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수아가 정신병원에 감금된 배경_〈날, 보러 와요〉
시사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나남수(이상윤)는 방송국의 스타 피디였지만 프로그램이 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나남수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재기를 도모하는 그에게 방송국 국장은 미스터리 프로그램을 맡기고 프로그램 기획 과정에서 나남수는 강수아(강예원)라는 의문의 여성이 보낸 수첩을 발견한다. 수첩에는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길을 걷던 중 이유도 모른 채 납치되어 정신병원으로 끌려가 감금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수첩 속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나남수는 수소문 끝에 어렵게 강수아를 찾아내는데, 그녀는 경찰서장인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강수아는 자신은 미치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되었고, 사람을 죽인 적도 없다고 말한다.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될 수 있는 걸까?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건 헌법에 위반되는 일 아닐까?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가야 한다. 신체만이 아니라 정신도 그렇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데,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형태로는, 자의입원, 보호입원, 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한 입원, 긴급입원의 네 가지가 있다.
자의입원을 제외한 나머지 세 형태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다는 특징이 있다. 2013년 정신보건통계현황에 따르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입원한 환자는 26.5%이고, 본인 의사에 반해 입원한 환자는 73.5%이다. 정신병원에 제 발로 찾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대게는 보호자)의 뜻에 의해 이뤄지는 ‘보호입원’이 대부분이다.
강제입원도 법률에 따른다면 일단 적법하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법률상 근거가 있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법률보다 상위 규범인 헌법을 위반되지 않아야 적법한 법률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보호입원이 헌법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판단을 내렸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헌법재판소는 정신보건법의 ‘보호입원’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질환자라고 해서 항상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되는 건 아니다. 법에서 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신질환자의 보호입원을 위해서는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가 필요한데, 여기서 보호의무자는 민법상 부양의무자인 직계혈족(부모 혹은 자식) 및 그 배우자이다.
정신보건법이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를 요건으로 설정해놓은 건 보호의무자가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할 때 정신질환자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는 쪽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호의무자들은 가족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걸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심각해 본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입원에 동의하게 된다.
하지만 항상 그럴까?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기 마련이다. 정신질환자를 직접 돌봐야 하는 상황이 힘들고 번거로워 입원시켜놓고 부양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고, 정신질환자의 재산을 빼앗거나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보호입원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보호의무자와 정신질환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보호의무자가 정신질환자의 이익을 해치는 방향으로 보호입원을 악용할 수 있는데도, 정신보건법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예방책을 충분히 마련해놓고 있지 않다.
보호의무자의 동의만이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진단이라는 요건도 여러 문제를 낳는다. 정신질환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 전문가 의견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다만 전문가가 제도를 남용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차단할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신보건법은 “입원치료나 요양을 받을 만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 또는 환자 자신의 건강•안전이나 타인의 안전”을 위해 입원이 필요한지 여부에 대한 판단 권한을 정신과 전문의 1인에게 전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 필요성에 관한 진단을 내리면 정신질환자는 대체로 그 정신과 전문의가 소속된 정신의료기관에 보호입원되는 실정인데, 정신과 전문의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진단 권한을 남용한다 해도 정신보건법상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보호의무자와 정신과 전문의 중 어느 한쪽이라도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 부작용은 최소화되겠지만, 보호의무자 동의 요건의 문제점과 정신과 전문의 진단 요건의 허점이 결합한다면 보호입원제도가 남용될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이런 일은 실제로도 종종 일어난다. 서울 영등포 일대 노숙자들에게 “담배와 숙식을 제공하겠다”며 접근해 병원에 입원시킨 정신병원장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일이 대표 사례다.
보호입원을 규정한 정신보건법 관련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라는 표현이다. 헌법에 위반된 법률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주로 사용하는 “헌법에 위반된다”라는 표현과 다르다. 둘 다 비슷한 말처럼 보이지만 효과는 차이가 있다.
“헌법에 위반된다”라고 결론 내리는 것을 단순위헌 결정이라고 하는데, 헌법재판소가 단순위헌 결정을 내리면 그 즉시 법률은 효력을 잃는다. 헌법에 위반된 법률이 계속되는 걸 막으려면 당장 그 효력을 없애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갑자기 법률을 없애면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 사용하는 것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라고 결론 내리는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심판 대상이 된 법조문이 헌법에 맞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지만, 법조문의 효력을 일정 기간 인정해주는 것이다.
※ 일러두기
본문 내용은 2016년 헌법재판소 결정(헌재 2016년 9월 29일 2014헌가9)과 그 결정의 심판대상조항인 정신보건법(2011년 8월 4일 법률 제11005호로 개정된 것) 제24조를 전제로 한다. 국회는 2016년 5월 29일 정신보건법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로 개정했으므로 본문 상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