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이 끈질기게 전화를 건 이유_<무한도전> 408회
<무한도전> 원년멤버로 활동하던 노홍철이 하차한 건 음주운전 때문이었다. 그러자 제작진은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멤버들의 마음가짐을 점검하기로 한다. ‘극한알바’라는 어려운 녹화를 하루 앞둔 늦은 밤, 멤버들과 친분이 있는 서장훈은 ‘유혹의 거인’이 되어 멤버들을 꼬드겨 술을 마시게 하려 한다. 간단하게 맥주나 한 잔 하자는 서장훈의 제안에 멤버들은 다음 날이 녹화라는 이유로 거절한다.
하지만 제작진은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점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에는 서장훈의 유혹을 이겨낸 정준하가 팀을 이뤄 멤버들을 유혹한다. 부드럽게 칭얼대는 정준하와 강하게 압박하는 서장훈의 환상 호흡으로 멤버들을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는 과정을 되풀이하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던 정형돈, 박명수, 하하가 마지못해 술자리에 나타난다.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술을 마신다.
서장훈의 행동은 함정수사와 닮았다. 실제 수사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함정수사란 무엇일까?
경찰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려도 되는 걸까?
얼마 전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장남 A 씨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되었다. 유력 정치인의 아들인 A 씨 사건이 화제가 되면서 경찰의 수사 방법도 관심을 끌었다. 마약 범죄는 대체로 은밀하게 일어나는데, 경찰은 어떻게 A 씨를 체포할 수 있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여성 경찰이 마약 파트너를 희망하는 역할로 위장해 A 씨를 현장으로 불러낸 뒤 체포한 것이다. 이른바 함정수사(陷穽搜査)를 이용했다.
함정수사는 특정인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인한 뒤 실제 범죄가 발생하면 검거하는 수사기법이다. 함정수사의 적법성이 논란이 되는 것은 ‘함정’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부정적 느낌 때문이다.
함정을 판다는 면에서 부정적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함정수사를 무조건 금할 수는 없다. 함정수사는 유용하면서도 필요한 수사기법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통상적인 수사 방법으로는 범죄를 적발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마약범죄, 뇌물범죄, 도박과 같은 범죄가 그렇다. 이들 범죄는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벌어진다는 특성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외진 곳이나 폐쇄적인 공간에서 범죄가 발생하기에 목격자를 찾기도 어렵다.
수사기관이 알아서 범죄 수사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피해자가 고소를 하거나 제3자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되는 일도 많다. 사기 사건에 대한 수사는 대부분 피해자의 고소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마약, 뇌물, 도박 유의 범죄는 직접적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들 범죄는 사회질서를 해친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이 피해자라 할 수 있지만, 일반 국민이 은밀한 범죄를 발견해 신고하는 걸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처럼 은밀하게 벌어져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범죄를 적발하기 위해 매수자(마약범죄의 경우), 공여자(뇌물범죄의 경우), 이용자(도박범죄의 경우)를 가장한 함정수사가 사용되는 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아들 A 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함정수사는 마약사건에서 주로 활용된다.
함정수사는 권장되는 수사기법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필요악에 가깝다. 따라서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함정수사에도 적법한 함정수사가 있고, 위법한 함정수사가 있는데, 판례는 적법과 위법을 어떻게 구별할까?
함정수사가 위법한 지를 가리기 위해서는 여러 요소를 고려해 살펴야 한다. 해당 범죄의 종류는 무엇이고 어떤 성질을 지녔는지, 유인하는 사람은 어떤 지위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역할을 했는지, 유인한 경위는 어떠했고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유인했을 때 유인당하는 상대방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상대방이 동일한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지, 유인 행위 자체가 위법한 건 아닌지 들이다. 비슷한 사건이라 해도 각 사건마다 특수성이 있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는 앞서 말한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해의 편의를 돕는 차원에서 간단하게 판단 기준을 설명하면, 함정수사는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범의유발형이다. 범죄를 실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수사기관이 과도하게 개입해 상대방에게 적극 권유함으로써 범죄의 의도(범의)를 만들어내는 것은 위법한 함정수사라는 것이 대법원 입장이다.
범의유발형과 구분되는 것이 기회제공형이다. 수사기관이 개입하기 전부터 원래 범죄의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단순히 범죄를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을 때 실제로 범죄가 일어난 경우인데, 이런 경우는 적법하다고 본다.
노래방 주인은 평소 도우미를 부르지 않았고, 불러줄 생각도 없었는데 수사 실적을 채우기 위한 손님을 가장한 경찰관이 끈질기게 요구해서 노래방 도우미를 불러 준 경우는 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다.
그와 달리 마약 거래를 일삼는 조직원에게 마약을 사겠다고 말하는 건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함정을 팠다기보다 소극적으로 멍석을 깔아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범죄가 생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자 범죄가 발생한 것이므로 이러한 수사는 법에서 허용하는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다.
위법한 함정수사를 하면 어떻게 될까? 수사 방법에 일부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유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일본과 독일은 위법한 함정수사로 적발되었다 해도 처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가가 사람을 유혹해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들고, 한편으로는 처벌하는 것이 모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를 두고 아예 무죄 판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한다. 공소기각 판결은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 규정에 위배되어 무효인 경우에 하는 것인데, 형사소송법적으로 무죄판결과 구별되지만, 실제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무죄판결과 큰 차이가 없다.
함정을 파놓고 함정에 빠지기를 기다리는 건 어쨌든 좀 치사해 보인다.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수사기관이 함정수사를 한다는 게 문제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은밀하게 벌어지는 범죄를 적발해내기 위해서는 함정수사를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래서 대법원은 함정수사를 위법한 경우와 위법하지 않는 경우로 나눠 판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