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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안녕이라 그랬어 - 김애란 소설

못생긴 마음들

by 혜영

김애란작가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제는 돈과 이웃이다. 자본과 공동체라는 단어를 쓰면 너무 커지는 느낌이라 ‘돈’과 ‘이웃’이라는 단어가 좋았다는 작가님. 정말 피부에 와닿는 단어다. 돈과 이웃, 너무나 우리 삶과 밀접한 단어가 아닌가.

책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려있고 소설 속엔 나와 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인물들은 회사에 지쳐 퇴사 후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전세살이를 하다 집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아픈 부모님과 병원을 가고, 가진 재산을 다 털어 자영업을 시작하고, 다른 삶을 살아보기 위해 영어공부를 한다. 삶의 모양은 가지각색이지만 현실에 지쳐있고 돈에 흔들리고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꿈꾼다는 게 너무 나와 닮아있었다. 읽는 내내 공감 가면서도 작가님이 표현하는 그들의 덜컥거리는 마음들이 불편하기도 했다. 작가님 인터뷰 표현대로 정말 ‘못생긴 마음’들이었다.

퇴사 후 N잡으로 성공해서 00억을 벌고 지금은 세계여행 중이야~같은 재수 없는 글이 넘쳐난다는 스레드를 가끔 본다. 자신의 힘든 삶을 고백하고 고민을 터놓는 글도 많지만 간간이 보이는 재수 없는 글에 웃음이 피식 난다. 거기 있는 글이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런 글을 읽고 공유하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 상당수의 욕망은 진짜겠지. 돈자랑을 하는 글은 굳이 찾아 읽진 않지만 워킹맘의 고충을 터놓는 글은 종종 읽는 편인데 엊그제 읽은 글에 마음이 매우 어지러웠다.

부부가 풀타임노동을 하면서 아이를 둘 키우는데 시간을 쪼개 박사학위를 따고 주말에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내 기준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디엔가 분명 존재하는 그들. 일하면서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무리 넘쳐도 저런 사연 앞에서는 그저 징징거림이 되어 버린다.

나는 다 하는데? 나는 일 할거 다 하고 돈 벌거 다 벌면서 육아까지 이렇게 완벽하게 하는데? 못하는 네가 개병신 아님?이라는 메시지.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온라인의 그 짧은 글 앞에 내 고통이 징징거림이 되어버린 더러운 기분에 역시 SNS는 해롭다는 걸 실감하며 스레드 창을 닫았다.

누군가의 삶의 일부, 매끈한 단면만을 보는 일은 해롭다. 매끈한 삶 뒤에 숨겨진 아픔도, 눈물도, 고통도 보이지 않으니까. 우둘투둘한 내 거친 삶을 더 잘 느끼게 만드니까. 이런 글을 읽으며 또다시 비교지옥에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어리석은 나를 끄집어내 소설책 앞에 앉힌다. 지어낸 이야기가 보여주는 못생긴 마음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나처럼 지질하고 궁상맞고 흔들리는 사람들을 보며 적나라한 문장들에 감탄하고 아파하고 위로받는다.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완벽한 삶보다 문학이 그려내는 한 인간의 못생긴 마음이 내 삶의 모든 못생김을 위로한다. 안녕하냐고, 안녕을 바란다고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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