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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un 23. 2021

아이의 교우관계

3월부터 기관을 가기 시작한 여섯살 첫째가 3월 한달 무사히 적응을 마치고, 4월은 재밌게 다니다가 5월 어느 날부터인가 기관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랑 헤어지기가 싫어서라고 했다. 엄마랑 헤어지는 시간이 고작 네 시간이라고, 이제 여섯살이라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달랬다. 그랬더니 친구인 A가 괴롭혀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여섯살 아이의 의사표현을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어느날은 A가 화장실에서 밀어서 다리가 까져 오기도 했으니, 겸사겸사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나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얼마후 이번에는 다른 친구 B가 우리 아이의 마스크를 벗겨 변기에 빠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 아이는 많이 속상해했고 그 이야기를 전달받은 나 역시 많이 화가 났다. 하지만 B의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사과를 하셨고 아직 여섯살인 아이가 얼마나 악의가 있을까 싶어 좋게 넘어갔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A, B, 그리고 우리 아이까지 세 명이서 하원 후 놀기로 했다. 세 명이서 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유치원에 남학생이 세 명뿐이기 때문이다.


하원 후 놀이터에서 셋의 노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B는 힘이 센 아이였다. 로봇 흉내를 내면서 주먹을 날리면 우리 아이는 그걸 다 맞아주었다. B가 힘이 세서 B보다는 우리 아이랑 노는 게 편하다는, 우리 아이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을 괴롭힌다는 A는, 우리 아이에게 주먹을 날리지는 않았으나 목을 조르고 흔들거나(물론 장난이지만) 마스크를 빼앗아 약 올리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우리 아이는 "A는 자신을 괴롭히고 B는 자신을 괴롭히진 않는다"는 표현을 했는데, 놀이터에서 모습을 보니 왜 그렇게 말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B는 그냥 자신의 센 힘을 악의없이 쓰는 느낌이라면, A는 좀더 우리 아이에게 장난을 "거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그날 놀이터에서의 모습을 보고 다시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나름 정리한 후 A의 엄마에게도 내 의견을 전달했다. 우리 아이가 "괴롭힌다"는 용어를 썼는데 그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A의 장난에 조금은 주의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 엄마가 기분이 나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도 인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A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변명하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주의가 필요한 행동을 했다고 훈육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엄마들을 만났다. A의 엄마는 A는 정말로 장난을 친거고 우리 아이도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 한 것이라고, 앞으로 우리 아이가 좀더 확실히 의사표현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아이는 싫다는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지 못했다. 남자아이지만, 두 살 터울의 남동생에게 배려와 양보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의 영향으로, 우리 첫째는 정말 배려의 아이콘 같다. 우리 아이는 친구의 장난에 대해 싫다는 말을 해서 친구가 기분이 상할까봐 걱정이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5월에 친구가 괴롭힌다는 말을 아이에게 처음 들은 이후로 계속 이야기해왔다. 친구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면 그러지 말라고 꼭 이야기해야 한다고. 첫째가 스트레스를 받을만큼 이야기 해온터였으나(아이에게 "하지마"를 꾸준히 연습시켰더니 어느날은 그 말을 하면서 울기까지 했다), 타고난 성향이 그게 참 힘든 아이임을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오늘 A의 엄마에게 저런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우리 아이가 더 확실히 의사표현을 해야하는 거라고.



조선 왕 중에서 인종이 생각났다. 인종은 조선 역대 왕세자 중 가장 훌륭한 왕세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학문으로나 인품으로나 성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중국의 사신은 인종처럼 훌륭한 인물을 조선이 품을 수 있겠냐는 말을 할 정도로 대내적으로 칭송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인종은 서른한살의 젊은 나이로, 재위 겨우 8개월만에 요절했는데, 그의 죽음에는 계모 문정왕후가 깊이 관여되어 있다. 인종이 왕세자 시절에 동궁전에 불이 났을 때에, 인종은 계모 문정왕후가 불을 지른 것을 알고 계모에게 효를 다하겠다며 계모의 뜻대로 불타 죽으려했던 인물이다. 함께 자고 있던 세자빈이 동궁전을 빠져나가자고 할 때 인종은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동궁전 밖에서 아버지 중종이 애타게 세자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자신이 불타 죽으면 계모에게는 효이나 아버지에게는 불효라고 생각하여 불길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인종이 즉위한 후에도 문정왕후는 생트집으로 인종을 힘들게 했고, 결국 문정왕후가 올린 음식을 먹고 인종은 병이 깊어져 죽음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것이 확실한 사실은 아니지만, 청년 인종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많은 야사에서 계모 문정왕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실제 죽음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만큼 문정왕후가 인종을 괴롭혔음은 알 수 있다.


인종이 정말 아름다운 성품과 뛰어난 학식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자신을 지키지 못했기에, 그의 출중함을 전혀 뽐내지도 못하고, 결국 정권이 문정왕후의 손아귀에 들어가며 윤씨 외척세력의 발호를 가져왔다. 그것은 인종이 성정을 펼쳐 조선을 더 부흥시킬 수 있었던 기회 자체도 날아가버린 격이다. 인종이 오래 재위했더라면 명종 - 선조를 거치지 않았을 테고 그렇다면 혹시 임진왜란 또한 겪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즉 아무리 뛰어난 성품과 학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우선 자신을 지키고봤어야지, 그것이 인종 자신을 지키는 일뿐 아니라 조선을 위한 길이라는 걸 인종은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도치맘이기에 나는 우리 첫째가 정말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해왔다. 둘째는 둘째답게 욕심도 많고 의사표현도 정확하게 하는데, 첫째는 정말 배려심이 많고 양보도 잘하고 따듯한 아이라고, 그것이 그 아이의 엄청난 장점으로 여기면서 키우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첫째랑 둘이 있는 게 너무 편한데, 그 이유가 첫째는 엄마인 나에게도 배려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둘째는 자기고집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지난 한달여, 이번 일을 통해서 첫째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훈육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장점으로 여기며 강화해왔던 그 아이만의 큰 장점을 나는 단점으로 여기고 고쳐주고자 애쓰고 있었다. 문득 많은 의문이 들었다. 그것이 정말로 단점일까? 아니면 장점이 될 수 있을까? 인종은 정말 현명한 사람이었을까? 아니었을까? 나는 그동안 인종을 그렇게 만든 문정왕후만이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조차 보호하지 못한 인종이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 아닌가?


A는 자신의 장난을 잘 받아주는 우리 아이가 참 좋다고 한다. A의 엄마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 악의없이 하는 장난에 어른이 너무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도 말했다. 글쎄.. 그것은 모두 그들의 입장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수많은 날들, 더한 상황에 처하게 될 우리 첫째도 연습할 필요가 있는 건 분명히 맞다. 자신을 지키는 연습을.    


어렵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40여년을 내 성격으로 살면서 내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하며 살고 행동했는데, 이제는 내 아이의 성격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일까지 더해진 느낌이다. 남편은 그 모든 걸 아이가 스스로 해결해나가야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여섯살 아이가 혼자 헤쳐나가도록 방관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이가 잘 해나가도록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1차로 중요하겠지만, 나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연구해봐야 할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자신을 먼저 지켜야한다고.. 마흔의 나 역시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서서히 찾아가며 꾸준히, 아이에게 이야기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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