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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Aug 04. 2021

가정보육 한 달, 뜨거웠던 7월

7월 한 달간 유치원을 쉬기로 하고, 그 한 달이 지났다. 6세, 4세 아이 둘과 함께 보낸 7월 한 달을 돌아본다.


실 첫째가 5세였던 작년에도 가정보육을 했던 터라 아이가 기관에 가지 않는   특별한 일상 아니다. 다만 유치원을 다녔던 몇 달의 경험 통해 그저 집에서 유유자적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롭게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 가정보육의 시간 내게 특별한 일상으로 느껴다.



우선 7월 첫주는 그저 집에서 보냈다. 자고싶은만큼 늦잠을 잤고 놀고싶은만큼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집돌이인 첫째는 집밖을 나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무척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유치원에 갈 때보다 우리 일상은 한결 여유로웠다. 유치원에 갈 때는 곤히 잠든 아이를 기상알람에 맞춰 억지로 잠을 깨웠고, 일어나자마자 꾸역꾸역 아침밥을 입안에 밀어넣었고, 자기만의 놀이에 막 빠진 아이를 중단시키며 지각이 아주 큰일인양 부산을 떨며 유치원에 늦겠다는 재촉을 했고,  어디든 나가기 싫어해서 옷을 입지 않겠다고 누운 아이에게, 누워있는 채로 옷을 갈아입혔다. 하원 후에 있을 달콤한 유혹을 끊임없이 제시하며 아이의 몸을 일으키고, 아이 손을 잡아끌어 나가서 차에 태우고, 유치원 앞에 도착해서도 느림보로 걷는 아이를 강제로 끌다시피 원에 넣었다. 이번에는 엄마 손이 아닌 선생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향해 나는 명랑한 척 "재밌게 보내고 와" 라는 말을 내뱉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늘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처럼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기만 하면 내게 휴식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형아보다 더 나오는 걸 귀찮아해서 더 힘들게 옷 입히고, "그러면 너만 집에 두고 나가겠다"는 협박을 두어차례 해서 억지로 같이 데리고 나온 둘째는, 한번 집을 나오면 다시 집에 들어가려하지 않았다. 이른아침 코시국에 집밖에서 둘째와 시간을 배회하듯 보내야했다.




영유를 보내면서 나는 과제를 한번도 해보내지 않았다. 그것이 결코 자랑이 아니고 선생님 입장에서 기관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이시진 않을까 자주 염려되었지만, 나는 유아기 때부터 영어 교육을 열심히 시키겠다는 의지보다는 '원어민' 영어 노출이라는 소박한(?) 목표를 가졌기에, 하원 후까지 아이에게 과제로 스트레스를 주고싶진 않았다. 하지만 이건 내 가식일 뿐 사실 비싼 돈 들여가며 보내는 영어유치원에서 아웃풋을 전혀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쩌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보육에 중점을 둔 기관이었다면 기관을 그만두는 일 그처럼 고민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이의 영어발음이 원민같이 부드러워진 소리를 들으면 내심 뿌듯하고 안심이 되었다. 쨌든 나는 첫째아이가 기관을 다니면서 무언가 의미있게 배워오길 기대 또는 욕심을 낸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태어나서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엄마와의 오붓한 시간을 갖기를, 나는 둘째 낮잠시간만이라도 온전히 내 시간을 갖기를 바랬다. 하지만 우리 세 사람 모두에게 그 시간들이 내가 기대하는만큼 양질이 아니라 판단된 순간, 나는 기관을 그만둘 결심이 섰고, 그렇게 시작된 가정보육은 그 갈증들을 충족시켜주었다.


첫째도, 둘째도, 나도, 너무 지쳐있었다. 도대체 그 양질의 시간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느라 셋다 몸과 마음이 지친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저절로 눈이 떠질만큼 늦잠을 잤고, 사과부터 시작해서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즐기며 먹었고, 아이들은 한껏 놀이에 몰입해서 지칠 때까지 놀이를 했다.


첫째는 지치지도 않는지 많은 그림을 한번에 그리기도 했고, 블럭을 제 키보다 더 높이 쌓기도 했고, 중간중간 책도 읽고 또 책을 쌓거나 책으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놀기도했다. 언제나 자기수준보다 재미있는 놀이를 제시하는 형아 덕분에 둘째는 심심할 틈이 없이, 형아가 하는대로 따라하고, 형아에게 찬사를 보내고(둘째는 남 칭찬을 잘한다), 너무 재밌다며 흥에 겨워 엉덩이 춤을 추기도 했다. 둘은 특별한 장난감없이도 그저 자동차를 굴리거나 로봇 놀이만으로도 꽁냥꽁냥 또는 과격하게(?) 충분히 잘 놀았다.


