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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Sep 03. 2018

기계는 거짓과 진실을 구별할 수 있을까?

서중원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거짓말탐지기를 꺼낸 까닭_<굿 와이프>  9회

○ 의뢰인에 대한 테스트

 서명희 변호사(김서형)는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도와달라는 친구의 요청을 받고, 직감적으로 큰 사건이 터졌음을 알아챈다. 친구가 털어놓은 일은 자신의 집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었다. 문제는 범인으로 의심받는 사람이 바로 그의 남편이라는 점이다. 피해자를 마지막으로 본 게 남편인 데다 집에 외부 침입의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허겁지겁 서명희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로펌 MJ로 찾아온다. 서명희 변호사가 친구를 달래고 안심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남편의 변호는 서중원 변호사(윤계상)가 맡는다.

 베이비시터에게 문을 열어주고 영화관으로 갔을 뿐 살인사건과 무관하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던 서중원 변호사는 검찰에 출두하기 전에 한 가지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곧이어 로펌 직원들이 들어와서 거짓말탐지기를 꺼내 테스트를 준비한다.      


드라마영화예능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하는 거짓말탐지기

과연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굿 와이프” 방송 화면 캡쳐>


○ 거짓말탐지기의 작동 원리와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


 거짓말탐지기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1878년 이탈리아의 심리학자인 안젤로 모소(Angelo Mosso)가 검사 대상자의 호흡과 혈압의 변화를 측정하는 기계를 발명했다. 한국에는 1967년에 처음으로 거짓말탐지기가 도입되었다.

 거짓말탐지기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사람들 대부분은 거짓말을 할 때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 땀을 흘린다든지, 심장박동이 빨라진다든지, 입이 마른다든지 하는 신체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질문을 했을 때 신체에 이상 반응이 나타나는지 여부를 관찰해서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특정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오면 곧바로 진실 혹은 거짓으로 단정적으로 표시되지만, 현실은 그것보다 복잡하다. 검사 결과를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각각의 질문에 대한 대상자의 반응을 점수로 환산하고, 환산한 점수를 토대로 진실반응, 거짓반응, 판단불능을 판정한다.

 경찰이나 검찰이 보기에는 피의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데도 피의자가 사실이라고 우기는 경우 경찰이나 검찰은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해서 그 사람의 진술이 맞는지를 강제로 확인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상대방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임의수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피의자가 거부하면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한 수사는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는 건 왜 안 될까? 아무리 피의자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을 권리(진술거부권)가 있는데,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억지로 받게 하는 것은 진술거부권을 침해해 강제로 진술하게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거짓말탐지기는 얼마나 정확할까? 혹시 기계가 오류를 일으키거나, 제대로 판정을 내리지 못하는 일은 없을까? 거짓말탐지기의 정확도에 대한 의문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를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논쟁과도 연결된다.

 먼저 반대하는 쪽(검사 결과는 증거로서 자격이 없다는 견해)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는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검사 대상자의 의사결정과 의사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검사 결과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찬성하는 쪽(검사 결과는 증거로서 자격이 있다고 하는 견해)은 검사 대상자가 동의했으니 인격권이 침해되지도 않고, 검사 결과의 진실성이 어느 정도는 담보된다는 주장이다.


 법원 입장은 어떨까?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대해 아주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즉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불안한 마음(심리상태의 변동)이 생겨서 땀이 난다든지 하는 신체적 변화(생리적 반응)가 일어나고, 이런 변화를 정확하게 감지해서 거짓말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를 증거로 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얼핏 생각해봐도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다. 현재 한국의 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가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결국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는 증거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고 본다. 대법원 입장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직 거짓말탐지기를 충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탐지기의 기본 원리는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선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선한 건 아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거짓말을 하면 불안한 마음을 느끼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불안한 마음을 느끼더라도 생리적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 그런 반응이 나타나더라도 기계가 거짓말 여부를 100퍼센트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지, 기계가 측정한 수치를 사람이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대법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 거짓말탐지기의 가치와 한계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가 증거로서 자격이 없다고 해서 거짓말탐지기가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의 동의를 받아 진행한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는 피의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참고자료 또는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확인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때 피의자는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해보자고 먼저 요청할 수 있다.

 거짓말탐지기는 수사 단계에서 활용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경찰청은 수사 과정에 거짓말탐지기를 활용한 건수가 2014년 8,460건에서 2016년 9,845건으로 약 1,400건 늘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2015년까지 매년 평균 800건 수준이었던 거짓말탐지기 활용이 2016년에는 1,000건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가 ‘진실’로 나온다면, 피의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하던 경찰관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물론 거짓으로 나온다면 의심을 더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검사 요청은 신중해야 한다.


 거짓말탐지기를 활용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하더라도 거짓말탐지기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온갖 기계가 발명되고 진화하고 있는 지금도,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일은 아직 인간 고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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