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발견한 예전의 나
우연히 가게 된 게더링에서 틀어 준 영화에 마음이 뺏겼다. 처음에는 "아, 요리 영화인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봤다. 그런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점점 화면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반가운 얼굴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메릴 스트립과 스탠리 투치.
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모든 배우를 정말 좋아한다. 거기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두 배우가 다시 함께 등장하다니, 보는 내내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메릴 스트립은 놀랍게도 맡은 모든 배역을 잘 소화하는 배우다. 줄리아 차일드를 연기하면서 특유의 우아함과 유머, 인간미까지 모두 녹여냈다. 그녀의 목소리와 손짓, 눈빛 하나까지도 줄리아 그 자체였다. 그리고 스탠리 투치. 이 영화에서는 줄리아의 남편으로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는 냉철한 나이젤과는 또 다른 따뜻함과 사랑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줄리아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는 그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5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요리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뜨는 줄리아 차일드, 그리고 2000년대 뉴욕에서 고된 일상 속 작은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는 줄리 파월. 두 여성의 이야기가 교차로 흘러가는데, 마치 맛있는 크루아상이 켜켜이 쌓이듯 그들의 감정도, 성장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줄리는 블로그에 글을 쓰고 요리를 하며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그녀는 요리 하나를 성공하고 글을 올릴 때마다 줄리아와 가까워졌고 교감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대단한 성취감을 느꼈다.
나는 줄리에게서 문득 옛날의 내가 보였다. 큰 이상만 품고 허둥대던 어린 행동과 철 없던 날들..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머릿속으로는 늘 멋진 사람, 멋진 일, 부유한 생활인 내가 현실에서 손에 쥔 건 늘 막막함뿐이였다. 한편으로는 줄리아 차일드의 긍정 에너지에 마음이 뭉클했다. 중년이 넘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용기,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는 것, 그 일을 할 때의 반짝임. 나이, 시선, 두려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서 묘한 울림을 받는다. 요리를 배우는 장면에서 줄리아가 키가 너무 커서 도마 높이를 맞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그 장면에서 괜히 울컥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기에게 맞는 높이'를 찾아가며 인생을 요리하는 중이 아닐까.
안타깝지만 줄리와 줄리아는 결국 만나지 못한다. 나 역시 영화 속에서 둘의 만남을 은근히 기다렸는데 마지막에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괜히 마음 한켠이 허전해졌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더 현실적인 엔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깊이 연결되는 관계들이 분명 있으니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는 괜히 내가 그려본 허상을 다시 들여다봤다. 줄리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던 그 마음, 뭔가 쌓아 올리고 싶은 그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부러웠으니까..
'줄리 앤 줄리아'는 그런 영화였다. 꽤 오래 마음에 남는 영화. 그리고 예전의 나,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를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영화..
결국은 인생도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고, 그 작은 쌓임들이 언젠가 나만의 이야기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