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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판결 선고

by 로도스로

신상건에 대한 폭행 사건은 싱겁게 끝났다. 조 서장이 송원진에게 약속한 대로 경찰은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을 덮는데 급급했다. 신상건이 받은 처분결과 통지서에는 “혐의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분명히 폭행을 당했는데도 때린 사람이 죄가 없다니, 신상건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않은 건 죄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건 송원진이 힘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신상건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신상건은 먼저 토지주택공사 충북지역 본부를 찾았다. 공사 건물 앞에는 1위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의 한 명이 든 피켓에는 “비리의 온상 송원진은 물러나라.”라고 적혀 있었다. 신상건은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명함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신상건 기자라고 합니다.”

신상건의 명함을 살펴보던 남성은 신상건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김재만입니다.”

“지금 송원진 이사에 대해 취재를 하는 중입니다.”

김재만은 토지주택공사에서 근무하던 직원이었는데 송원진에 대한 비리를 폭로한 뒤에 직장을 잃은 사람이었다.

“아유, 말도 마세요. 그 사람 뒤가 얼마나 구린데요. 그리고 저만 피해를 당한 게 아니에요.”

김재만은 송원진에게 피해를 당한 다른 사람도 소개시켜 주었다. 그동안 송원진의 횡포에 시달리던 직원들은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았다.

“망나니도 그런 망나니가 없어요.”

“그 XX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서...”

송원진은 토지주택공사의 충북지역본부장으로 있으면서 토지주택공사를 좌지우지하고 있었으나 관련 경력도 전문성도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국내에서는 대학 진학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 송원진은 도피성 해외 유학을 떠났다. 이 사업 저 사업에 손을 대었지만 결국 다 실패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토지주택공사의 충북지역 본부장 자리에 올랐으니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송원진에게 있는 거라곤 실세 국회의원과의 사적인 친분이 전부였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각종 사업의 입찰을 진행할 때면 입찰을 따내려는 건설업자들이 송원진을 만나려고 혈안이 되었다. 각종 연줄을 동원하여 송원진을 만난 업자들은 고급 호텔에서 술을 대접하고, 해외여행도 공짜로 하게 해줬다. 고가의 외제 승용차와 현금을 챙겨주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만 하면 입찰은 성공이었다. 송원진에게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았지만 그보다 큰 이익을 볼 수 있으니 남는 장사였다.

“혹시 송원진의 비리에 대한 증거가 있을까요?”

김재만은 고심 끝에 대답했다.

“제가 가진 건 없고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을 알기는 한데...”

김재만이 알려 준 사람은 전기공사업체를 운영하던 박철홍이었다. 박철홍이 송원진에게 쓴 돈만 해도 1억 원이 넘었다. 하지만 송원진은 약속과 달리 박철홍에게 사업을 맡기지 않았다. 누적된 경영난을 견디다 못한 박철홍은 결국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게 송원진에게 건넨 돈을 정리한 장부입니다.”

장부에는 날짜와 장소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혹시나 해서 보험용으로 마련해둔 인데, 이 정도면 송원진도 쉽게 발뺌하지 못할 정도로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근데 이게 공개되면 사장님도 안전하지는 않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사업도 다 망하고 더 잃을 것도 없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정의구현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신상건은 송원진에 관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기획기사로 내보냈다.

토지주택공사 송원진 이사, 수 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신상건은 본인이 공들여 쓴 기사를 찬찬히 읽었다. 폭행 사건에서 시작한 기사는 신상건의 각종 비리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기사가 보도되자마자 송원진이 언론사에 전화를 걸었다.

“김 사장! 언론사 문 닫고 싶어? 당장 기사 내려.”

“본부장님. 아무리 제가 사장이라고 해도 모든 기사를 다 컨트롤 할 수는 없습니다. 기사는 원칙적으로 기자가 작성하고 기사 게시 여부는 편집부에서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돌았나? 어디서 개소리하고 있어? 내가 한가하게 그런 공자님 말씀이나 듣자고 전화한 줄 알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콩밥 한 번 제대로 먹어 봐야 정신 차릴 거야? 아님 사장 자리에서 당장 내려오게 만들어 줄까?”

송원진의 압박은 단순히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해서 신상건의 신문사에 광고를 게시하는 광고주들에게 연락했다. 다음 날 언론사에 광고주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광고주들이 광고를 더 이상 싣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신문사 사장은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다른 언론사도 그렇지만 지방의 언론사는 광고 매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큰손인 광고주들이 대거 빠지면 신문사 존립마저 어려워지게 된다. 결국 신문사 사장은 송원진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본부장님,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몰라서 물어? 당장 기사를 내리고 기사 쓴 기자 새끼 잘라. 맘 같아선 내 앞에 와서 무릎 꿇고 빌라고 하고 싶지만, 내가 워낙 인자한 사람이라 그건 참을 게.”

