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행복의 역치가 낮아졌다.

근무지에 칙촉이 생겼다고?

by 정둥지

1인 가구가 되면서 생활의 모든 것을 내가 관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가에 살 때보다 해야 할 일도 훨씬 많아졌다. 집에 식료품들이 적당히 갖춰져 있는지, 냉장고 안에서 방치된 식재료는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휴지는 충분히 있는지, 언제쯤 구매하는 게 적당할지 고민해야 하고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 내일 쓸 수건과 양말은 있는지를 확인하고 관리한다. 그래서 생활이 무척 번거롭다. 하지만 내가 관심 속에 두고 있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는지를 자각할 기회도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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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로하고 있는 근무지에는 원래 간식이 없었는데, 얼마 전 다른 지점에 구비된 다과를 다른 근로자가 조금 챙겨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근로를 하다 보면 공복시간이 7~8시간이라 항상 중간에 배가 고팠다. 그래서 출근할 때 집에서 간단한 간식을 챙겨갔다. 저번 달에 간식비로 한 6만 원 정도가 나갔는데, 3만 원 정도가 근로할 때 먹은 간식비였던 것이다. 최대한 돈을 아끼려고 커피를 거의 매번 집에서 타갔는데도 돈이 그렇게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의 간식거리가 근무지에 생겼다. 덕분에 간식비에서 만원 정도를 절감할 수 있을 것 같아, 살까 말까 고민하던 E-book을 만원으로 구매했다.


뭐든 풍부했던 본가에 있으면 이런 재미는 없었을 것이다. 갖고 싶은 E-book은 그냥 샀을 테고, 간식도 매번 사갔을 것이다. 근무지에 간식이 생겼어도 좋아하는 간식이 아니라며 투덜댔을지도 모른다. 식재료가 떨어졌을 때 부모님이 보내온 고구마, 내 창문에서도 보이는 잘 가꿔진 남의 집 정원, 마트에서 발견한 1+1 햇반 등. 내가 관리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 행복을 책임져주는 것들도 많아졌다.


단순한 살림을 꾸린다는 것은 하나하나의 물건들과 깊게 친밀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1인 가구의 살림은 대체로 단출하다. 여기에 쓸모없는 물건을 집 안에 두지 않고자 하는 내 성향도 한 몫해서 나는 하나의 물건을 자주, 오래 사용한다. 라면 용기에 국을 담아먹기도, 국수를 말아먹기도, 덮밥을 해먹기도 하는 식이다. 같은 물건을 자주 여러 용도로 사용하면 정이 붙는다. 그냥 물건이 아니라 내 생활을 함께 꾸려나가는 동반자로서의 위치를 물건에게 주는 셈이다. 내 자취방에는 내 손에 익은 물건들만 있다. 그 물건들과 함께 복작복작 꾸려나가는 생활은 물건도 많고 주인도 다 다른 본가보다 아늑하고 친밀하다. 가장 친한 친구들과 펜션을 빌려 실컷 놀고 난 다음, 자기 직전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 꽃을 피우는 기분. 안전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자취방에 있는 물건들과 식재료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일은 내 행복의 역치를 낮아지게 만들었다. 자주 내가 얼마나 유용하고 예쁜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 집에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자각하게 해 준다. 이러한 자각은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좋은 소비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식재료는 쿠팡, 마트 A, 마트 B의 시세를 파악하여 가장 싼 곳에서 구입하게 하고 소비재가 아닌 오래 사용해야 하는 물건들은 비싸더라도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물건으로 선택하게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영수증 수첩을 따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영수증 수첩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풀 예정이다.)


나는 1인 가구로 살아가며 하나의 물건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하나의 식재료에 더 감사하게 되었다. 내 생활을 함께 꾸려나가는 동료들과의 연결망이 하나하나 모여 나만의 자취방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무엇이든 풍부했던 본가와 다르게 많은 것들이 없고, 또 부족하지만 내가 고민해서 채워 넣은 나를 위해 모인 물건들과 식재료들 안에서 나는 더욱 자주 행복하고 자주 기쁘다.

KakaoTalk_20220901_144912071_01.jpg 우리 집에서 내 멘탈케어를 담당하고 있는 동료 에버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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