그렇게 집안에서만 노는 한 주를 보내도 아이들은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으나, 나는 일주일쯤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고 지루했다. 그래서 둘째주부터는 매주 여행을 떠났다.


아이 둘과 나, 이렇게 셋이서 떠나는 첫 여행이다. 긴장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지만,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을 거의 마주치지 않으면서 식사까지 제공되는 숙소를 찾아서 떠났다. 장소 우리집에서 한 시간 정도 자주 가봐서 익숙한 경주로 골랐다.

계속 집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떠나니 너무 행복했다. 날씨도 너무 좋아서 내내 "하늘이 정말 예쁘다. 여행을 떠나니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내내 긴장되었다. 아이 둘과 나, 셋이서만 떠나는 첫 여행이라, 상황이 가늠되지 않았다.


숙소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숙소가 정말 좋았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나도 너무 들뜨는 마음이었는데, 숙소까지 좋으니 기분이 더 업되었다. 일부러 느즈막히 도착했기에 이미 오후였방구경을 오래, 방을 나와서 숙소에 있던 모래놀이를 또 오래고, 이내 저녁시간이 되어 제공되는 석식을 맛있게 먹었다(내가 요리하지도 설거지 하지도 않고, 그저 먹이기만 하니 얼마나 행복한지). 식사 후 편의점을 들러 간식을 사고, 방에 들어가서 히노키 욕조에서 아이들은 한 시간 넘게 물놀이를 했다.


그 시간은 내게 정말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히노키 욕조에서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고, 아이들이 너무 잘 놀자 몰래 방으로 들어가 아주 잠시지만 티비도 봤다(평소 집에서는 전혀 티비를 보지 않는데, 여행가서 보는 티비는 진짜 꿀맛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행복했다.


실컷 논 아이들을 씻기고, 집에서처럼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둘이서 잘 놀았고, 집에서 가지고 온 책도 읽어주었고, 여행지이니까 늦은 시간이지만 아이스크림과 과자도 먹었다. 확실한 것은 우리 셋 집에서보다 훨씬더 많이 웃었다는 것이다(거기다 영상통화로 만난 남편도 우리 이상으로 행복해보였다;).


내가 이제껏 한 여행 중 베스트3 안에 꼽을만큼 나는 이 여행이 좋았다. 함께 여행한 사람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오랜시간 집에만 있다가 떠난 여행의 공간이 꽤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여행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아이 둘만 데리고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업무량이 많고 휴가는 년 3~5일정도인 남편과는 함께 여행을 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동안은 내 여행 욕구을 억누르는 방법뿐이었는데, 이제 아이 둘만 데리고도 떠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역시 사람은 그 무엇보다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상승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어쨌든 그 짧은 1박2일의 여행을 통해 나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래서 곧바로 다음 주 다시 경주로 여행을 떠났다. 두번째 경주는 좀 자신감이 붙었던지라 호텔로 잡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코시국이라 너무 힘들었다. 코시국이라 식당을 이용하기 불안해서 편의점에서 대충 먹을 것을 사고 룸서비스도 시켜서 같이 먹음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편의점에서 장을 보면서 헤프닝이 있었고, 또 그날따라 룸서비스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가스 메뉴가 안 된다고 해서 비빔밥을 시킨 게 실수였다. 거기다 호텔 룸이 작다보니 둘째가 너~무 답답해했다. 지난 번 숙소는 크진 않지만 침실과 거실, 욕실이 분리되어 있고 베란다도 있어서 외부나 자연과 가깝게 느껴졌는데, 이번 호텔은 그냥 룸 하나가 다였기에 둘째가 너무 답답해했다. 나가고 싶어 계속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둘째를, 나는 두 번이나 (장난 반 진심 짜증나는 마음 반을 담아) 침대로 던졌다(?).


코시국이 아니었다면 호텔을 맘껏 즐겼을텐데 코시국이라 거의 룸에 있거나 아님 야외에 있어야 했는데, 야외는 정~말 더워서 오래 있기 힘들었고, 내부에서도 사람들을 피해 잠깐씩 있으면서도 뭔가 마음이 불안했다.


