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편지 – 아이유)
21. 나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기도
(밤편지 – 아이유)
나의 일기장 안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울게요
음 좋은 꿈 이길 바라요
누군가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어 한없이 작아지고 나약한 기분이 들었다면
당신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일면식 없는 이를 위해 잠시나마 기도해 본 적 있다면
당신은 온기 가득한 사람이다.
수많은 엄친딸과 엄친아들이 완벽한 후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완벽한 스펙,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엄친인들의 소문은
10대 20대 30대 나이대별로 새로운 경쟁 공식을 탄생시킨다.
내가 뒤처져있는 것과 같은 허탈함을 가지게 만들고,
결국 미생의 장그래까지 질투하게 되는 유치한 감정에 다다르게 되면
이토록 바닥까지 내려와 있는 나의 자아를 보면서 슬퍼지는 감정.
그것을 나는 자존감 하락이라고 부른다.
나는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인간관계의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제는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사람과만 만나려고 노력한다.
확증편향이라고 해야 할까. 자기 합리화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자동적으로 지나친 자기 합리화로 나의 자존감이 매번 바닥을 치는 순간에는
부지런을 떨면서 나를 행복하게 하고, 한없이 칭찬해 주는 사람들을 만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워가는, 나이 들면서 배워가는 좋은 점은
거절을 배울수록 나의 시간이 늘어나고,
감사함을 전할수록 내가 얻게 되는 인연이 많다는 심플한 공식을 터득하는 점이다.
코로나로 모두가 마음에 여유를 잃었던 그 시절,
도대체 끝을 알게 되면 인내심을 가지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도 그걸 몰라서 불안할 때,
불교대학 기초반을 다녔다.
엄마의 강요 내지 추천으로 선택한 불교대학 기초반의 첫날,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내 또래 젊은이들이 많았다는 점이고
또 한 번 놀랐던 것은 다들 진심이라는 점이었다.
신앙을 찾기 위해서 온 분들도 있지만 정말 행복하게 내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불교대학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았다. 정해진 약속을 하기 위해 숙제를 마무리하는 마음이었던 나는 좀... 반성하면서 약 10주 정도의 과정을 진행했는데 그때 강의를 하시는 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오늘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있었냐- 어떤 일이 나를 가장 화나게 했는지 각자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제각기 고심하는 표정을 짓거나, 바로 끄덕이거나, 노트장에 끄적이면서 그 찰나의 시간 동안 하루를 돌아봤다.
그리고 스님은 다들 생각하셨나요? 그리고 다음 강의를 이어가셨다.
다음에 이어질 말을 상상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그냥, 바로 다음 강의를 이어가셨다.
이걸 왜 생각하라고 하셨지... 궁금해하면서 나는 연습장 한 귀퉁이에 오늘 내 기분에 롤러코스터를 선물한 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글씨 위에 볼펜으로 낙서를 하다, 다시 강의로 의식의 흐름을 돌렸다.
그리고 다음 주 수업을 진행하시다가, 스님이 또 말씀하셨다. 툭 던지듯, 대수롭지 않듯이
'지난주에 그 일, 아직도 화가 많이 나셨나요?'라고 물으셨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한동안... 뭐지, 내가 뭐가 화가 났었지?라고 머리가 멍하다가,
노트를 앞으로 넘겨 내가 적어둔 글자를 골똘하게 되새김질했다.
낙서를 한 동그라미와 중간중간 검은색 선으로 그려둔 꽃 사이에서 이름이 하나 보였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고작 한 주 전에 나를 화나게 해서 씩씩거리면서 기분이 상했던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맞아, 나 그때 화가 났었다.
뭐 이런 무례한 경우가 있나, 생각하지만 그걸 따지고 넘어갈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퇴근길에 기분이 안 좋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열심히 따라가야 기억이 날만한, 지난주 목요일의 상황이었다.
이런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진짜 별거 아니었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분들이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지, 그날 나를 화나게 했던 그 일에 대한 감정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사실, 대부분의 디테일도 기억나지 않았다.
기를 쓰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조금씩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
그게 그렇게 화가 났었나, 고작 한 주만에 당시의 분함 마음이 기억나지 않았다. 마법 같달까.
어쩌면 나는 내 인생의 귀한 시간을 알지도 못할, 이런 나의 분함 마음을 알지도 못할 사람을 위해
사용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까지 내 마음이 가 닿았다.
분명, 금방 달라지기 쉽지 않다.
나는 많은 것에 연연하고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정리와 마무리의 힘을 믿기 때문에
오늘도 서랍을 뒤적이며 하나씩 슬그머니 정리할 물건을 꺼내둔다.
사람과의 인연도,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무리되기도 하지만
내 마음에서 끊어내야 하는 일도 생기겠지.
찰나의 화가 내 인생의 귀한 시간을 좀 먹고, 탐내지 못하도록
마음이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 나의 사람들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걸 살면서 체득하고 있다.
나의 설레는 시작을 알리고, 축하받고 싶은 사람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지 않고 그저 나이기 때문에 아껴주는 사람들,
새로운 시작, 도전을 응원하며 오지랖 넓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만드는 사람들,
건강과 행복을 기도하게 되는 이들을 가지고 있어,
충만하고 찬란한 삶이다.
문득,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거나
불현듯, 미안했던 누군가가-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겠지만 그냥 마음이 쓰이는 누군가가 있거나,
길을 가다가 어르신을 부축하는 낯선 이의 선행에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어려운 일을 하고도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웃는 사람 덕분에
생색냈던 내 모습이 민망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져갈 줄 아는, 성장하는 삶이다.
힘든 순간에는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사람들을 생각하고,
행복한 순간에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마음을 한 자락 내어보자.
그게 내가 행복해지는, 마음이 가득하고 온기가 채워지는 지름길이란 걸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