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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ul 01. 2021

아이가 한달 기관에 가지 않기로 했다

시작은 6월 초의 감기부터였다. 3월 기관을 처음 가기 시작한 이후 한달에 한번씩은 감기에 걸려왔다. 기관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감기를 옮아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6세만큼 컸다고 증상이 심하지 않고 금방 나았는데, 그때 6월의 감기는 좀 강했다. 열은 없었지만 콧물 기침이 정~말 오래갔다. 늘 첫째의 감기를 옮겨받는 둘째는 증상이 더 심해 많이 힘들었다. 한달이 지난 지금도 둘째는 종종 기침을 한다.  


그러니까 그때 6월초 콧물 감기로 일주일 넘게 유치원에 안 간 이후로, 첫째는 유치원엘 매일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나보다. 콧물기침이 심했던 일주일은 아예 안 갔고, 그 다음주에도 간혹 기침을 하고 컨디션이 난조일 때 "그냥 하루 쉬자" 했던 게.. 아이에게 여지를 준 것인가.. 6월 중순 이후로 첫째는 유치원을 핑퐁핑퐁 다녔고, 결산을 해보니 6월은 간 날보다 안 간 날이 더 많았다.


아침마다 가기 싫다는 아이를 설득해서 유치원에 들여보내면서 내 마음은 너무 무거웠다. 내가 일을 하는 상황도 아니고, 둘째는 가정보육하는 중에, 굳이 첫째를 유치원에 보낼 이유는 없었다. 다만 아이가 제몫의 책임감을 배우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잔뜩 가기 싫은 표정을 짓고 있는 첫째를 억지로 유치원에 밀어넣고는, 둘째와 단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 둘째를 재우고 나혼자만의 여유시간을 가질 때에도, 나는 내내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첫째는 나의 그 마음을 읽은 것인지 점점더 진득하게(?) 유치원을 거부했다.




유치원 가기 싫은 이유를 물어보니, 첫째로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서, 둘째로는 친구 중 누군가가 괴롭혀서, 세번째는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앉아있는 게 싫어서 라고 한다. 아이가 말하는 그 이유들이 완전히 핑계도, 또 완전히 정확한 이유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엔 아이가 가기 싫은 이유들을 귀기울여 듣고 해결해주려고도 애썼는데, 지금은 그냥 이 아이가 유치원이 가기 싫구나..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 자세히 분석하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큰 의미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랑 헤어지기 싫거나 계속 앉아있는 것이 힘든 것은 아이가 어느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고, 친구가 괴롭히는 상황도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고 그 다음은 아이가 스스로 해결 혹은 포기해야 하는데, 사실 이걸 6세 아이가 굳이 감내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든다.  어쨌든 유치원에 가기 싫은 이유를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계속 보내기 위해 내 나름대로 노력도 해봤다. 주위 선배맘과 지인인 유초등교육종사자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유아상담센터를 방문해 우리 아이 기질검사와 내 양육태도검사도 해보며 조언을 구해봤다. 그들은 모두 아이를 계속해서 기관에 보내면서 지금의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조언을 따라서 아이를 꾸역꾸역 기관에 보내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자꾸만 내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유치원에 물어보니 한달 쉬어도 원비는 다 내야한다고 한다(처음엔 100프로로 안내받았는데, 더 이야기해서 결국은 50프로 내는 걸로 해주셨다). 영유라서 원비비싸다. 원비 이야기까지 들으니 돈이 아까워서 아이가 그냥 다녀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됐다. 아이에게 "그냥 다니면 안 될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이 엄마로서 옳은 표현이 아니라고 머리로 생각했지만, 이미 말은 나와버렸다. 착한 아이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돈이 아까우니 그럼 다녀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이의 그 대답을 들으니, '이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완전히 들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우선 한 달은 쉬기로 결정했다. 이 한 달이 두 달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한 달 쉬기로 했다. 나의 그 말에 아이는 너무 홀가분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그 말을 하는 나 역시 너무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늦잠을 잤고, 아침밥도 느지막히 그리고 천천히 먹었고, 뭐가 그리 바빴는지 아이 손발톱도 못 잘라줬는데 오늘 아침에 손발톱도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쓸 여유도 생겼다. 사실은 아이만큼이나 나도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길 바란 건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한달 쉬고 오면 우리 아이 진도가 너무 뒤처질 것 같다고.. 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덜컥 걱정이 되었다.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나는 아이가 6세가 아니라 고1쯤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자꾸 지금 이 시기가 중요한 학습이 들어가야 하는 시기라는 말을 들으며 자주 중심을 잃었다. 원장님은 영유 5세반이 아닌 6세반에 들어간 것부터 늦었다고, 지금부터 더 열심히 해야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내 아이는 지금 6세이다. 인생의 마라톤을 아직 시작도 안 한 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한 달 뒤처지면 무슨 일이 생길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제대로된 결정을 못 내렸던 나를, 다행히 이제는 알아차렸다.


