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혁두의 모습을 본 재판장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법정에서 입어야 할 옷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암묵적인 규칙이란 게 있다. 거의 모든 변호사들은 최대한 단정한 정장을 입고 법정에 나온다. 그런데 고혁두는 마치 쇼를 하는 사람처럼 옷을 입었다. 지금껏 재판을 20년 넘게 진행하면서 저런 모습을 한 변호사를 본 건 처음이었다.
“옷이 그게 뭡니까?”라는 말이 목에 걸렸지만 참았다. 특이한 옷을 입은 게 법에 위반되는 건 아니라서 일단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럼 피고 측에서 더 주장을 하거나 입증을 할 게 있나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존에 제출했던 서면 내용을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고혁두는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아니,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팔이 소매 안에 있어 서류 뭉치를 꺼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겨우 꺼냈다 싶었는데, 서류를 넘기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마치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참다못한 김예은 변호사가 한마디 했다.
“찾기 힘드시면 제가 대신 찾아드릴까요?”
“아닙니다. 지금 확인해보니, 제가 하고 싶은 주장은 ‘계약서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피고 심정순 씨가 임차인이 맞다’라는 겁니다. 이건 저번에 준비서면으로 제출했으니 자세한 내용은 서면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피고 측 대리인의 행동이 하도 느려서 오늘 하루 종일 재판을 해야 할까 봐 걱정하였는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빨리 찾으셔서 다행입니다.”
김예은 변호사가 비꼬듯이 말했다.
“이런 말씀드리는 게 외람되기는 하나, 원고 측 대리인께서는 상대방 대리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시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차분하지만 강하고 단단한 어조로 고혁두가 말했다. 그러자 김예은 변호사는 한껏 흥분해서 말했다.
“지금 예의라고 하셨어요? 누가 누구에게 예의 운운하는지 모르겠네요. 웬만하면 이런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변호사님이야말로 예의가 없는 것 아닌가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김예은 변호사는 못에 핏대까지 세웠다.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법정에 나올 생각을 하시다니. 같은 변호사로서 제가 다 민망합니다. 그리고 이건 법정모독이라고 볼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심정순과 김선경도 김예은 변호사의 말에 수긍하는 면이 있었다. 두 사람이 그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들어볼 것도 없었다. 재판장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김예은 변호사가 대신 그 말을 해주자 솔직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김예은 변호사의 말에 공감하는 중이었지만 고혁두는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슬며시 미소까지 지었다.
‘됐어, 걸려들었어. 이제 시작하면 되겠군.’
고혁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고 대리인인 김예은 변호사님께서 제 옷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으니, 이에 대한 해명을 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겪었던 일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옷을 사러 가게에 갔고 이 옷을 보자마자 한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디자인도 괜찮고 색상도 마음에 들었죠. 문제는 옷의 크기였습니다.”
고혁두의 목소리가 법정을 가득 메웠다.
“제 몸에 비해 옷이 너무 커서 맞지가 않았죠. 그래서 저는 가게 주인에게 옷이 너무 커서 제 몸에 맞지 않으니 수선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가게 주인은 제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가게 주인은 ‘옷이 큰 게 아니라 당신 팔과 다리가 너무 짧은 거다. 그건 당신 잘못이니 옷을 사지 말든지 그냥 그대로 입으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어.”
방청석에 앉은 누군가가 혼잣말처럼 내뱉었는데, 법정 안이 워낙 조용했던 까닭에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조금 전 방청석의 누군가가 말씀하신 것처럼 가게 주인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지 않습니다.”
잠자코 고혁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예은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피고 측 대리인이 본 사건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왜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피고 측 대리인이 겪은 황당한 일을 시시콜콜하게 나누는 곳이 아닙니다.”
쓸데없는 소리로 시간 낭비를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재판장도 김예은 변호사의 말에 동조했다.
