말리지 않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소송과 같은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계약서를 써두는 것은 중요하다. 소송에서 치열하게 법리 논쟁을 벌이는 때도 있지만 사실관계를 두고 다투는 일도 많으니 말이다.     



○ 하자 있는 계약


 계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건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이다. 계약을 체결해놓고 지키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계약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원칙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계약에서도 마찬가지라 계약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계약 이행을 강제했을 때 지나치게 큰 부작용이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 출구를 열어둔 것이다. 의사표시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계약의 효력에 문제가 있어 계약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진심이 아닌 의사표시(비진의 의사표시)’도 그중 하나다.


 예를 들어 보자. 철진은 고급 아파트에 사는 친구 규호의 집에 놀러 갔다. 평소 철진은 규호의 집을 부러워했는데, 그날도 “나도 이런 집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규호는 마침 그날이 만우절이기도 해서 농담으로 “네가 그렇게 원하면 이 집을 시세의 반값에 팔겠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그냥 웃고 넘겼는데, 다음 날 철진이 규호에게 시세의 반값을 줄 테니 아파트를 넘기라고 정색하면서 요구했다. 규호는 철진에게 아파트를 팔아야 할까? 팔지 않아도 된다면 법적 근거는 무엇일까?

 규호는 실제로 철진에게 아파트를 반값에 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반값에 팔겠다는 규호의 말은 진심(진의)이 아닌 의사표시다. 이렇게 진심이 아닌 의사표시도 원칙적으로는 유효하지만, 상대방의 말이 진심이 아니란 걸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효력이 없다. 원래는 농담으로 한 말도 지켜야 하지만농담이란 걸 상대방도 알았다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 FNC의 후계자

 FNC의 후계자 문제로 돌아가 보자. 물론 그럴 가능성이 극히 낮겠지만 “FNC를 정용화에게 물려주겠다”라는 한성호 대표의 말을 근거로 정용화가 한성호 대표에게 FNC를 물려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상식적으로 짐작할 수 있듯, 한성호 대표가 FNC를 정용화에게 물려줘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그 이유는 김구라의 말대로 그 내용을 단순히 계약서로 작성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한성호 대표 입장에서는 두 가지 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 


 첫째, 한성호 대표의 발언 내용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계약이 성립하려면 청약과 승낙이 있어야 하고, 청약은 구체적이고 확정적 의사표시여야 한다. 그런데 “FNC를 물려주겠다”라는 표현은 그 의미가 불분명하여 확정적 의사표시로 보기 어렵다. 계약 성립에 필요한 청약 자체가 없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한성호 대표의 발언이 비진의 의사표시라는 점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진행자의 질문에 FNC를 물려주겠다는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성호 대표의 발언 뒤에 정용화가 장난스럽게 문제 제기를 했지만 사람들은 가볍게 웃고 넘겼다. 곧 한성호 대표의 발언은 진심이 아닌 농담이었고, 정용화도 그 발언이 농담인 줄 알고 있었으므로, 이런 의사표시는 무효라고 봐야 한다. 


 계약이 성립하는 데에 특별한 형식이 필요한 건 아니므로 말로 하는 구두계약도 원칙적으로 유효하다는 점을 명심하자. 또한 계약은 지키는 게 기본이므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건 자제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농담으로 한 말까지 지키라고 강요하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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