그리고 다음날 조식에서 정말 멘붕이 일어났다. 평일이고 아직 성수기는 아니라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나름 경주에서는 거의 최고급 호텔이라 당연히 테이블 간격 등에도 신경을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사람이 정말 많았고 테이블 간격이 너무 좁았다. 우리는 꽤 기다려서 테이블 안내까지 받았는데, 좌석을 보고선 룸서비스를 시키겠다고 하고 룸으로 돌아왔다. 부랴부랴 룸서비스를 시켰는데 한 시간이 걸린단다. 아무튼 그때부터 배고프고 답답한 둘째의 짜증에 나는 크게 멘붕이 왔다.


결국 한 시간 십분 뒤에 룸서비스가 왔고, 부랴부랴 배고픈 아이들을 먹이고 내 입에는 커피를 쏟아부었다. 늦어서 죄송하다며 엄청난 양의 커피를 주셨는데, 그걸 다 마시고도 정신이 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체크아웃 후 다시 야외 산책을 했다. 그때 야외에서 아무도 없어서 잠깐 마스크를 벗고있었는데, 우리 둘째가 내 마스크를 밟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왜 그랬어?" 는데, 둘째가 "아까 엄마가 화내서 엄마가 싫어서"라고 또박또박 말하는데, 어찌나 황당하던지...네 살 아이가 자신의 진심분명히 말하는 것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침에 그렇게 화를 냈나싶어 더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몇 가지 추억을 쌓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번 여행은 어땠어? 엄마는 지난 번 숙소가 더 좋았던 것 같아"라고 말했는데,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저번에도 좋았고, 이번에도 좋았어. 다음에 또 오자"한다.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다행이었다.




대망의 세 번째 여행은 남편의 근무지인 거창이었다. 우리는 거창 시내 남편 직장과 5분 거리에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퇴근 후 10분 안에 숙소로 돌아오라고 종용(?)했다. 그러니까 남편은 5시 40분에 내게 올 수 있는 거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편했다.


그리고 그 곳엔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전용 수영장까지 있는 거였다. 너무 행복했다. 남아 둘은 그곳에서 기본 한 시간 이상을 놀아줬다. 펜션이라 내가 세 끼를 다 해먹여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그래도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마스크도 하지 않고 맘껏 놀 수 있고, 좋아하는 물놀이도 맘껏 할 수 있는 곳이여서 정말 좋았다.  여행은 따로 포스팅할 생각이다.




여행지에서는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훨씬 덜 낸다. 집이었다면 혼냈을 일도 여행지에선 그냥 화통하게 웃으면서 넘어가게 된다. 내 마음이 뭔가 자유롭고 편한 느낌이다. 또 집이었다면 내가 하지 않았을 행동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게임에서 진 내가 자처해서 아이들 앞에서 엉덩이로 이름쓰기 같은 걸 하는 것이다. 그때 무슨 일인지 살짝 삐진 둘째가 내가 엉덩이로 이름쓰는 모습을 보고 까르르 웃는데, 네 살의 그 까르르하는 맑은 웃음소리가 주위를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노래를 잘 흥얼거리지 않는 내가 여행지에선 노래가 나온다. 뻥 뚫린 도로를 운전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달려라 하니> 노래를 하게 되었다.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하니~" 그랬더니 아이들이 하니가 누구냐고 이야기를 해달란다. 그날 밤 남편과 나는 하니 만화를 소환했다. 절대로 집에선 보여주지 않는 폰 동영상을 넷이서 함께 보았고, 엄마가 없는 하니가 불쌍하다고 첫째는 한바탕 울기도 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또 같이 웃었다. 동생은 "형아가 슬프니까 살살 얘기하자"라며 형아를 배려한다. 여행이 주는 특별함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높은 빌딩숲이 아닌 정말 자연에서 아이들과 3박4일을 보내고 대구로 돌아오는 길, 나는 훨씬 마음이 여유롭고 자유롭고 풍성해짐을 느꼈다. 아이들 역시 도시에서는 하지 않는 행동들, 예를 들면 자꾸 맨발로 걷는다든가, 물만 보면 뛰어들려고 한다든가 하는 행동을 하는 걸 보면 도시에선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을 느끼고 돌아온 것 같다.