“피고 측 대리인께서는 본 재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언급은 자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옷 이야기를 꺼낸 건 옆에 계신 김예은 변호사가 제 옷에 대해 지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건 옷 이야기가 본 재판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김예은 변호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이 사건의 쟁점은 옷의 크기 같은 게 아니라 임대차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입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저는 지금 원고 측에서 하는 주장이 바로 옷가게 주인의 주장과 똑같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김예은 변호사. 그건 법정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심지어는 같은 편인 심정순과 김선경도 고혁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고혁두의 본격적인 변론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세심하고 사려 깊은 사람도 세상사 모두를 예상하고 대비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예기치 못한 일의 연속입니다.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주의 깊고 조심스럽게 법을 만들어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법이 완벽하다면 모든 분쟁은 법대로만 하면 되니 저 같은 변호사들은 할 일이 없어질 지도 모르죠.”
고혁두가 던진 가벼운 농담 덕분에 법정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고 사람들은 고혁두의 변론에 더욱 집중했다.
“법은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건을 예상하고 미리 해결책을 마련해둡니다. 기성복도 마찬가지인데, 보통 사람들의 선호나 체형 등을 예상해서 미리 옷을 만들어서 가게에 둡니다. 하지만 아무리 옷을 종류별로 만들어 두어도 사람마다 체형이 달라 예상과 다른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때 옷 크기에 체형이 맞지 않으니 옷을 입지 말라고 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조금 번거롭더라도 옷의 길이를 조금 늘이거나 수선해 줘야 할까요?”
심정순과 김선경은 그제야 고혁두가 이상한 옷을 입고 온 이유를 이해했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서의 임차인 칸에 피고의 딸인 ‘김선경’이 기재된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누가 사는지, 원래 계약을 체결할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원고 심정순은 임차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경직된 법 해석이 아닐까요? 그리고 법을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기계적으로만 적용하는 건, 옷을 사람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을 옷에 맞추는 것처럼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일 아닐까요?”
고혁두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변론을 계속했다.
“피고 심정순 씨가 살고 있는 주택은 임대주택입니다. 국회가 임대주택법을 제정한 이유는 피고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안정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임대주택법은 공익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입니다. 피고가 임대주택법에서 정한 임차인이 맞는지를 가릴 때에도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몸을 돌린 고혁두가 방청석을 향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십니다. 임차인이란 누굽니까? 바로 집을 빌려서 사는 사람입니다. 피고는 처음부터 이 집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고 싶어 합니다.공짜로 살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꼬박꼬박 돈을 내고 있으며 이후에도 그럴 겁니다. 그런데도 피고는 임차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계약서에는 임차인이 다른 사람으로 적혀 있습니다.”
김예은 변호사가 반격했다.
“네, 맞습니다. 계약서에는 피고가 아닌 피고의 딸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딸의 이름이 기재된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당시 피고는 뇌경색을 앓고 있는 남편의 병수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소변도 못 가리는 남편을 돌보느라 한 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피고에게 ‘왜 직접 가서 계약을 하지 않았냐?’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요?”
고혁두의 열띤 변론을 듣던 심정순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뜨겁던 여름도 가고 이제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들녘에는 황금 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갑니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엔 웃음꽃이 핍니다. 하지만 가을의 풍요로움도 모든 사람에게 허락된 건 아닌가 봅니다.”
고혁두가 김예은 변호사를 바라봤다.
“원고 주택공사는 100조원이 훨씬 넘는 자산을 가진 거대 공기업으로 전국에 수많은 토지와 주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피고는 제 한 몸 누울 집 한 채 소유하지 못해 임대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쫓아내 달라는 원고 주택공사의 요구에는 찬바람이 쌩쌩 붑니다.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어르신을 상상하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고혁두의 변론은 점점 막바지에 다다랐다.
“합리적 이상에 기반한 차가운 머리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요? 저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법을 해석하고 집행할 때에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사건에서 따뜻한 가슴뿐만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피고의 편에 함께 서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고혁두의 변론이 끝나자 방청석의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법정에서 박수를 치면 안 된다는 재판장의 제지에 따라 곧 박수는 멈췄다. 하지만 고혁두의 변론을 들은 사람들의 가슴에 작은 파문이 이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