그러던 차에 이런 글도 보게 되었다. 자신의 6세 아이에게 더 필요한 사교육이 무엇인지 묻는 글에서 하나의 댓글이었다.



죽을만큼 놀아주기


그래 6세는 그런 시기이다. 그게 그 시기 아이의 '중대한 일'인 것이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기로 거의 마음을 굳혔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남아있어 지인에게 내 불안함을 꺼내봤는데, 이렇게 답장이 왔다.


그만 둔다고 할 때에도 아이를 지지해야 한다


나는 갓 태어난 아기부터 지금 우리 아이 연령이든 더 큰 아이이든, 아이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 하나의 완벽한 우주이며, 그러므로 아이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늘 아이를 존중하면서 양육한다고 자부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는 꾸준히 기관을 거부하는 의사를 표현했는데, 나는 전문가들의 조언만 듣고 아이의 의견은 무시해왔던 것이다. 아이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지만, 나는 종종 책에서 당시의 고민에 대한 정확한 답을 얻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여덟단어>인데.. 오늘 펼치고 읽은 부분이 며칠간 내가 머리아프게 고민한 것에 대해 완전히 클리어하듯 답을 내려주었다.


모든 인생은 의도대로 되지 않습니다. -중략- 모든 인생은 전인미답이에요.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지레 포기하고 주저앉을 필요없습니다. 씨줄과 날줄이 함께 직되는 게 인생이니까요. 꿈과 희망의 여지를 남겨둘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기관에 즐겁게 잘 다녀주길 바란 내 의도대로 삶이 흐르지 않는 건 실패가 아니다.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더 좋은 기회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인생이 최선만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중략- 때로는 차선에서 최선을 건져내는 삶이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이 구절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날 뻔 했다. 유치원에 잘 다니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고 그 최선에서 이탈하는 것이 불안했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오히려 우리가 선택한 차선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중략-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선택한 다음에 그걸 정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걸 선택하고 후회하면서 오답으로 만들죠.


정답, 오답에 대한 강박을 갖지 말고, 바보처럼 단순하게, 내 판단을 믿고 가길 바랍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을, 박웅현씨가 나를 마주보며 직접 말해주는 느낌이다. 모든 선택에 정오답이 없지만 선택한 이상, 내 선택이 정답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는 것. 


이 책의 가장 마지막장에는 심지어 이런 구절도 있다.


인생을 살면서 무엇보다 행복을 가장 우선으로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렵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기도 한 삶을 살아내면서 먼저 행복을 추구했으면 합니다.


아이가 기관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것이 아이에게 행복한 일임이 틀림없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즐기는 것이다.


내 품에서 어리광을 부릴 시간이 길지 않다. 내 아이의 해맑은 웃음과 어리광을 나도 마음껏 즐길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벌써 내 마음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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