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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Oct 29. 2018

징용 피해자들은 일본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 지옥도에서 있었던 일_<군함도>

○ 군함을 닮은 지옥섬

 원래 이름은 하시마(端島)이지만 일본의 해상군함 ‘도사’를 닮아 군함도(軍艦島)라 불리는 섬. 이곳은 축구장 2개 만한 크기의 인공 섬으로 섬 전체가 탄광이며 갱도이다. 평균 45도 이상의 고온의 갱도에서 살인적인 강도의 강제 노동을 감당해야 했던 조선인들에게 이곳은 군함도가 아니라 지옥도였다.

 이 섬에 서로 다른 배경과 사연을 가진 조선인들이 모여든다. 경성 반도호텔에서 춤추고 노래하기를 즐기는 악단장 강옥(황정민), 일제 치하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말년(이정현), 그리고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일본에 침투한 광복군 소속 특수요원 무영(송중기)도 그들 중 일부이다.


 각자 이곳에 온 사연은 다르지만, 목표는 하나이다. 이 섬을 무사히 빠져나가 고국인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염원이다. 하지만 일본이 이들을 순순히 놓아줄 리 없으므로 섬을 빠져나가는 일이 호락호락할 리 없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진다. 처절한 사투 끝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은 가해자인 일본 회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출처: 영화 "군함도" 스틸컷>


○ 피해자들의 외침

 이명목 씨 등 6명(이하 ‘피해자들’)은 1944년 히로시마 미쓰비시 기계제작소와 조선소 노무자로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하고 겨우 귀국했다. 그리고 2000년 5월 1일 대한민국 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이하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쓰비시가 국제법을 위반하여 불법행위를 하였으므로 손해배상을 하고, 지급하지 않은 임금도 달라는 요구였다.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을 이용하여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고 가 짐승처럼 사람을 부리고 그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독점한 회사라면 응당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 그게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최소한의 상식이지만 미쓰비시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강변했다.   

   

 첫째, 강제 징용에 관여한 회사는 이미 소멸해서 없어졌다.

 둘째, 한국과 일본이 청구권 협정을 맺어 이미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셋째,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에서 이미 패소했다.

 넷째,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피해자들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법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아주 완전히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고 어느 정도의 법적 혹은 논리적 근거는 갖추고 있다. 이러한 미쓰비시의 주장에 대해 우리 대법원(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 미쓰비시의 주장 vs 대법원의 판단

 미쓰비시의 첫 번째 주장은, 불법행위를 한 회사(구 미쓰비시)가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A가 한 행위를 A와 무관한 B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으므로 미쓰비시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두 회사가 전혀 다른 별개의 회사일 경우의 이야기이다.

 대법원은 직원 구성 등을 고려했을 때 구 미쓰비시와 현재의 미쓰비시가 법적으로 동일한 회사라고 보았다. 또한 미쓰비시 자신도 구 미쓰비시를 미쓰비시의 기업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동일한 회사로 본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 한 마디로 구 미쓰비시와 현재의 미쓰비시는 무늬만 다른 회사이지, 연속성이 있는 동일한 회사인 것이다.     


 미쓰비시의 두 번째 주장은, 한국과 일본이 청구권 협정을 맺어 강제 징용 문제를 완전히 합의하였으므로 강제징용은 해결이 된 문제라는 것이다.

 태평양전쟁이 종전 후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는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 협정”)을 체결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게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단이다.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국가가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함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쉽게 말해 강제징용에 관한 사항은 애초 청구권협정에 포함된 사항도 아니고아무리 국가라고 해도 국민이 가지는 청구권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출처: JTBC 뉴스룸>

 미쓰비시의 세 번째 주장은, 피해자들이 이미 일본에서 동일한 소송을 해서 패소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법원도 똑같은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이 일단 판결을 내리면 이 판결은 유사한 다른 사건에 영향력을 미치고 그건 외국 법원의 판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외국 판결을 우리나라 법원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일본 판결은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전제 아래,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에 따라 징용을 한 것은 불법적이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일본 판결이 우리나라의 헌법에 배치되므로 일본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미쓰비시의 마지막 주장은, 이미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인데, 이는 소멸시효와 연관된다.

 소멸시효는 권리가 행사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면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으로 흔히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받지 않는다.”라는 말로 설명된다. 그러나 소멸시효에는 예외가 있다. 채권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크고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해 버리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 즉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권리를 박탈해 버리면 너무 불합리하고 정의에 반하는 때에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미쓰비시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건 권리남용이라고 판단하였다. 피해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제대로 권리행사를 할 수 없었는데그걸 이유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하면서 책임을 피하려는 정당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더군다나 미쓰비시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노동력을 착취한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이다.       


<출처: 스브스 뉴스>

 일본과 독일은 전범(戰犯)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과거의 전쟁에 대한 태도는 사뭇 달라 곧잘 비교되고는 한다. 과거의 잘못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반성하는 독일과 달리 명백한 사실을 마주하고도 억지주장을 하며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모습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지만, 부끄러운 역사도 분명히 존재하며 부끄러운 역사마저 승계하는 것이 후손의 몫임을 일본은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덧) 대법원은 강제징용 사건에 대해 이 결론을 내렸고, 고등법원도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판결을 선고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신속하게 최종 결론이 나왔어야 하지만, 아직도 이 사건은 완전히 종결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재판 거래 의혹과 연관이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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