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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Aug 20. 2018

왜 부모 자식 사이에도 보증은 안 선다고 할까?

덕선이네가 반지하방에 살게 된 사정_<응답하라 1988>

○ 반지하방에 사는 덕선이네


 1980년대 후반 도봉구 쌍문동 골목에는 다섯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덕선이네, 정환이네, 선우네, 택이네, 동룡이네다. 가족 구성원도, 처한 환경도 저마다 다르지만 다섯 가족은 형제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오순도순 살아간다. 

 그런데 덕선이네는 살림이 가난하다. 덕선이 아버지(성동일)는 좋게 말하면 정이 많고 나쁘게 말하면 경제관념이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낭비가 심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덕선이 어머니(이일화)가 낭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손이 커서 요리를 했다 하면 골목 잔치가 벌어질 정도로 푸짐하게 준비하지만, 평소에는 얼마나 알뜰한지 모른다. 

 씀씀이가 헤픈 사람도 없고 은행원으로 가정에 소득이 확실한 사람이 있는데도 덕선이네는 반지하방에 산다. 그들은 왜 가난할까? 그건 바로 보증 때문이다. 덕선이 아버지가 친구에게 빚보증을 섰는데 그 일이 잘못되어 전 재산을 날린 것이다.


 도대체 보증이 무엇이기에 “부모 자식 사이에도 보증은 안 선다”라는 말이 있는 걸까?


<이미지 출처: “응답하라 1988” 공식 홈페이지>

                                          


○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받는 것


 돈을 빌리려고 시도해본 사람은 돈 빌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다. 곳곳에 시중은행, 저축은행, 보험사 같은 금융기관이 즐비하지만 대출 문턱은 매우 높다. 대출 심사가 약한 곳은 높은 금리를 요구해서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지인에게 부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에서 돈을 빌리는 채무자가 약자 위치에 서지만 그렇다고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채무자가 돈을 갚아야 할 시기가 되었는데도 돈을 갚지 않으면 그때부터 채권자는 속을 끓이게 된다. “돈은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받는다”라는 속담은 그런 채권자의 답답한 마음을 대변한다.

 채권자는 돈을 빌려주면서 ‘혹시라도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런 채권자의 고민 끝에 나온 제도가 채무자의 재산적 가치를 미리 확보해두는 담보제도다.


 담보는 크게 물적(物的) 담보인적(人的) 담보로 나눌 수 있다. 물적 담보는 물건을 이용해 담보를 확보해두는 것인데, 대표적인 방법이 근저당권(根抵當權) 설정이다.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두면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았을 때 부동산에 대한 강제집행절차(경매)를 실시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때 근저당권을 설정해둔 사람은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돈을 받을 수 있는 우선권을 갖는다. 그만큼 근저당권은 채권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보호장치여서 채무자가 돈을 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부동산이나 물적 재산이 없는 채무자는 이를 활용할 수 없다.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사람에게 담보를 설정해두는 인적 담보인데, 대표 유형이 보증이다. 



○ 보증의 법률관계


 쉽게 말해 보증은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채무자가 아닌 보증인이 채권자에게 돈을 갚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보증인이 개입하기 전에는 ‘채권자–채무자’의 양자 관계지만, 보증인이 개입하면 ‘채권자–채무자–보증인’의 3자 관계로 변한다. 이때는 채무자만이 아니라 보증인도 채권자에 대해 일종의 채무를 지게 된다.


<보증의 법률관계>


 보증인 입장에서는 보증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채무자가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채무자가 보증인에게 보증을 서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의 재산 상황을 제대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채무자에게 돈 갚을 능력이 충분히 있는 줄 생각하고 보증을 서주었는데, 알고 보니 처음부터 빈털터리였고, 자신에게 한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면 보증인은 채무자에게 속았다는 이유로 보증계약을 취소할 수 있을까?

 판례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보증인이 속았다는 사실을 채권자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가 아닌 한 보증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보증인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보증인이 속았다는 사정은 “채무자와 보증인 사이의 문제”이고 “채권자와 보증인 사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채권자 입장에서 보면, 보증인도 보증채무를 부담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일종의 채무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1억 원의 채무를 지고 있다면, 보증인도 채권자에게 동일한 액수만큼의 보증채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곧 채무자가 기한 내에 돈을 갚지 않는 경우 채권자는 보증인에게 1억 원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채권자의 요구에 바로 응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는지는 보증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인 보증인은 채권자에게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내가 알아보니 채무자에게 돈이 많이 있다. 또 채무자에게서 돈 받는 일이 어렵지 않으니, 일단 채무자에게 먼저 가서 돈을 달라고 요청하라.”


 하지만 연대보증인은 좀 다르다. 채무자가 돈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채권자는 연대보증인에게 먼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일반적 보증에서는 채무자가 1순위, 보증인이 2순위지만, 연대보증에서는 채무자와 연대보증인이 공동 1순위인 것이다. 참고로 채권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돈을 갚아야 하는 사람이 두 명이 되는 효과가 있는 연대보증이 훨씬 유리하므로 실생활에서는 연대보증이 더 흔한 형태로 이용된다.


<이미지 출처: pixabay>



○ 보증제도가 존재하는 이유


 지인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정에 이끌려 보증을 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선의에서 보증을 섰다가 채무자 대신 큰 빚을 떠안아 자신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피해를 보는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럴 때면 보증이 정말 필요한 제도인지, 애꿎은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는 악습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보증은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

 당연히 보증은 채권자 입장에서 유용한 제도다. 채권에 대한 담보를 미리 확보해둘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채무자 입장에서도 유익할 수 있다. 만약 보증과 같은 인적 담보 수단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부동산 같은 물적 담보를 제공할 수 없는 채무자는 아예 돈을 빌리지 못할 수 있다. 그 피해는 채무자에게 돌아간다. 이는 고금리로 대출을 하는 금융기관의 영업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는 이유와 유사하다.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보증은 돈을 빌리려는 사람과 빌려주려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제도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은 제도이기도 하다. 따라서 채무자와 비슷한 의무를 져야 하는 보증인으로서는 채무자가 부담하는 채무의 내용이 무엇인지, 채무자의 경제적 상황은 어떤지 등을 꼼꼼하게 챙겨봐야 예상치 못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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