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처녀들의 흔적을 찾으며 떠나는 몽롱한 고사리여행
제주도의 이름이 종명인 큰처녀고사리
제주도는 특이한 서식지이고, 일반적 서식지는 북방 지역인데
세계 최초로 제주도에서 발견되어 제주도가 기준표본채집지로 되었다.
고사리사랑 카페에서 큰처녀고사리 사진을 보았는데, 한라산 계단에서 자라는 큰 고사리의 매력이 전해졌다. 그 후 한라산을 오르내리면서 큰처녀고사리를 찾으려고 늘 계단을 자세히 보았다. 멘토 없는 양치식물 마니아는 발로 찾는 열정이 무기이다.
어느 날 어리목 코스를 천천히 내려가는데 다른 얼굴의 고사리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큰처녀고사리였다. 튼실한 줄기를 보고 앗싸! 감탄이 흘러나왔다. 한라산 등산로의 계단이 아닌 뜻밖의 조그만 개울에서 본 환희이다. 그 후 영실코스 두 군데, 어리목 코스 한 군데에서 다른 큰처녀고사리를 보았다.
그중 처음 보았던 어리목코스의 도랑이 하늘버전 가능성이 제일 높다. 2024년 초여름 큰처녀고사리 새순을 하늘풍경으로 담았던 설렘이 큰처녀고사리의 이미지가 되었다. 그 후 보름이 지난 후 낙상사고의 재활을 위해 천아계곡 한라산둘레길 계단을 힘들게 올랐다. 한숨 돌리며 하늘을 보았는데 새털구름이 큰처녀고사리로 보였다.
큰처녀고사리는 1906년 타케신부가 한라산에서 채집하여 1908년 표본을 유럽으로 보냈는데, 스위스의 크리스트가 이 표본을 바탕으로 1910년에 신종으로 발표했다. 큰처녀고사리의 종소명 quelpartensis(퀠파튼시스)는 한때 제주도를 지칭하는 유럽식 지명 Quelpart와 존재함을 나타내는 어미 엔시스(-ensis)의 조합으로 "제주도에서 자란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리고 큰처녀고사리의 기준표본 채집지는 제주도이며, 현재 뉴욕식물원 표본관에 큰처녀고사리 기준표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큰처녀고사리는 한라산 1000m 이상 고지대에서 아주 드물게 발견된다. 한편, 큰처녀고사리는 동시베리아, 아므르, 우수리, 쿠릴열도, 캄챠카, 알래스카, 캐나다 등에서 흔히 보인다. 이렇듯 큰처녀고사리는 북방계 양치식물인 것이다. 그런데도 기준표본 채집지가 제주도로 되어있는 것은 아주 희귀한 사례이다. 종소명 보유의 원칙은 종이 멸종되더라도 사용된다. 그러므로 최초의 기재와 기준표본 채집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큰처녀고사리, 그녀의 역할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양치식물이 뒤쳐진 것을 알고 미리 한라산에 터를 잡고 발견해 주기를 기다린 것은 아닐까? 뜻밖에도 프랑스 신부 타케가 발견하여 제주산(quelpartensis)이란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그후 100년을 넘었는데도 아직도 한국의 양치식물은 인식이 척박하다. 맏며느리의 후덕한 마음이 희석된 현대는 아수라 시장이다. 아마도 설문대할망 옆에서 할머니가 된 큰처녀가 한숨을 지을 것 같다.
큰처녀고사리는 억세고 뻣뻣하고 큼직하여 큰처녀라는 이름이 걸맞고 한라산 고지대에서 고고히 살고 있다. 이에 비해 가는잎처녀고사리는 개미허리를 가진 가냘픈 처녀 이미지이며, 저지대 숲길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마치 도시의 거리에 날씬한 여자들이 많은 것과 같다. 가는잎처녀고사리의 영어명은 Slender-leaf marsh fern인데 날씬한 잎을 가지고 습한 지역에 사는 고사리란 뜻이다. 장마철에 숲길에서 보는 무성한 가는잎처녀고사리의 모습이 서머 페스티벌을 보는 듯했다.
내가 본 가는잎처녀고사리의 이미지는 벼과 종류인 개피(Beckmannia syzigachne)이다. 야생화가 많은 하논에서 꽃탐사를 하는데 개피를 보고 바로 가는잎처녀고사리를 떠올렸던 것이다. 큰처녀고사리의 이미지는 하늘의 새털구름임에 비추어 가는잎처녀고사리의 개피 이미지는 바로 날씬한 처녀들인 것이다. 가는잎처녀고사리가 늦가을에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은 또 다른 매력이다. 처녀의 이름을 가진 고사리들에게서 처녀들의 흔적을 찾으며 떠나는 몽롱한 고사리여행은 봄날부터 이어진 아련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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