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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Sep 18. 2020

당분간은 끝이 없을 엄마의 삶

내 삶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5세 첫째와 3세 둘째


첫째는 4세 11월부터 본격적으로 기관에 갔다. 10월에 이사를 했기에, 그에 맞춘 것이다. 아이는 11월 한달을 다녔고, 12월 한달은 심한 감기로 총 5일도 못 갔고, 1월에는 가족 휴가를 핑계로 아예 한달 내도록 쉬었다. 1월에 한 달 내도록 쉰 진짜 이유는 또 감기에 걸려 아플까봐 걱정돼서이다. 나는 아이가 아픈 걸 보질 못한다. 아이가 아파하는 걸 보는 게 내가 너무 힘들다. 그 이유로 아이는 그동안 두 번이나 기관에 가는 걸 실패했다.

그리고 2월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지금 9월까지도 기관에 가지 않는다. 둘째는 당연히 나이가 어려서 보내지 않는다.


나는 육아가 지칠 때마다 아이가 기관에 가는 날을 꿈꾸었다. 두 아이 모두 기관에 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되찾는 날..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하략-


심훈이 독립의 그날을 기다린만큼의 간절함은 아니겠지만, 나 역시 24시간 함께 하는 아이들이 지칠 때면 내게 올 그날을 생각하며 그때까지만 참아볼 것을 다짐해보곤 했다.


그런데 문득, 내게 궁극적 의미의 그날은 오지 못할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기관에 가지 않을 때에는 기관에 가는 날을 꿈꾸지만, 막상 기관에 가고 나면 또 다른 무언가를 꿈꿀 것이다.


둘째가 밤수유를 할 때는 저 아이가 밤에 통잠만 자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유달리 걷는 것이 늦었던 (체중이 많이 나갔던) 둘째가 아기띠를 졸업하기만 하면 내 몸이 훨씬 편해질 줄 알았다.

첫째와 둘째가 전혀 같이 놀지 못하고 싸우기만 할 때는 두 아이가 잠시라도 같이 좀 놀아주면 세상 편할 것 같았다.

유독 말을 듣지 않고 막무가내였던 둘째가 첫째의 반이나마 내 말을 좀 들어주면 나도 화내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그 모든 것이 이루어졌지만, 나는 이제 두 아이가 기관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두 아이가 모두 기관에 잘 적응하고 나면, 나는 그동안 사놓은 예쁜 옷들을 입고 다시 출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인간다웠던 예전의 내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알듯 말듯, 알 것 같았다.

두 아이가 기관에 간다고 해도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을.

두 아이가 기관에 가고 나는 예쁜 옷을 입고 내 일을 하러 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또다른 바램을 만들어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참아내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


언제나 그렇게 불행하게만 살 수는 없다. 


첫째 때는 내가 원하는 삶과 나의 현재의 삶이 어느정도 일치했다. 나는 시험관으로 힘들게 첫아이를 얻었다. 친구들은 이미 아기엄마가 되어 있었고, 친구들의 개인 SNS는 아기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나도 아기엄마가 되고 싶었고, 아기 사진으로 도배도 해보고 싶었다. 그런 간절함으로 얻은 첫아이는 내게 큰 기쁨었다.


내 집에 아기가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벅찼던 시간이었다. 기저귀를 찬 그 통통한 엉덩이가 감격스러웠다. 잘 울지도 않는 첫째였는데, 가끔 우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손도 발도 똥냄새도 모두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 아이를 위해 내 온몸을, 내 삶을 모두 내어주었다. 빵 하나도 사서 먹이지 않고 유기농밀가루와 유기농 재료들로 직접 만들어 주었다. 자주 먹지 않는 빵도 그랬는데, 주식인 음식들은 더 당연했다. 좋은 고기로 진하게 육수를 내서 내 손으로 직접 다 만들어먹였다. 시간이 부족할 때는 자는 아기를 업고 더 재우면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온몸이 고되어도 즐거웠다.


