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Sep 08. 2020

여행, 아이와 함께 하는

재충전 또는 고행


이번 여행은 여행을 떠나는 그 자체부터 고민이 컸던 여행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독채 풀빌라를 예약했지만 그 마저도 무언가 찝찝했고,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여행을 떠나는 그 자체가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거기다 지난 주말은 강력한 태풍 하이선이 예보되어 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예약한 풀빌라는 바다가 코앞에 보이는, 도착해보니 정말로 바다 십미터 정도로 가까이 있는 풀빌라였다.


여행을 떠나는 전날까지도 짐을 싸지 못했고, 갈팡질팡 계속 고민을 했다.

여행 당일 아침, 하이선이 조금 약해지고 살짝 비켜간다는 말에, 그냥 떠나보기로 했다. 그렇게 떠나는 날 아침에 부랴부랴 짐을 쌌다.


당연히 거의 모든 짐은 아이들 먹거리와 아이들 옷과 아이들 물놀이 관련 물품이었다.

어떤 여행에서는 내 칫솔을 챙기지 않은 적도 있고, 내 겉옷을 거의 챙기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급하게 쌌지만 모자람 없이, 아니 오히려 아예 열지 않은 짐이 을정도로 넘치게 겼다. 아마 마음 속 두려움 때문이었을거다.


어쨌든 첫날은 기분 좋게 근처 바다를 구경했고, 키즈 풀빌라인만큼 아이들은 그 공간을 무척 좋아하며 즐거워했다. 빌라 안의 개인수영장에서 두 아이는 편안히 벗고 수영도 즐겼다.


알록달록한 색과 각종 놀이기구들은 내 눈과 마음을 피로하게 했고, 내 취향과는 매우 거리가 먼 디자인의 공간이었으며, 수영을 즐기는 내게는 너무 좁은 수영장이지만, 그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맞춤이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모두 퉁친다.


아이들이 그 키즈풀빌라를 즐기는 동안, 나는 풀빌라 안 그릇들을 설거지 했고 저녁 준비를 했고 흥분한 아이들에게 저녁을 떠먹이고 다시 저녁 먹은 설거지를 했다. 아이들의 수영 수발을 들었고 목욕을 시켰고, 끊임없이 안전에 대한 지도를 해야했다.

 

그리고 태풍이 온다는 그 밤, 자꾸만 경보 문자가 왔고 나는 몹시도 불안했다. 바닷물이 덮치면 아이들을 어떻게 대피시킬지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며, 지금이라도 안전한 곳의 모텔에 잠만 자러 갈까하는 생각 했다. 그리고 그밤 꿈에서 태풍에 바닷물이 우리를 덮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다행히 태풍은 무사히 지나갔고, 비는 내렸지만 마치 태풍이 정말 오기는 왔나싶게 고요한 아침이었다. 하지만 나는 밤새 불안했던 탓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온몸이 찌뿌둥했다.


아침이 되자 다시 아침 준비를 했고 아침을 먹였고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유명관광지로 나서보았는데, 막상 도착하니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포기했다. 그냥 들어가긴 아쉬워 근처의 대형 마트에 갔다. 장난감 코너가 아주 크고 멋졌기에, 그 장난감 코너에서만 두 시간을 넘게 있다가 돌아왔다. 다시 저녁을 준비하고 먹이고 수영을 하고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했다. 풀빌라에서의 바베큐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고, 준비할 것도 치울 것도 더 많아 힘들기만 한 식사였다.


아이들은 피곤하지도 않은지 잠을 자지 않았고, 급기야 남편과 나는 야밤에 아이 둘을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우니 곧 잠든 두 아이를 한 명씩 안고 침대에 누이며, 두번째 날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드디어 돌아오는 오늘, 또 아침을 먹이고 치우고 짐을 싸고 정리를 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어제 바람이 심해 가지 못했던 유명 관광지를 오늘을 가보려고 했으나 차에 타자마자 둘째가 하품을 하길래, 그냥 고속도로를 탔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표를 뽑는 게 신기했 둘째는 그길로 잠에서 깨버렸다.


아.....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가도 잘 생각이 없다.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도시에서 내렸다. 그 도시에서 유명한 곳을 검색해서 잠깐 걷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다시 차를 탔는데, 남편이 바위를 박았다.


차의 앞범퍼가 떨어져 나갔다.

외제차인데... 하하하


대구로 돌아와서 캐리어를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나는 집밖으로 탈.출.했다.

근처 카페에서 멍을 때리며 재충전을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재충전의 시간인지 고행인지 모를 여행이다. 돌아오면 늘 하는 생각을 또 까먹고, 나는 왜 그 여행을 무리해서 떠난 것인가.


코로나 때문에 외식을 못하니 여행이 더 힘들다. 여행의 백미를 호텔 조식으로 는 내게, 호텔 조식은 없고 세 끼를 다 내가 만들어야 하는 여행은 정말 잔인하다.


하지만 작년 이맘때의 여행보다 아이는 커있었다. 작년 이맘때 휴가로 제주도를 갔었다. 그때 나는 첫째가 동물탐험을 할때도 둘째를 업어 낮잠을 재웠고, 호텔의 불꺼진 로비들에서 매일밤 둘째를 업어 잠을 재웠다. 둘째가 새벽에 일찍 깨면 첫째가 잠을 못자니 또 둘째를 업고 나갔다. 


남편은 두데기로 아이를 업고 다니는 내가 인싸라고 하나 암튼 몰카유명인이 될 거라며 놀렸다. 하지만 아이가 업어서 자야 잘 자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잠과 관련없을 땐 남편이 늘 아기띠로 둘째를 매달고 다녔기에 남편도 여행 막바지에는 발에 진물이 날정도로 고생했다.)


그때 불꺼진 로비 유리창에 아이를 업고 있는 내가 비치는데, 나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유명한 크고 좋은 호텔에서 내 행색이 나도 슬펐다.


그 일년전에 비하면,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여행이다. 그러니 내년 휴가는 더 좋겠지.. 부디 더 좋기를 바래본다.



덧) 생각해보니 여행을 떠나기 전 마음 속으로 빌었던 게 모두 이루어졌. 첫번째, 태풍에 우리 네 식구가 무사할 것, 두번, 나에게 잠깐이라도 책 읽을 여유가 있을 것. 생각해보니 그 두 바램은 모두 이루어졌다. 



침대 마저도 놀이터다


2층은 모두 놀이터

그래도 이건 힐링


든든한 남편과 귀여운 내 아이들











매거진의 이전글 당분간은 끝이 없을 엄마의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