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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Oct 01. 2018

검사가 물어보면 반드시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조들호가 침묵해도 되는 근거_<동네변호사 조들호> 1회

○ 이야기 안 할 건가요?”

 한때 잘 나가던 검사에서 노숙자가 된 조들호(박신양)는 어느 날 소매치기범과 시비가 붙는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매치기범을 뒤쫓는데, 어쩌다 보니 소매치기범은 사라지고 현장에는 조들호만 남게 되었다. 그때 마침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행색이 초라한 조들호를 의심한다.

 조들호가 소매치기 공범이라고 생각한 경찰은 신분증을 요구하고, 조들호는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옷을 뒤지는데, 웬일인지 피해자의 지갑이 조들호의 옷 안에 있었다. 소매치기범이 도망가기 전 몰래 넣어둔 것이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경찰이 보기에 조들호는 도망간 소매치기와 한통속이다.


 결국 조들호는 경찰서에 와서 조사를 받는데, 담당 경찰이 이것저것 물어봐도 조들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화가 난 경찰이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대라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조들호 옆에 있던 이은조 변호사(강소라)가 나서서 경찰을 제지하며 피의자에게 윽박을 지르면 안 된다고 말한다.     


경찰이나 검사가 질문하면 반드시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진술거부권이라는 건 뭘까?     


<출처: "동네변호사 조들회" 화면 캡쳐>


○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고?

 검사의 질문에 반드시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법적인 의미에서 정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 이유는 누구나 진술거부권(陳述拒否權)을 가지고 있어서다.

 진술거부권은 말 그대로 진술을 하지 않고 거부할 수 있는 권리다. 수사기관에서 수사받는 피의자만이 아니라,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도 진술거부권을 가진다. 진술거부권은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 법이 진술거부권을 인정하는 주된 이유는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어 범죄를 저지르고도 발뺌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범죄를 숨기려는 사람에 맞서 범죄행위를 밝혀내는 것이 수사기관의 역할이다. 어떻게 보면 형사절차는 범죄를 숨기려는 사람(피의자・피고인)과 범죄를 밝히려는 사람(수사기관) 사이의 다툼 혹은 경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피의자에게 “당신은 반드시 사실대로 말해야 돼”라는 제약을 준다면 피의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처럼 수사기관과 피의자・피고인이 대등한 입장에서 수사나 재판에 임해야 한다는 걸 법적으로 무기평등(武器平等)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 진술거부권과 미란다 원칙

 경찰서나 검찰청이 피의자를 불러 조사할 때 수사관이나 검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진술거부권을 고지하는 일이다. 아예 피의자신문조서 맨 앞 장에 진술거부권, 변호인선임권 등이 표시되어 있고, 실무적으로도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 또한 형사소송을 처음 시작할 때 판사도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에 대해 알려준다.

 만약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지 않은 상태에서 한 진술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본다. 따라서 피의자가 자백했다 하더라도 진술거부권을 듣지 못하고 자백한 것이라면 그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     


<출처: "조선닷컴" 홈페이지>

 진술거부권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것이 바로 ‘미란다 원칙’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경찰이 범인을 체포할 때 반드시 나오는 장면이 하나 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장면인데, 이 원칙은 미국인 에르네스토 미란다 (Ernesto Miranda)라는 사람이 일으킨 범죄 사건에서 기인한다.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 주 경찰은 미란다를 납치•강간 혐의로 체포해 경찰서로 연행했다. 미란다는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관 두 명에게 조사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2시간가량 조사를 받은 뒤에는 범행을 인정하는 자백을 했다. 무난하게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했는데 재판 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미란다의 변호인이 “경찰관이 미란다에게 변호인선임권을 미리 알려주지 않아 미란다는 변호인 없이 조사를 받았고 그런 상황에서 미란다가 한 자백은 자발적인 것으로 볼 수 없어 범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궤변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은 피의자에게 묵비권과 변호인선임권을 미리 말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받은 자백은 그것이 자발적인 것이든 아니든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혁신적인 판결이었다.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이상한 논리를 적용해 풀어준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그렇다고 미란다가 풀려난 것은 아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뒤 검찰은 목격자 진술을 증거로 내세워 미란다를 다시 기소했고, 미란다는 유죄판결을 받아 10년간 복역했다.      


○ 정말 진술을 거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실제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인간은 일단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싶은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받는 과정을 지켜보면 묻지도 않은 말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피의자를 쉽게 볼 수 있다. 너무 장황하게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사람이 많아 오히려 수사관이 자제시키기 일쑤다.


 둘째, 범죄를 인정하는 데 피의자의 자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진술거부권 행사가 많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진술하지 않더라도 다른 증거로 범죄를 증명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진술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 수사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진술하지 않더라도 큰 실익이 없다는 의미다.

 셋째, 진술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불이익이 전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해놓은 권리를 실제로 사용한다고 불이익을 주는 것은 법 규정에 맞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당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빤한 범죄 사실을 두고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수사기관, 나아가 법원에 좋지 않은 인상을 주고, 결과적으로 나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른바 ‘괘씸죄’에 걸릴 수 있는 것이다.      


<출처: pixabay>

 다시 말하지만 수사받는 과정에서 검사의 질문에 반드시 솔직하게 답해야 하는 건 아니다. 헌법에서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진술거부권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진술거부권을 통해 실현하려는 가치, 즉 피의자(피고인)의 인권 보호와 공정한 재판 실현은 여전히 중요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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