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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Sep 24. 2020

원가족

첫째 아이가 돌즈음일 때 남편과의 사이가 가장 안 좋았던 것 같다. 그 때 부부상담이라는 걸 두 차례 해보았다. 사실 정식 부부상담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따로 들어가 한 시간정도 상담을 체험해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두 차례 진행해보니 우리 부부는 상담까지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고, 아이가 어려 두 사람이 함께 상담 받는 부부상담 형식은 갖출 수 없을 것 같아 그만 두었다.


하지만 그때의 짧은 두 차례의 상담이 그 후의 부부싸움에서 뜻밖의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때 상담선생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 모두 아직 원가족에서 분리되질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하셨다.


원가족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들어보았다. 사실 그때까지도 내 가족은 나의 아빠, 엄마, 남동생, 나, 남편, 우리 아기였다. 내 원가족 네 명에 남편과 내 아기가 합류한 느낌이었다. 물론 남편에게 티내진 않았지만, 내 마음 속 가족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상담사의 원가족에서 분리되라는 그 말은 너무 충격이었다. 어떻게 내 부모와 남동생에게서 내가 분리된단 말인가.


나는 특히나 나의 원가족에 대한 애착이 높았다. 나의 부모님은 부모로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분들이셨고(객관적으로는 몰라도 딸인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내 남동생에 대해서는 그의 존재가 정말로 감사하다고 내가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그런 나의 원가족에서 내가 왜 분리되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남편과 살면 살수록 상담사의 그 말이 귀에 맴돌았다. 내가 남편이 자신의 원가족에게서 분리되었으면 하는 마음처럼, 남편 또한 내가 원가족에게서 분리되길 바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남동생도 결혼을 했고, 우리 가정에도 둘째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원가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어느덧 나는 내 가족을 나와 남편, 아들 둘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끼리 있으면 편하다는 말도 이제 내 현가족에게 해당되는 말이 되었다.


어제 남편은 회식이었고, 올케는 일이 있어 올케의 친정에 가있었다. 나는 독박육아를 모면해보기 위해 친정에 갔는데, 남동생도 우리 아이들을 볼 겸해서 퇴근하고 친정으로 왔다. 그래서 어제 친정집에는 오랜만에 아빠, 엄마, 나, 남동생, 그리고 나의 두 아들만 있었다. 남동생이 결혼한 후 내 남편과 올케가 빠진 이런 조합의 모임은 거의 처음이었다. 무언가 감회가 새로웠다. 남편과 올케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지만, 나는 꽤 따듯한 기분이 들었다.


친정에 가면, 나 역시 보호받는 딸이 된다. 여기 우리집에서는 내가 아이들의 보호자이지만, 친정에 가면 나도 피보호자가 되는 기분이다. 나의 엄마는 내가 아이들 밥을 먹이려고 하면 나 먼저 먹으라며 내 밥을 챙겨주신다. 아빠는 내게 기꺼이 아빠의 안마의자를 양보해주신다.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 "피곤해"를 나도 모르게 내뱉으면, 아빠는 조용히 방문을 닫아주시고 내 아들들을 봐주신다. 이 곳에 오면 내가 보호받고 배려받는 기분이 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도, 가끔 티비를 보고 있어도 부모님은 아무 잔소리도, 핀잔도 주지 않으신다. 그 공간에서는 잠시나마 내가 '나'가 될 수 있다.


거기에 늘 나를 웃게 해주는 남동생도 함께하니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내 지인들 중에 내가 남동생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자주 남동생 자랑을 했기 때문이다. 남동생이 군대에 있을 때 면회를 정말 자주 갔다. 남동생과 하는 여행들이 나는 정말 좋았다. 늘 나를 재미있게 해주고 박장대소하게 만들어 주었던, 나의 귀엽고 소중한, 다섯살 아래의 내 동생이었다. 이제 그 아이는 나 대신 내 아들들을 넘어가게 웃게 만든다. 남동생과 내 아들들의 넘어가게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같이 웃게 된다. 그 유쾌하고 포근한 기분이 참 좋았다.


이제는 원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되고자 하는 장성한 아들과 딸이지만, 언제나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시는 부모님. 우리가 한 가족일 때는 젊고 건강하시고, 크고 든든한 분들이었는데, 지금은 늙고 자꾸 어디가 아프시고, 작고 쪼그라든 분들이 되셨다. 그 분들을 남겨두고 내 집이었던 그 집을 떠날 때는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두 아들을 그 집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좋아하실지도 모른다. 엄마는 우리 아들들이 오면 "전쟁통이 따로 없다."라고 곧잘 말씀하시니까, 그렇게 정신없게 해드리고 사라져주면 좀 행복하기도 하시겠지?


오랜만의 내 원가족들과의 시간, 참 괜찮은, 소중한 저녁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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