“기사는 바로 내리겠습니다.”

“기자는?”

“기자를 자르면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노동청에서 조사를 나올 수도 있고, 기자도 더 날뛸 것 같고...”

두 사람은 신상건을 자르지 않고 기사를 내리는 선에서 합의했다.

신문사의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상건은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다고 내가 물러날 줄 알았다고 생각했으면 아주 큰 오산이야.”

지금은 바야흐로 뉴미디어의 시대이다. 신문, 방송 같은 전통적인 언론 매체 못지않게 인터넷에 기반한 매체들의 파급력도 상당하다. 신상건이 선택한 건 유튜브였다.

- 충격실화! 무자비하게 사람을 패도 무죄?

관심을 끌기 위해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선택하긴 했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CCTV 영상 중에서 폭행 장면을 두드러지게 편집해서 올렸다. 조회수는 100만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송원진에 대해서 취재를 하면 할수록 송원진이 빌런이라는 게 드러났다. 양파 껍질처럼 까도 까도 비리가 계속 튀어나왔다. 폭행 영상에 이어서 신상건이 올린 건 채용 비리에 대한 것이었다.

- 충격실화 2탄! 주택공사 충북지역본부 직원 채용의 사기극.

주택공사 충북지역본부의 직원 채용 과정을 파헤쳐봤더니 문제가 심각했다. 채용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송원진의 친인척들이거나, 아니면 송원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자녀였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이상한 일이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의심을 품기에 충분했다. 이 영상은 취업 준비생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개되면서 많은 취업준비생들의 공분을 샀다. 그 뒤에 SNS를 통해 신상건의 영상이 널리 퍼지면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요새도 저런 XXX가 있다니.

- 열나게 공부해봐야 무슨 소용.

-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바로 취업하고 누구는 입에 단내나도록 공부해도 백수이고. 이게 바로 헬조선.

금수저만 직장을 구할 수 있고 흙수저나 무수저는 돈을 벌기도 어렵다는 분노가 폭넓게 확산되었다. 여론의 방향도 바뀌었다.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수사 기관의 태도도 바뀌었다.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인 수사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서 범죄 혐의가 있으면 철저하게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 소식을 접한 송원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형님, 큰일 났습니다. 저 한 번 살려주십시오.”


***

심정순 사건의 판결 선고일. 법관 출입문이 열리고 재판장이 들어왔다.

“지금부터 충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의 판결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사건번호 청주지방법원 2019가합456252 원고 한국토지주택공사, 피고 심정순.”

김선경은 침을 꼴깍 삼켰다. 심정순은 아예 눈을 감은 채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이 사건은 원고 토지주택공사가 피고 심정순에게 이 사건 아파트의 명도를 청구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원고는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었으므로 피고가 아파트를 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피고는 임대주택법에 따라 우선분양권을 가지므로, 아파트에서 계속 지낼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우선분양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아파트의 임차인이어야 하므로 이 사건의 쟁점은 피고 심정순이 임차인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라 할 것입니다.”

먼저 판사가 사실관계와 쟁점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이에 대해 원고는 임대차계약서에 피고 심정순이 아닌 김선경이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피고는 임차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피고는 이 사건 아파트에 실제로 거주하였고 임대주택법의 공익적 성격을 고려할 때 피고가 임차인이 맞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고혁두는 재판장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결론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계속 읽어나갔다.

“피고의 남편은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거동을 할 수 없었고 피고가 전적으로 병수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피고 심정순은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피고는 이 사건 아파트에서 장기간 생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반해 계약서에 임차인으로 기재된 김선경은 이 사건 아파트가 아닌 다른 곳에 생활하였습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임차인은 계약서에 기재된 김선경이 아니라 실제 주택에서 거주한 피고 심정순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김선경의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어. 판사님도 우리의 사정을 헤아려 주시는구나.’

“그리고 법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해석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특히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임대주택법은 공익적 목적이 강하다는 걸 고려하면 그럴 필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피고 대리인이 온몸으로 주장한 바와 같이, 차가운 머리뿐만 아니라 뜨거운 가슴도 중요하다는 말 역시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심정순의 얼굴에 희망이 비췄다. 재판장이 잠깐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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