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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데우스 Mar 31. 2024

아는 것은 본성이다

아는 것은 힘이다의 업그레이드 버전

이끼책(이끼와 함께 / 로빈 월 키머리)에서 삽화로 본 똥이끼(Splachnum ampullaceum)의 자연 모습을 보려고 구굴을 검색했는데, 아주 좋은 글을 발견했다. “아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다”라는 앨버타 생물 다양성 연구소 블로그의 이름이었다. 블로그 소개 글에는 “이 블로그의 이름이며 AMBI의 슬로건인 이 문구는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라는 내용이다.


돌이켜보건대 퇴직한 후 제2의 삶을 살고자 제주살이 하면서 양치식물을 알게 되었고, 이제 이끼의 세계에도 촉수를 뻗치려 하는 나의 삶에 딱 맞은 글이었던 것이다. "끌리는 것에 빠져보는 거야"는 내 삶의 지표이며 내 취미의 방향이다. 미개척분야나 비관심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야생화 취미를 살리고자 제주살이 중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홀로 양치식물을 찾아다녔다. 양치식물은 주로 깊은 산에 있고 마스크를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양치식물 분야는 어려워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조차 꺼리는 분야이며, 한국인이 쓴 일반교양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직 도감을 참조하면서 제주 양치식물의 약 75%(우리나라 양치식물 중 약 75%가 제주에 자생)의 양치식물을 보았다. 제주살이의 혼심을 다해 찾았다. 여유로운 은퇴생활이 아니라 깊이 파고드는 공부와 산속을 탐사하는 것이 일상이다.  몸이 피곤하여 파김치가 될 정도로 몰입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 대부분 혼자 찾으며 보냈다. 오로지 고사리 이름을 불러주고 싶고, 자주 찾으며 그 생태를 알고,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뿌듯한 시간을 보냈던 것은 나의 본능적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는 것은 본성이다."라는 글을 본 순간 머리를 탁 치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머리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나의 사는 방법에 칭찬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은퇴 후 제2의 삶을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나를 격려하여 주고 싶다. 내가 결정하고 후회 없이 추진하는 것이 나의 행복이다.




“아는 것은 힘이다”는 뭔가 잘못 인식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는 힘은 권력이다"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나의 삶이다. 권력은 남을 억누르고 올라서는 일이다. 그래서 권력을 남용하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진다. 힘은 고학력, 명문학교, 기득권자, 전문가, 외국연수 등 그 사람을 상징하고 포장하는 가면이 된 지 오래이다. 힘은 얼굴이고 증명이었다.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힘을 가진 곳에 도전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나를 증명하기가 너무 어려운 현실이다.


퇴직 무렵 야생화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전송하고 기다렸는데 모두 거절당했다. 이유는 나에게 간판이 없어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생화 책은 식물, 정원, 전공 등의 간판이 필요한데 나에겐 행정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책의 내용이 좋아도 간판이 없으면 안 된다면서 “간판이 좋으면 내용은 대필도 가능하다”란 막말을 들어야 했다. 이 얼마나 잘못된 현실인가.


양치식물이나 이끼는 네이버나 다음에서 검색하는 것보다 구굴에서 외국 사이트의  정보를 찾아서 공부하는 것이 더 낫다. 외국 사이트는 대학교, 연구소, 쇼핑업체 등 다양한 곳에서 고사리나 이끼 정보를 아주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우리는 식물 관련 기관 단체의 사이트에서조차 사진은커녕 한 줄 정보도 검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고학력의 시대를 살고 있고 외국에서 얻은 학위자도 널려있다. 그들은 대개 돈이 많이 벌 수 있는 곳에만 바글거린다. 돈이 안 되는 것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왜인가. 세상은 한쪽 바퀴만 돌아가면 절름발이가 된다. 모든 것이 원활히 작동되는 몸이 건강한 몸이 듯 말이다. 돈이 안 되는 일에도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현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역할도 국민의 관심이 많은 곳에만 집중된다. 교육에 총체적 문제점과 함께 직업 다양성이 제한된 현실은 답답하다.


아는 것은 힘이 아니고 아는 것은 본성이다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나니까 한다라는 뚝심이 사회 곳곳에 퍼졌으면 좋겠다. 나 역시, 인생 뭐 있어?  내 본성이 시키는 대로, 내 방식으로, 우직하게 전진하는 거야. 나니까 한다. 또 배우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던 공자의 말씀도 곁들이며 손을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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