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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Oct 15. 2018

왜 시간이 지나면 범죄를 처벌하지 않을까?

- 미제사건을 잊을 수 없는 그들_<시그널>  1회

○ 미제사건과 공소시효

 2000년 7월 29일, 여자 초등학생 한 명이 납치되어 사망한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2015년 7월 27일, 사건 발생으로부터 무려 15년의 시간이 지나 곧 공소시효가 만료될 상황에 처했다.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은 우연히 이재한(조진웅)이 보낸 무전을 바탕으로 수사하던 백골 사체를 발견하는데, 알고 보니 그 사체는 과거 피해 학생을 살해한 용의자로 의심받던 사람이었다. 과거 납치사건과 관련된 증거가 나오자 경찰 고위 간부인 김범주(장현성)는 적잖이 당황하여 사건을 서둘러 덮으려 하지만 차수현(김혜수)의 생각은 달랐다.      


 “미제사건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거니까, 잊을 수도 없는 거.”     


 박해영과 차수현, 두 사람의 활약 덕에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어렵게 찾아내지만 그 사람은 진범이 아니라 진범이 일부러 파놓은 덫이었다. 공소시효가 만료될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두 사람의 마음은 다급해진다.     


공소시효는 무엇이고왜 공소시효라는 제도를 두는 걸까?     


<출처: "시그널" 홈페이지>


○ 공소시효란 무엇일까?

 공소시효(公訴時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형사소송의 절차 전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바로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형사소송을 통해 유죄로 인정되고 판결이 확정되어야 비로소 처벌이 이뤄진다. 민사소송은 누구나 제기할 수 있지만 형사소송은 검사만 제기할 수 있는데, 검사가 형사소송을 청구하는 행위를 공소제기(公訴提起) 줄여서 기소(起訴)라 한다.

 공소시효란 검사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 공소를 제기할 권한을 소멸시키는 제도다. 형사재판을 거쳐 유죄가 인정되어야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데, 공소제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단순하게 말해 공소시효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제도인 것이다.


 형사법에 공소시효가 있다면 민법에는 취득시효와 소멸시효가 있다. 취득시효, 소멸시효, 공소시효는 구체적인 의미에서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공통점을 가진다. 시간이 상당히 흘러 과거와 현재의 상태가 다른 경우에는 과거 상태보다 현재 상태를 더 존중한다는 점이다. 법 이념으로 이야기되는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 중에서 시효제도는 법적 안정성을 추구한다.     

 공소시효는 결국 시간의 문제다. 공소시효 기간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다른데,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5년이다. 공소시효가 지났는지 명확히 판가름하려면 기간을 계산하는 시작점과 끝점이 분명해야 한다. 공소시효의 시작점은 범죄 행위를 종료한 때고끝점은 공소를 제기하는 때다.      



○ 공소시효를 둘러싼 논쟁들

 범죄를 저지르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게 상식이고 사람들이 가진 정의 관념에 부합한다. 그런 점에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처벌하지 않는 공소시효제도는 얼핏 이상한 제도처럼 느껴질 수 있다. 도대체 공소시효를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근거가 제시된다.


 첫째는 범죄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할 필요성 때문이다. 오래전 일으킨 사소한 범죄를 아주 긴 시간이 지난 뒤 문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는 유죄 입증의 어려움이다. 시간이 지나면 증거가 없어지거나 훼손된다. 범인을 제대로 밝혀내기 힘들다면 공소시효를 인정해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셋째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것에 불이익을 줄 필요성이 있어서다. 흔히 소멸시효를 인정하는 이유에 대해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덧붙는다. 이와 유사하게 검찰로 대표되는 국가도 공소제기라는 권리를 장시간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그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다는 논리다.    

 

 공소시효를 인정해야 하는 근거에도 일면 타당성이 있지만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첫째는 범죄자나 그 주변 사람들의 인권보다 피해자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상태를 존중하는 법적 안정성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법의 다른 이념인 정의도 중요하다. 정의를 실현해야 할 요청이 더 강한 경우에는 법적 안정성이 한 발 물러나야 한다는 논리다.

 둘째는 증거를 찾는 것이 아주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최근 과학수사 기법이 발달해 오래전 사건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곧 증거가 없다면 할 수 없지만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는데도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처벌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셋째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유는 예외로 둬야 하며 가급적 권리가 행사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리는 기본적으로 혜택의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혜택을 박탈할 때는 매우 조심스러워야 하며 이를 박탈해 국가의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사하게 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출처: MBN 뉴스 캡쳐>

○ 공소시효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지난 1999년 5월 20일 오전 11시, 대구의 어느 동네 골목에서 한 남성이 어린아이에게 황산을 끼얹었다. 황산을 뒤집어쓴 김태완(당시 6세) 군은 49일 동안 고통 속에서 투병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린 자녀를 잃은 것만도 가슴이 찢어질 듯한데, 더 큰 문제는 15년이 지나도록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 김태완군의 어머니 박정숙 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살인죄 공소시효의 철폐를 촉구한 것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회는 2015년 7월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사람을 살해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이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을 흔히 태완이법이라 부른다.     


 태완이법의 정신은 공소시효가 적용되는 범위를 줄여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을 가급적 최소화시키자는 것이다. 우리 법은 공소시효를 인정하면서도 공소시효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먼저 공소시효의 시점에 대한 예외다. 원칙적으로 범죄 행위가 발생한 때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되지만, 미성년자 또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경우에는 해당 성폭력범죄로 피해를 당한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날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는 범죄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범죄를 당하고도 힘이 약해 미처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그 의미를 이해하고 주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공소시효가 진행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또한 공소시효가 진행되다가 중간에 정지할 수도 있다. 흉악범죄를 저지른 뒤 해외로 도피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해외에서 숨어 지내다가 공소시효가 지난 뒤에 들어오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런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불합리해 보인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공소시효를 정지시킨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로 묻어두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형사소송법이 시간이 지나면 처벌하지 않는 공소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건 아주 오래전 일을 자꾸 들춰내면 오늘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바로 잡아야 하는 일도 있다. 그것이 법이 공소시효를 인정하면서도 그 단점을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해두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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