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의 접견시간이 무제한인 이유_<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
회삿돈 497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어느 재벌 총수는 구치소에서 보낸 2년 7개월 동안 변호인 접견을 포함해 총 1778회나 접견을 했다. 변호인 접견을 특별히 선호하는 행태는 꼭 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전에 운동을 나갔다가 오후에 변호인이 오면 내내 시간을 보내다 방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집사 변호사라는 말이 있다. 집사가 주인 곁에서 온갖 번거로운 일을 다 처리해주듯, 의뢰인 곁에서 의뢰인의 고충을 처리해주는 변호사를 말한다. 다시 말해 구속된 피고인의 변호를 위해 노력한다기보다는 피고인을 접견해 말동무를 해주고 소송과 무관한 업무를 대행해주는 일을 주로 하는 변호사들을 낮춰 일컫는 말이 바로 집사 변호사다.
변호인접견권은 어떤 권리이고,
법이 변호인접견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호인접견권(辯護人接見權)은 말 그대로 변호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변호인은 단순히 피고인을 만나기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으로부터 서류나 물건을 받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변호인접견권은 헌법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권리다. 변호인접견권을 인정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기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형사재판이 끝나기 전에 범죄 혐의가 있는 피고인을 체포하거나 구속하는 것은 처벌을 위해서가 아니라, 범죄의 추가 발생을 막고 증거인멸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해놓고 있지만 그렇다고 피고인의 인권이 무제한적으로 부인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과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일이다. 또한 체포나 구속이 되면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 이때 변호인 접견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둘째는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체포나 구속이 되었다고 모두 유죄는 아니다. 법원의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 아직 유죄가 아닌 피고인은 자신의 입장을 적극 주장해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체포나 구속이 되어 사회와 격리된다면 방어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때 변호인이 조력자가 되어 사건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피고인이 변호인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변호인이 아닌 가족, 친구들과도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변호인 접견과 비변호인 접견에는 여러 차이가 있다.
먼저 변호인 접견은 제한 없이 보장되지만, 비변호인 접견은 그렇지 않다. 법원은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비변호인과 접견을 금지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호인 접견은 제한할 수 없다.
횟수와 시간에도 차이가 있다. 비변호인 접견은 미결수 기준으로 1일 1회로 제한되고 시간도 회당 30분 이내다. 그에 반해 변호인 접견은 횟수와 시간제한이 없다. 이 점을 악용하면 변호사를 집사처럼 이용할 수 있다. 야간이나 공휴일 같은 특수 상황이 아니면 하루 종일 변호사와 이야기할 수도 있다. 꼭 소송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일상 이야기, 심지어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물론 변호인 접견 횟수와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은 취지가 변호인을 말동무 상대로 이용하라는 건 아니다. 사실관계가 간단하고 특별히 법리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사건도 있겠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는 일부터가 간단치 않거나 치밀한 논리를 구상하고 소송 전략을 짜야하는 사건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 변호인은 피고인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정리하고,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때로는 사건기록을 함께 보면서 질의응답을 하거나,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검토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충분한 접견시간은 충실한 변호를 위한 전제가 된다.
아울러 변호인과 하는 접견은 비밀이 보장된다. 변호인 접견을 할 때는 교도관이나 경찰관이 입회할 수 없다. 대화 내용을 듣거나 녹음하는 행위도 해서는 안 되며 대화 장면을 촬영할 수도 없다. 비변호인과 피고인이 접견할 때는 두 사람 사이에 접촉 차단시설이 존재하지만, 변호인과 접견할 때는 차단시설이 없다.
○ 부작용은 있지만, 변호인접견권이 중요한 이유
집사 변호사가 활동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변호인접견권을 악용하는 이들의 꼼수와 이에 동조하는 일부 변호사들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는 변호사 업계의 구조적 문제도 있다. 과거에 비해 변호사 수는 크게 늘었지만 그에 비례해 사건 수는 증가하지 않아 수입이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던 일부 변호사가 변호인접견권을 이용한 것이다.
집사 변호사로 활동하는 행위가 범법행위도 아닌 데다 변호사의 업무 방식은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집사 노릇을 하면서 피고인의 말동무나 하는 것을 정상적인 변호 활동이라 보기는 힘들다.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고 해서 그 제도가 없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피고인이 변호인의 도움을 적절히 받을 수 있으려면 변호인접견권은 반드시 필요하다. 헌법재판소도 “변호인과의 자유로운 접견은 신체구속을 당한 사람에게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어서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 등 어떠한 명분으로도 제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하며 그 중요성을 인정했다.
변호사는 판사, 검사와 달리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폭넓게 보장된다. 하지만 변호사라는 이름을 내걸고 일을 한다면, 변호사의 사명이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시한 변호사법의 뜻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