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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Sep 05. 2020

나의 일상

글쓰기와 아이들, 그리고 코로나

한 주에 한 명의 왕비 이야기를 쓰는 일이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주는 한 주 반에 두 명의 왕비를 썼다. 혜경궁 홍씨와 정순왕후 김씨가 동시대 인물로 겹치는 내용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휴가를 가기도 해야 해서 좀 빠듯하게 글을 마무리 해버렸다.


사실은 휴가를 핑계삼아 한 주는 쉬려고 했다. 글쓰기를 쉬는 김에 아주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머리 펌도 했다. 아이를 낳고도 6개월에 한번씩은 컷트를 했고, 1년에 한번씩 내 생일이 있는 달에는 매직스트레이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펌은 만 7년만에 한 것으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회가 새로웠다.  아가씨 때는 퍼머컬의 미세한 결 차이까지 엄청 신경썼지만, 지금은 7년만에 내 머리가 꼬불해졌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기분이다.


그렇게 토요일에는 머리 펌을 하느라 얼마 안 되는 자유시간을 다 써버리고, 왕비 이야기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밤 부부싸움을 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 사소한 이유로 서로 기분이 확 상했다. 그날은 남편이 출근하는 토요일이었다. 아마 토요일까지 독박육아를 했던 나의 육아스트레스와 또 토요일까지 일을 해야했던 지친 남편의 피로감이 부딪힌 것일테다. 남편은 내일 자기가 아이들을 다 볼테니 나는 나가라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나가도 갈 곳이 없었다. 대신 나는 하루종일 서재방에 틀어박혀 글을 (하루종일이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삼겹살 파티도 했고, 답답해하는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보통은 한 주는 꼬박 걸리는 글쓰기가 일요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3일정도만에 끝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는 김에 속도를 더 내어 정순왕후 김씨까지 완성했다.


쉽지 않았다. 주말은 그래도 남편이 있지만 평일에는 내게 주어진 절대적인 시간도 부족했고, 그 시간에도 아이 둘이 내내 내 곁을 왔다갔다하기에 맥이 뚝뚝 끊겼다. 스스로 정한 마감 날짜를 맞추기 위해 잠을 줄였고, 집안일을 미루었다. 오늘 정순왕후 이야기를 올리고 나니 긴장이 풀려 졸음이 쏟아졌고, 나에게 주는 상처럼 짦은 낮잠을 잔 후에는 바로 미뤄둔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처럼 왕비 글쓰기는 나를, 내 일상을 힘들게 하는 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왕비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면 남편과 더 많이, 더 오래 싸웠을 것이고, 육아스트레스에 부부싸움의 스트레스까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왕비 이야기를 쓰는 덕분에 귀찮은 싸움을 빨리 끝냈고, 그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덕분에 아이들과 더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 힘든 작업이지만,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정말 힘들기는 하다.)



내가 사는 대구는 수도권만큼 심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아이들과의 바깥활동은 멈췄다. 아 지난 주말 내가 육아에 지쳤던 이유가 생각났다. 코로나 이후 백화점이나 마트를 안 갔더니 첫째가 잠시만 가고 싶다고 해서 간 것이 화근이었다. 마스크를 꼭 쓰기로 약속한 둘째가 답답하다며 마스크를 벗어던졌고, 나는 두돌의 둘째에게 억지로 마스크를 씌워주며 오래 힘든 실랑이를 했다. 결국 둘째에게 엄청 화를 냈는데, 그 자책감에 마음이 무거웠던 게 컸다. 코로나는 나를 지나치게 많이 예민하게 만들었고, 그날이 생일이었던 아이에게 화를 낸 것이 너무 미안했다. 나는 그날의 교훈으로 첫째에게 앞으로는 아예 실내는 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래서 지난 주 평일은 내내 야외로만 다녔다. 그것도 완전 시골의 야외로만. 잘 몰랐던 사실인데 우리집에서 차로 이십분만 나가면 가창이라는 시골 비슷한 동네가 나왔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거의 신경쓰지도 않았을 시골 동네인데, 사람 없는 곳을 찾다보니 발견하게 되었다.


아들 둘과 지난 주 내내 그곳에 가서 놀았다. 첫째는 매일 "오늘은 백화점에 가면 안돼? 나는 시골 싫어" 말하지만 막상 가면 재밌게 잘 논다. 우리는 그곳에서 개미를 보고, 논두렁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느꼈다. 그고는 근처의 한적한 카페에 가서 시원한 음료를 사먹기도 했다. 아이들은 카페의 야외 공간에서 춤도 추고, 자동차도 굴리고, 로봇놀이도 했다. 시골길이나 시골의 카페에서는 거의 마주치는 사람이 없기에 마스크를 아예 벗고 있어도 되었다. 마스크를 심하게 답답하게 여기는 둘째에게 잔소리할 필요가 전혀 없어 행복한 시간이다. 그렇게 세시간여를 보내고 다시 도시의 집으로 돌아온다.




오전에는 틈틈히 글을 썼고, 오후에는 야외로 나갔다. 오전에 글을 쓰는 일도, 오후에 5세 3세 두 아들과 야외활동을 하는 일도, 나에많이 힘들고 버겁게 느껴다.


하지만 많이 행복하기도 하다. 글을 쓰는 일, 아이들과 시골에서 노는 일, 표현력이 부족하기에 뭐라 콕 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황홀하게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2020년 코로나로 힘든 시기, 그 코로나 덕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삶을 발견해나가고 있 중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왕비 글쓰기는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두아들과 나는 사교육으로 백화점으로만 돌아다녔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일상. 그렇게 나의 하루하루가 이루어지고,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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