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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ul 23. 2020

찌그러지고 튀어나온 초밥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건, 늘 도전이다.

이제 좀 할만해졌다 싶으면, 다시 생각지 못한 새로운 도전 상황들이 생기는.


오늘은 아이들과 마트에 가서 장을 봐야 한다.

오후에, 정말 오랜만에 친구가 놀러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마트 장난감 코너를 좋아하는 아들둘은 신이 나서 달려간다.

장난감 코너를 실컷 둘러보고, 하나씩 장난감을 고른 뒤에야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오늘 사야 할 것은 모기장. 밤새 모기에게 뜯긴 아이들을 위해 모기장을 고르는데, 얼마만의 오프라인 쇼핑인지 모기장 하나 고르는 것도 너무 고민되고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설렘이나 고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둘째가 자꾸 카트에서 나오려는 시도를 하기에 허겁지겁.. 고르고 이동했다.


카트에 아이를 태우는 자리에는 둘째가 앉고, 다리가 아프다는 첫째는 물건을 싣는 곳에 앉혔다. (합법이 아닌 줄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자꾸 당장 편한 쪽으로 행동해서 엄마들이 맘충 소리를 듣나)

원터치형 모기장을 샀는데, 부피가 꽤 커서 실을 곳이 없다. 억지로 실어도 봤는데 첫째가 걸리적거린다고 치우란다. 할 수 없이 한 팔에 커다란 모기장을 끼우고 카트를 민다.

물건을 싣는 큰 카트가 있지만, 아이 둘을 동반하는 나에게 카트는 물건을 싣는 용도가 아닌 아이에게 재밌는 유모차이다. 그런데 이 마트의 카트는 유독 튼튼하고 무겁다.


드디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품관 코너이다.

식품관에 들어서자마자 무언가 먹을 것을 달라는, 먹는 것에 대해 더 유독 참지 못하는 둘째를 위해 먼저 빵코너에 가서 빵을 입에 물린다. 이제 좀 평화로워졌다.

이따 친구와 함께 먹을 빵도 사고, 간식거리도 사고, 점심으로 대접할 나름 고급의 초밥 세트도 큰맘 먹고 샀다.


많이 담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카트는 너무 무거워져, 한팔에 모기장을 낀채로 열심히 밀어보지만, 합이 30키로는 족히 넘는 그 카트의 방향을 틀 때에는 내 온몸의 힘을 다 실어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카트를 밀어 드디어 계산대에 도착했다.

계산하려고 물건들을 하나하나 올려보는데, 첫째의 발에 채여 초밥 상자가 옆으로 넘어져 있었고, 포장이 많이 부실했던 초밥들은 케이스 밖으로 빠져나와 카트 위를 뒹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첫째에게 목소리를 높인다. "이게 뭐야, 좀 보고 발을 움직이지."

첫째가 대답한다."내가 모르고 그런거야. 모르고 그랬는데 화를 내면 어떡해."

나도 반박한다."모르고 그래도 잘못했잖아. 좀 봤었어야지."

첫째가 또 반박한다. "모르고 그런 건 괜찮잖아. 진짜 모르고 그랬단 말이야."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모르고, 발이 닿아서, 다리가 길어져버려서, 그렇게, 충분히 될 수도 있지..


나는 마트에 와서, 한참을 장남감코너에서 아이들 꽁무니를 쫓아다녔고, 특히 모든 걸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둘째에게 그 모든 걸 만질 때마다, 주의를 주느라, 이미 반쯤은 지쳐버렸다.

모기장을 고르는 그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어주지 않는 둘째에게 서운함이 있었고, 모기장을 담지는 못하고, 아이둘을 태워 무겁기만 무거운 그 카트가 너무 버거웠고, 자꾸만 무언가를 입에 넣겠다고 요구하는 둘째와, 그걸 또 지속적으로 넣어주는 엄마인 나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고,

그렇게밖에 못하는 엄마라서, 나의 육아무능함이 또다시 나를 덮치고 있었던 상황이라, 마지막으로 초밥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결국 참지 못했고, 그 모든 것을 응축하여 첫째에게 화를 냈다.


찌그러진 상자에서 튀어나와 뒹굴고 있는, 엉망인 초밥들의 모습이, 꼭 나의 멘탈, 나의 모습 같았다.

하지만, 첫째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는, 또 첫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자책감이 되어 나를 덮친다.


우리 삼총사의 외출은, 늘 외출에 지나치게 들뜨는 둘째의 막 나감, 그에 따른 엄마의 얼빠짐,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정도 사고치는 첫째에게 화냄, 그리고 돌아가는 차안에서 첫째에게 하는 사과...의 패턴이다.


처음에 잠시는 즐겁지만, 그 외출의 끝에서 결국 내가 육아를 정말 못하구나 하는 육아무능함을 느끼고 끝나고야 마는.

그러면 안 나가면 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나가는 게 더 편한 건 왜일까.


우리 삼총사, 차탄과 차바둑과 수지

내가 더 잘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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