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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Oct 09. 2020

확고한 가치관

뭐든 분명한 걸 좋아했다. 어릴 때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쉽게 그렇게 되었다.

"어리기 때문에, 잘 모르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그 분명한 무언가가 늘 외부에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준법성은 인정받았다. 그 분야의 우수한 학생을 뽑는데, 거의 대다수의 표를 내가 받은 적도 있었다. 준법성 우수자로 뽑혔을 때 나는 사실 좀 의아했다.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걸 왜 상으로 줄까?싶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분명히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씀을 착실히 잘 듣는 게 분명히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 상위권의 성적으로, 그 분들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직업을 가졌다.

결혼도 그랬다.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결국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져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부모님이, 세상이 원하는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오늘 수개월만에,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인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는 대학과 직장생활까지 여기 대구에서 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남편을 따라 수도권으로 이동했다. 결혼 전에는 일주일에도 몇 번을 만났던 사이인데, 결혼 후 지금 7년 이상 거의 만나지 못하고 전화통화만 종종 하는 사이가 되었다.


작년에는 친구가 미국에서 1년을 보낸터라 정말 오랜만의 통화였다. 그 통화에서 친구가 부동산 쪽으로 엄청 호재를 누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었다. 처음엔 경기도 어디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서울 강남의 유명한 좋은 아파트에서 산다고 친구는 이야기했다. 같은 절친인데 대학을 미리 서울로 가서 서울생활에 더 빨리 적응한 다른 친구도 대치동에 집을 샀는데, 집값이 엄청 올랐다며 자기 집값에 비교가 안 된다며 살짝 배가 아프다는 귀여운 투정도 부렸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질투보다는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대구 촌놈들이 서울 생활에 얼마나 각박해할까' 내 나름 조금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속 편하게 그냥 고향땅에 머물지 서울살이가 얼마나 고달플까' 혼자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다들 너무나도 잘 살고 있는 모습에 솔직히 좀 많이 놀라웠지만, 이내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나는 요즘 서울살이나 부동산 호재에 대해 부러움이나 질투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번화한 곳을 버리고 시골살이를 하러 떠가는 사람들을 보면 뾰족하게 질투가 일어난다. 내가 하고 싶지만, 결코 할 수 없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한국땅을 벗어나 해외로 가서 살고싶었으나, 남편과 나는 영어가 안되고 직업적으로 할 게 마땅치 않았고, 무엇보다 코로나를 겪으며 해외는 완전히 포기했다. 그리고 눈을 돌려 나는 제주살이를 꿈꿨다.


남편에게 "우리 제주도에 가서 살면 어떨까?" 했다가, 크게 부부싸움을 했다. 제주도에 가면 지금 월급의 반밖에 못 받는다며 나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온실 속의 화초 취급을 받으며, 부부싸움이 끝이 났었다.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통영에 월급을 많이 주는 자리가 있네"라는 말을 나는 얼른 잡아채서, "그럼 우리 통영 가서 살자"했더니 남편은 분명 한달만에 내가 다시 도시로 가자고 말할 거라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지었다.


남편은 자식들이 좀더 나은 교육환경에 있기를 바란다. 남편은 같은 직업을 가진 자신의 친구들 이상은 아니더라도 이하로 살기는 원치 않는다. 최소한 뒤처지지는 않는, 평균은 유지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요즘은 제주도나 시골로 이주하는 분위기가 있어서인지, 때때로 많이 그들의 선택이 부럽다. 부러움은 긍정적인 감정이고 질투는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부러움을 넘어 질투까지 일며, 그들의 그 선택이 조금은 헛되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지금 대구에서는 가장 도심인, 학군이 좋은 이 지역을 선택한 나의 선택이 맞기를 바라며, 대신 그들의 선택은 좀 틀렸으면 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실린 질투를 보낸다.


부동산 호재를 누린 사람이 내 주위에 꽤 많다. 부동산으로 큰돈을 버는 게 옳지 않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많이 부러울 일이다. 나 역시 부럽다. 나는 누리지 못한 그 호재를 누리는 사람은 얼마나 큰 복이 있어서 그런가 싶게, 부럽다. 하지만 이상하게 질투는 일지 않는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내가 부동산 호재를 누린 사람보다 시골로 이주하는 사람을 더 부러워한다것을 분명히 알 뿐이다.


서울의 부동산 호재가 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친구의 서울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감이 잡히지도 않는다. 그런데 괜히 친구네 아파트 이름을 검색창에 한번 써보는 나를 보니, 또 나는 집값이나 물질에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사람임도 분명한 것 같다. 어쩌면 '부러우면 지는거다' 싶어서 억지로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시골살이를 꿈꾸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남편말대로 나는 바로 탈출을 꿈꿀 수도 있다. 부동산 시장과 전혀 상관없는 시골동네를 지루하다고, 뒤처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 완전히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는 면도 크다.


곧 불혹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세상살이가 분명하지 않다. 무엇을 좇아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하면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인지, 나의 가치관들이 흔들리고, 삶의 그 어떤 것도 분명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흔들리며 꽃은 핀다고 했다. 아직도 내 인생의 꽃이 피지 않았나 보다. 아직 흔들릴 일이 많은 걸 보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추구했던 나이지만, 이제사 흔들리며 살아가는 내 인생이 어쩌면 진짜 내 인생은 아니겠는가.


세상이, 부모님이 심어준 가치관이 아닌 내 가치관을, 불혹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니까. 더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조급해 말고 천천히 내 삶을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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