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비 오는 날의 모험
콩짜개덩굴과 콩짜개란
양치식물과 난초의 엄청난 차이
번민과 즐거움 사이에 화엄(華嚴)의 꽃이 핀다.
제주살이 중 콩짜개란이 무척 보고 싶었다. 돈내코에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콩란이 피었다고 한다. 콩짜개란을 떠올리고 그곳을 안내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함께 그곳으로 가면서 콩짜개란을 볼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특히나 돈내코라는 이상적인 환경이 콩짜개란을 볼 확률을 높인다. 그곳에 도착하여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 경악했다. 콩짜개덩굴이 나무줄기를 덮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흔히 콩짜개덩굴을 콩란이라고 부른다. 외지인과 제주인의 인식 차이가 부른 에피소드였다.
콩짜개덩굴은 주로 남부지방에 많이 자생하는 상록의 난대성 양치식물이다. 나무나 바위에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잎이 콩 반쪽 같이 생기고 덩굴을 뻗어 콩짜개덩굴이다. 콩짜개덩굴은 영양엽과 포자엽이 있다. 포자엽의 포자낭군은 서로 붙어 선형을 이루고, 포자엽의 양쪽에 1열로 줄지어 달린다. 콩짜개덩굴은 두 종류인데, 잎이 둥그스름한 콩짜개덩굴이 흔하고, 긴 잎을 가진 긴꽁짜개덩굴은 간간이 보인다. 콩짜개덩굴이 나무줄기를 감싼 모습은 원시의 자연을 보듯 신비하고 열대의 숲을 감상하는 느낌을 갖는다.
제주의 원시림은 신비함을 선물하는 제주의 보물이다. 어느 날 나무줄기에 콩짜개란과 콩짜개덩굴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콩짜개란은 꽃봉오리 상태였고, 콩짜개덩굴은 포자낭을 올린 상태였다. 콩짜개란이 꽃 필 즈음 망원렌즈를 갖고 콩짜개란과 콩짜개덩굴을 한컷에 담는 기대를 가지고 출발했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배낭과 삼각대가 비를 맞지 않게 커다란 바위 밑의 움푹 들어간 곳에 내려놓았다. 우산을 쓰고 핸드폰만 들고 바위 사이를 타고 올랐다. 간신히 바위 둔덕에 올라 구실잣밤나무 고목의 가지에 붙어있는 콩짜개란을 핸드폰의 10배 줌 카메라로 당겨보았다. 콩짜개란이 꽃을 피웠고 물방울을 달고 있었다. 앗싸! 주먹이 불끈 쥐어본다.
디카로 도전해 볼까? 비는 줄줄 내리고 배낭은 저 아래 바위 구석에 있다.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한다. 그리고 과연 빗속에서 삼각대를 설치하고 촬영 가능할까? 그러나 다가온 기회는 잡아야 한다. 번민이 도전 쪽으로 방향을 튼다. 철심을 뺀 다리에게 미안하지만, 다시 미끄러운 바위 사이를 내려갔다. 비를 피해 바위 밑에 놓은 배낭에서 디카를 꺼내 200mm 망원렌즈로 마운팅 했다. 카메라는 어깨에 메고, 삼각대를 들고, 우산을 쓰고 바위를 올라야 한다. 모험도 이런 모험이 없다. 이곳에 오는 과정도 그렇지만 빗속에서 기어이 디카로 콩짜개란과 콩짜개덩굴을 한컷에 촬영하려는 마음이 움직인 나의 몸이다.
삼각대를 조금 높은 곳에 올려놓고 왼손은 바위를 짚고 우산을 들었다. 어깨에 맨 디카의 렌즈가 바위에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다리와 손에 힘을 주었다. 드디어 바위에 올라 삼감대를 더 높이 놓고 조심조심 바위틈을 밟았다. 둔덕 바위에 올라 삼각대를 설치했다. 비가 더욱 많이 내린다. 우산을 쓰고 디카를 삼각대에 설치하고 콩짜개란에 방향을 맞춘다.
콩짜개란과 콩짜개덩굴을 한 컷에 담은 이 한 장의 사진에 화엄(華嚴)이란 말을 붙여주고 싶다. 화엄은 불교 경전 ‘화엄경’에서 유래했으며, ‘여러 가지 꽃으로 장엄하게 꾸민다’는 뜻이다. 특히,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뿐 아니라 길가의 잡초까지도 모두 포함된다는 점에서 화엄경을 ‘잡화경(雜華經)’이라고도 불린다. 즉 화엄은 잡꽃들의 세상인 것이다.
이 사진을 야생화 전시회에 출품했는데 꽃이 너무 작아 다른 꽃으로 바꿀 것을 권유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진을 바꾸지 않았다. 주최 측은 콩짜개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나는 콩짜개란뿐만 아니라 콩짜개덩굴, 일엽초, 이끼들까지를 포함한 이 사진에 담겨있는 모든 생물을 그대로 전시하고 싶었다. 양치식물 콩짜개덩굴의 글에 현화식물 콩짜개란, 선태식물 이끼, 빗속의 촬영 에피소드까지 언급하는 것 자체가 화엄의 마음이다. 화엄경은 인연설(因緣說)과 연기설(緣起說)을 핵심으로 한다고 한다. 이 인연 저 인연이 이어져 삶이 되고, 글이 된다.
#양치식물 #콩짜개덩굴 #화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