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리스난초를 찾는 한 마리 꿀벌 / 섬잔고사리

(45화) 내 삶의 한 순간을 zip.file로

by 로데우스

오프리스난초를 찾는 꿀벌의 그리움은

섬잔고사리에 다가가는 시니어의 마음

순간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만족스러움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te6VNEqoIoaRKiFjE1wc9VIO4iY%3D 섬잔고사리 군락


"섬잔고사리인가요?" "같아 보이긴 하네요. 어디서 보셨어요?" 2020년 12월 이 카톡의 내용이 어쩌면 제주에서 양치식물에 빠져드는 촉발제가 되었다. 다음 해 1월 서울에서 탐사대가 내려오고 현지 탐사를 하고 나서 검정비늘고사리(Diplazium virescens)라는 판정이 났다. 검정비늘고사리는 전남 고흥에서 발견된 희귀종이다. 물론 제주에 자생하지만, 실체를 확인 못한 검정비늘고사리를 발견한 것 자체도 큰 자취이다.

하지만 나는 섬잔고사리가 아니라는 말에 낙심했다. 양치식물의 초보자이지만, 카톡으로 "섬잔고사리인가요?"라는 질문을 할 때는 내 나름으로 공부하고 확인하고 확신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전문가의 판단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후 내 머리 속에는 섬잔고사리가 덮었다. 섬잔고사리가 아닌 것도 섬잔고사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2023년 8월의 일기는 내가 섬잔고사리로 착각하고 좋아했던 시간을 말해준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d4btQBHOUUj54uNIF5NoA3Oz4%2FY%3D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yci5VX5NcDEa6Yp17gsuSASuiV0%3D
섬잔고사리(좌), 큰섬잔고사리(우) / 포자낭군의 위치는 섬잔고사리는 중간인데, 큰섬잔고사리는 층륵의 안쪽이다.


"여름새우란이 없어진 분노와 허탈을 안고, 낙상자라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급경사로 된 길이 없는 위험한 하산을 감행했고, 황폐해진 풍경에 마음이 아렸다. 그런데 어찌 눈에 띄었을까? 빗물을 흠뻑 맞고 쓰러진 허연 잎을 보고, 뒷면의 포자낭을 보는 순간 전율했다. 섬잔고사리를 확신하고 웹을 검색한 후, 환희의 무아지경 시간이 흘렀다. 보고 또 보고, 대박을 넘어 초대박을 친 것이다.

양치식물에 조예가 깊은 지인도 섬잔고사리를 보지 못했다고 했고, 기록으로는 섭섬에 자생한단다. 그래서 볼 기대조차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원래 일찍 하산하여 지인과 커피를 마신 후 아내와 저녁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섬잔고사리를 보게 되어 일찍 자리를 뜰 수 없다. 늦게서야 하산하여 겨우 아내와 외식을 하면서도 섬잔고사리 포막 사진을 띄어놓고 흘끔흘끔 쳐다보며 식사를 했다. 포막이 웃으며 나를 격려하는 듯 환희의 꿈결같은 시간은 계속되었다.

자다가 일어나서는 사진을 보고 정말 섬잔고사리를 내 눈으로 본 것이 기특했고 뿌듯한 기분에 잠이 달아났다. 내가 섬잔고사리인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검정비늘고사리를 발견한 사연이 있고 그때부터 섬잔고사리의 특징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글을 보고, 그 원문을 찾아 해석해보기도 했던 경험을 실감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아내조차도 올 더워 견디기 어렵다는 말을 했는데, 나는 연속으로 대박 행진을 하고 있다. 혹독한 재활운동을 환희의 탐사로 연결하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섬잔고사리가 아니었다. 나는 오프리스 난초(Ophrys Apifera)를 찾은 한 마리 꿀벌이었던 것이다. 오프리스난초는 꿀을 분비하지 못해 암벌의 엉덩이를 닮은 꽃을 피우고, 암벌과 같은 페로몬을 방출한다. 그 페로몬에 취한 암벌을 향해 날아가는 수벌은 암벌인지 오프리난초의 꽃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암벌의 엉덩이를 닮은 꽃에서 욕망을 분출한다. 오프리스난초를 보고 싶어 유럽의 들판을 탐사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서 섬잔고사리가 아닌 고사리에게 투영된 마음은 한 마리 꿀벌의 애처로운 그리움이다.

tfile.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ieuh2OwMFCYlqcAwPz%2FNgQEq%2FPc%3D
tfile.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rR28IT2zbFgOdN%2FkYF2okNds2nM%3D
섬잔고사리 새순(좌), 잎줄기의 비늘(우)


2024년 7월 한 줄의 카톡이 도착했다. "검정비늘고사리라고 했던 큰섬잔고사리는 포자 확인 결과 섬잔고사리(Diplazium. nipponicum)가 맞다고 결론 냈습니다. 최근 나온 일본 도감에 실린 엽병 인편 사진이 잘못된 것 같아요." 4년의 시간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한 마리 꿀벌이 된 양치식물마니아는 또다시 가짜 섬잔고사리를 찾아가다가 소나기를 흠뻑 맞은 생쥐가 되기도 했고, 섬잔고사리 한 개체를 전문가에게 전해주려고 냉장고에 보관했던 것을 아내가 착각하여 버린 황당함의 에피소드까지 있었다. "기쁜 소식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는 답신은 나의 섬잔고사리 탐사에 대한 아름다운 zip.화일이다.


#양치식물 #섬잔고사리 #오프리스난초


이전 14화포기하지 않는 끈질김 / 고란초, 제주고란초, 큰고란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