그렇게 세 번의 여행을 하며 아이들과 뜨거운 시간을 보냈던 7월이었다. 문제는 첫째는 아예 유치원을 가고 싶어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유치원 이야기만 하면 울상이다. 거기다가 첫째의 텐션은 내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올라가서 아주 활달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또 원래도 우애가 좋았던 형제는 한달간 부대끼며 늘 함께 시간을 보내며 더 우애가 깊어짐과 동시에 싸움도 잦아졌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어젯밤에 둘째는 "내일은 형아 유치원 보내고 우리 둘이서만 놀자"라고 내게 속삭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6세인 첫째가 유치원에 안 가면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우리 첫째인 것 같고, 둘째와 나는 살짝 힘든 부분도 있그래도 첫째와 함께이기에 우리는 완전체가 된 듯 더 많이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첫째의 유치원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사실 7월 중순에 이미 결정된 바였다. 그리고 좀 놀이를 위주로 하는 다른 유치원을 알아보고 있다. 아주 안 보내는 건 아직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게 몸이 힘들다기보다 주위의 시선이 더 힘들다. 6세 아이에게 교육을 안 시킨다는 양가의 잔소리와 남편의 불만,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이야기들에 휘둘리는 나의 불안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실컷 좀더 여행 다니고, 이렇게 노는 게 정말 좀 지루해졌을 때 보내려고 한다. 아직까지는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이전 가정보육을 결심했다는 글이 어디 메인에 올랐는지 조회수가 상당했다. 그럴려고 쓴 글이 아니라서 많이 민망했다. 아직은 나를 정리하고픈 마음으로 쓰는 글들이라 조악한 면이 많다. 그런데 그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고 생각하니, 왠지 한달 뒤의 후기 같은 걸 써야겠다는 의무감이 들기도 했고, 또 자칫 내 글이 가정보육을 권하는 듯 보일까봐 또는 가정보육을 할만큼 여력이 되는 게 자랑처럼 보일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일단 나는 가정보육이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는 하다. 공무원의 육아휴직 기간이 36개월인 것은, 아이를 36개월간은 엄마가 보는 것이 좋다는 교육학 이론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현실적으로 엄마가 아이를 36개월간 보살피는 일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현실적으로 그것은 가능하기보다 불가능한 면이  많다. 나의 경우는 여러 조건이 아주 좋은 케이스이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가정보육을 하지만 남에게 권할 생각은 전혀 없다. 


가정보육은 엄마가 온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편이나 친정 등 도움을 받을 존재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잠시나마 엄마가 숨쉴 구멍이 있고, 그 숨쉴 구멍으로 에너지를 얻어 아이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할 수 있어야 의미있는 가정보육이 이루어진다. 다행히 내게는 든든한 이모님이 계신다. 비록 주 2~3회 하프타임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둘째가 태어나서 지금껏 오신 분이라 무척 신뢰할만하고 아이들이 엄청 따르는 분이시다. 그 분이 계시기에 나는 가정보육을 결심할 수 있었다. 대신 남편은 정말 바쁜 직종이라 육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친정엄마 찬스랄 것도 별로 없다. 어쨌든 누가 되었든 잠시라도 숨쉴 구멍을 만들어 줄 조력자는 꼭 필요하다.(이렇게 쓰고 보니 남편과 친정엄마 입장에서 서운할 것 같아서 덧붙이면, 남편은 늘 칼퇴를 하고 7시에는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준다. 아이들이 열시 전에는 자기 때문에 비록 그 시간이 짧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늘 다정하고 모든 일에 성실한 남편이 있기에 나는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 남편에 대한 불만이 없는 상태여야 가정보육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친정엄마도 아이들을 따로 맡아 돌봐주시진 못하지만, 우리가 원하면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잠깐 놀러가서 부벼댈 수 있고 반찬 같은 건 흔쾌히 해주시기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이처럼 주위의 도움 덕분에 가정보육이 행복하게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두 아이를 돌보는 일에 자주 지치기도 한다. 그러니 무턱대고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내 상황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다른 엄마들이 자책감을 느낄까 걱정되어서이다. 나는 주위(특히 친정엄마)에서 다들 씩씩하게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엄마로서의 자질이나 능력에 대해 오래 자책했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면서 다른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하진 않기를 바란다.)



또 하나, 가정보육에는 돈이 많이 드는 것 같다. 물론 알뜰히 가정보육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다지 알뜰한 사람이 아니고 다행히 남편이 경제적으로 지원을 많이 해준다. 그래서 아이들과 맘껏 놀러다닐 수 있다. 결산을 해보니 세 번의 여행경비를 합치니 첫째 한달 영유비와 비슷했다. 사실 중간에 여행으로 돈을 너무 쓰는 게 아니냐고 남편에게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그럼 다같이 주말에 한번 가자는 나의 제안에, 싸움은 시작도 전에 끝났다.

