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단풍든 시니어의 고백
담배 연기 속에 내 직업의 출발이 있었고
담배를 끊은 아픔의 먼 시간 후에
양치식물 고사리삼의 포자에서 담배 연기를 본다.
제주살이 초기 어느 묘지 자락에서 고사리삼 군락을 발견했다. 그 해 늦가을 고사리삼 포자의 날리는 모습을 찍으러 달려갔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디카를 장착했다. 그간 혼자 정사진을 찍으려고 원샷을 반복해도 흡족한 컷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동영상을 찍고 캡처하기 위해서다. 동영상 모드로 전환하고 고사리삼을 흔들었다. 고사리삼 포자들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모습이 동영상에 잡혔다. 동영상을 캡쳐하니 한 장의 사진이 나왔다. 바로 담배를 피우는 고사리삼이다.
그 담배연기는 내 삶을 관통하는 시간인 것이다. 첫 직업이 수원의 담배공장 공돌이였다. 기계에서 담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폈고, 기계에서 갓나온 궐련의 맛은 구수하고 달콤했다. 한 번 흡입에 2센티 정도는 타들어갔다. 목을 타고 들어온 담배 연기에 취해 그 시절의 청춘은 구김이 없었다. 솔담배 껍질을 인삼 여인으로 바꾸고, 보란 듯이 담배를 꺼내며 뽐내는 시절이었다. 몸에 찌든 담배물을 빼려고 퇴근 전에 사내 목욕탕에서 히히덕거리기도 했다.
40년 후 통영살이 하면서 솔담배의 모델인 처진소나무를 보려고 청도로 달렸다. 자동차 엔진소리는 CS-9에서 담배가 만들어지는 소리로 바뀐다. 그 소리 끝에 처진소나무가 보였다. 가지를 늘어뜨린 솔가지에서 추억이 넘실댄다. 담배는 절대 끊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었는데, 제2, 제3의 시간 속에 구로와 한계령의 담배 연기는 애달픈 사연이었다.
처진소나무 아래 솔방울이 많이 떨어져 있다. 내 삶의 추억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솔방울 한 개를 주어서 내 차 안의 앞유리 앞에 놓았다. 솔방울을 쳐다보면 갈라진 틈에서 추억이 시간이 넘실대며 담배 연기로 바뀌더니 낙상사고로 수술한 왼쪽 다리에 닿는다. 깜짝 놀라 왼쪽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한다. 잠깐이라도 굳어지는 수술 다리를 움직이는 동작은 절실함의 몸부림이다. 그러면서 떠올리는 고사리삼의 포자 날리기, 그리고 수원의 담배공장 시절의 풋풋함이여.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고사리삼속(Botrychium)은 동록성 6종과 하록성 3종이 있다. 이중 고사리삼(Botrychium ternatum)과 단풍고사리삼(Botrychium nipponicum)은 비교적 쉽게 볼 수 동록성 여러해살이 양치식물이다. 고사리삼은 3~4회 우상으로 갈라지고 겨울에 잎이 대부분이 변하지 않는다. 단풍고사리삼은 2~3회 우상으로 갈라지고, 겨울에 잎이 붉은 갈색을 띤다. 고사리삼의 잎끝은 둔한데, 단풍고사리삼의 잎끝은 날까롭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단풍고사리삼을 촬영하며 40년의 세월을 압축한다. 담배를 피우던 풋풋한 모습을 떠올리는 단풍든 시니어가 단풍고사리삼을 바라본다. 단풍고사리삼의 붉은 잎이 나오도록 바닥에 엎드려 단풍 배경을 만들며 촬영하는 자세는 힘들다. 하지만, 힘든 자세를 행복하다 느낀다. 행복은 그냥 줍는 게 아니라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일을 위하여 헌신하는 오늘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내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오늘을 잘 사는 것이리다. 그 오늘이 먼 훗날 멋진 추억이 될 것이며, 그 추억은 나를 외롭지 않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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