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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둥지 Sep 01. 2022

EP5. 행복의 역치가 낮아졌다.

근무지에 칙촉이 생겼다고? 

1인 가구가 되면서 생활의 모든 것을 내가 관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가에 살 때보다 해야 할 일도 훨씬 많아졌다. 집에 식료품들이 적당히 갖춰져 있는지, 냉장고 안에서 방치된 식재료는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휴지는 충분히 있는지, 언제쯤 구매하는 게 적당할지 고민해야 하고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 내일 쓸 수건과 양말은 있는지를 확인하고 관리한다. 그래서 생활이 무척 번거롭다. 하지만 내가 관심 속에 두고 있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는지를 자각할 기회도 많아진다.

내가 근로하고 있는 근무지에는 원래 간식이 없었는데, 얼마 전 다른 지점에 구비된 다과를 다른 근로자가 조금 챙겨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근로를 하다 보면 공복시간이 7~8시간이라 항상 중간에 배가 고팠다. 그래서 출근할 때 집에서 간단한 간식을 챙겨갔다. 저번 달에 간식비로 한 6만 원 정도가 나갔는데, 3만 원 정도가 근로할 때 먹은 간식비였던 것이다. 최대한 돈을 아끼려고 커피를 거의 매번 집에서 타갔는데도 돈이 그렇게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의 간식거리가 근무지에 생겼다. 덕분에 간식비에서 만원 정도를 절감할 수 있을 것 같아, 살까 말까 고민하던 E-book을 만원으로 구매했다.


뭐든 풍부했던 본가에 있으면 이런 재미는 없었을 것이다. 갖고 싶은 E-book은 그냥 샀을 테고, 간식도 매번 사갔을 것이다. 근무지에 간식이 생겼어도 좋아하는 간식이 아니라며 투덜댔을지도 모른다. 식재료가 떨어졌을 때 부모님이 보내온 고구마, 내 창문에서도 보이는 잘 가꿔진 남의 집 정원, 마트에서 발견한 1+1 햇반 등. 내가 관리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 행복을 책임져주는 것들도 많아졌다.


단순한 살림을 꾸린다는 것은 하나하나의 물건들과 깊게 친밀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1인 가구의 살림은 대체로 단출하다. 여기에 쓸모없는 물건을 집 안에 두지 않고자 하는 내 성향도 한 몫해서 나는 하나의 물건을 자주, 오래 사용한다. 라면 용기에 국을 담아먹기도, 국수를 말아먹기도, 덮밥을 해먹기도 하는 식이다. 같은 물건을 자주 여러 용도로 사용하면 정이 붙는다. 그냥 물건이 아니라 내 생활을 함께 꾸려나가는 동반자로서의 위치를 물건에게 주는 셈이다. 내 자취방에는 내 손에 익은 물건들만 있다. 그 물건들과 함께 복작복작 꾸려나가는 생활은 물건도 많고 주인도 다 다른 본가보다 아늑하고 친밀하다. 가장 친한 친구들과 펜션을 빌려 실컷 놀고 난 다음, 자기 직전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 꽃을 피우는 기분. 안전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자취방에 있는 물건들과 식재료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일은 내 행복의 역치를 낮아지게 만들었다. 자주 내가 얼마나 유용하고 예쁜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 집에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자각하게 해 준다. 이러한 자각은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좋은 소비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식재료는 쿠팡, 마트 A, 마트 B의 시세를 파악하여 가장 싼 곳에서 구입하게 하고 소비재가 아닌 오래 사용해야 하는 물건들은 비싸더라도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물건으로 선택하게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영수증 수첩을 따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영수증 수첩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풀 예정이다.) 


나는 1인 가구로 살아가며 하나의 물건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하나의 식재료에 더 감사하게 되었다. 내 생활을 함께 꾸려나가는 동료들과의 연결망이 하나하나 모여 나만의 자취방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무엇이든 풍부했던 본가와 다르게 많은 것들이 없고, 또 부족하지만 내가 고민해서 채워 넣은 나를 위해 모인 물건들과 식재료들 안에서 나는 더욱 자주 행복하고 자주 기쁘다.

우리 집에서 내 멘탈케어를 담당하고 있는 동료 에버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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