 

평일에 힘들게 일하는 남편은 주말에는 아무 데도 안 가고 집에서 쉬고싶어한다(우리집 남자 셋의 집돌이 성향은 남편의 유전자인가). 그리고 숙소 요금이 주말의 경우 평일의 거의 두 배이다. 나는 비교적 좋은(?)숙소를 찾기 때문에 주중과 주말의 가격차이가 크다. 그걸 잘 아는 남편이기에 괜히 한마디 꺼냈다가 주말에 다같이 가자는 말에 얼른 상황을 정리를 한 것이다. 내 나름대로는 주말에 집에 있고싶어하는 남편을 배려하고, 체험활동을 정말 안하는 아이 둘도 생각해서 떠나는 여행인데, 나도 남편없이 여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내가 행복하고, 일석다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행의 좋은점만 썼는데, 후유증도 적지않다. 1박의 짧은 여행은 큰 후유증은 없지만 만족감에 비해 경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이 크고, 3박의 긴 여행은 정말 더많이 행복하지만 다녀오고 나면 많이 피곤하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날 백신접종까지 했고 마침 이모님 휴가기간까지 겹쳤던터라 요며칠간은 특히 더 피곤했다. 어쨌든 너무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도 한 마디는 쓰고 싶었다(하지만 그래도 여행의 좋은점이 더더 많기는 하다. 갈까말까 고민이라면 왠만하면 가는걸로!).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빠졌는데 다시 가정보육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이 기질에 따라서 가정보육보다 기관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내성적인 성향이 큰 편이라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한 가지에 오래 몰입하는 걸 좋아하고, 노는 것도 남아들 치고는 차분한 편이다. 그래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기관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집을 더 좋아한다. 아이들 기질이 순한 편이라 돌보는 양육자 입장에서도 가정보육이 비교적 순조롭다. 그렇 때문에 양육자-피양육자 모두가 즐겁게 가정보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가정보육이 좋다 또는 기관이 더 좋다라는 건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같은 영유를 보냈던 한 엄마는 영어 외에도 다양한 사교육에 관심이 아주 많았고(그래서 그 아이는 우리아이보다 훨씬 영어에서나 다른 면에서 큰 성취를 보였다), 또다른 지인은 지금 시기의 아이는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유 아이에게 기관은 물론 교육은 일절 시키지 않는다. 뭐든 엄마가 중심을 잘 잡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에 맞게 조율할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상황에서 각자의 최선을 다하는 모든 엄마들이 모두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어제 오후 정말 생각지도 못한 전화 한 통이 울렸다. 바로 5년 전 마쳤던 박사 과정의 지도교수님의 전화였다. 그 교수님은 내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시다. 5년 만의 전화통화에서 교수님은 바로 얼마 전에도 통화하던 사이처럼, 논문은 어느정도 진행되었는지 물어오셨다.


논문이라.. 내가 논문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교수님이 생각하셨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감격스러웠다. 교수님은 이번 년도 안에는 논문을 써야되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가을 쯤, 많이는 말고 100페이지 정도만(!) 써가지고 한 번 나오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수많은 감정들이 지나갔다.


교수님이 나의 존재를 잊지 않으셨다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웠고, 내가 논문을 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주신 게 너무 감사했고, 이번 년도에 100페이지는 많이 부담스러웠지만 한번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의 불씨가 생기기도 했다. 그 전화를 옆에서 듣던 첫째에게 난데없이 "봐봐 엄마가 원래는 공부하던 사람이었거든. 엄마가 공부해야 되는데 안 한다고 교수님이 전화오셔셔 혼내시잖아. 이제부턴 엄마 공부해야겠다."라면서 쓸데없는 소리를 기분 좋게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6세, 4세 두 아이를 양손으로 잡고 체험수업을 가는 길이었다. 그 전화의 설레임은 곧 잊혀지고, 나는 두 아이와 함께 체험 공간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르고 아이 놀이기구를 밀어주고 물감을 닦아주고 그림을 대신 그려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남편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나니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아서, 그냥 누워서 쉬고만 싶었다. 그런 내가 논문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예전 같았음 남편은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나는 왜 해야하는가를 두고 일부 분개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남녀 역할에 대해 일부 마음을 정리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좀 커서 덜 힘들기도 했고, 남편에게 점점 진한 동지애를 느끼기도 해서이다.


다만

가정보육과 논문.. 나는 그 두 가지를 내 삶에서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는 좀더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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