첫째와의 산책은 온전히 첫째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 아이의 걸음을, 웃음을, 행동을 하나하나 내 눈에 담았다. 첫째가 어릴 때는 아기 똥이 더럽다는 생각을 안했다.


그런데 너무 힘을 쏟은 것일까. 둘째가 태어나고서는 나는 거의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나는 둘째의 이유식을 내손으로 만든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이모님이 너무 요리를 잘하셔서 굳이 내가 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그것보다 맛있게 할 엄두도 안 났지만, 내 정성이 부족했던 게 가장 큰 이유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둘째와 산책을 나가면 종종 휴대폰을 하느라 아이의 모습은 놓치기 일쑤이다. 아이를 보는 것보다 휴대폰을 보는 게 더 재밌고 시급하게 느껴질 때도있다. 요즘은 두 아이의 응가를 씻기는 데 숨을 못 쉬겠다.


지금은 이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기에 첫째 때보다 자유시간이라는 것도 있다. 물론 하루종일 함께 붙어있기는 하지만, 이모님이 계실 땐 다른 방에서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고, 이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한달에 한번정도는 나 혼자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첫째때보다 훨씬 자유에 목마르다. 물론 육아 기간이 오래되어서 지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내가 아이들과의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지향하는 삶과 내 일상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서 아이들이 커서 내 일을 하러 나가고 싶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보는 것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고 나의 삶이다. 남편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지만, 내 월급의 몇 배나 버는 남편이기에 그것이 그냥 홧김에 하는 말인 걸, 남편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잠시나마 아이 소리를 듣지 않고 멍하니 있고 싶다. 하루에 단 몇 시간만이라도 아이들 소리를 듣지 않고 집중해서 내 공부나 독서를 하고도 싶다. (물론 그것도 안 되는 많은 엄마들에게 나의 이 투정은 몹시 사치처럼 느껴질 것이다.)


첫째 때는 내 집에 아기가 있다는 것이,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경이로웠는데, 지금은 둘째 울음소리를 들으면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울컥 화가 솟아오른다. 그것은 내가 내 삶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탓이다.


둘째가 통잠을 자주고, 이모님께 맡기고 잠시나마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고, 첫째와 둘째가 이제 깔깔거리며 둘이 재밌게 놀기도 한다. 밥도 잘 먹고, 둘다 순한 편이다. 무엇보다 둘다 크게 아픈 일이 없이 건강하게 지내준다. 이 정도면 더 바랄 것 없이 만족스러운 삶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저 일상이 유지된다는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해야 할 일임을 잘 안다.


내 삶이 불만족스러운 이유는 외부의 문제보다 내부의 문제이다.


내 삶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내 삶에 만족하는 것이다.

한동안 우울증을 경험했기에, 내 삶에 만족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 감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머리로 다짐한다고, 마음까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바꿔먹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물리적인 행복은 달성되기 힘들다. 아이들이 기관을 간다고 해서, 내가 다시 내 일을 한다고 해서 내 삶이 갑자기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이 되면 그에 따른 또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 어려움을 해결하느라 행복감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이 순간의 내 삶을 그저 사랑하고 즐기는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오늘은 아이들이 오래 노래 불렀던 키즈카페에 가볼까? 아님 내가 좋아하는 시골로 나가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아볼까?


여전히 내 앞에 있는 두 아이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쌓여있는 집안일이 귀찮게 느껴질 때도, 무엇보다 나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참고 내 커리어를 포기하고 살아간다는 답답함에 짓눌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 내 삶에서 최대한 행복을 찾아내야 한다.



엄마의 삶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 아이들이 기관을 가고, 학교를 가고, 사춘기를 겪고, 입시기를 거치고, 대학을 갈 때까지는, 어쨌든 엄마의 존재가 필요할 것 같다. 그 시간들이 그저 그대로 계획대로 주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할 일이다.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아빠가 되면, 나는 이제 엄마의 역할을 좀 내려놓아도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순간들을 추억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아쉬움이 남지 않게 오늘을 더 최선을 다해 함께 웃어보아야겠다.

이 삶을 버티게 하는 내 삶도 넣어가며, 아이들과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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