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취향을 만드는 시간, 만나는 순간

(Andante festivo - J.Sibelius/ 도이치 캄머필)

by 피알봇

22. 취향을 만드는 시간, 만나는 순간

(Andante festivo - J.Sibelius 곡/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필)


산만한 탓에 꽃꽂이와 서예, 다도를 배웠다.

나의 부모님은 집중력이 짧은 산만한 성격에 대한 만병통치약... 까지는 아니었지만,

당신의 자식에게 한 자리에 앉아서 사색하며 잔잔하게 행동하는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썩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 덕분에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는 집에 생화를 꽂아두거나,

두통이 심한 날에는 커피 대신 차를 우려 마신다.

새로운 경험이 나의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도 어린 시절 배웠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위로 있는 오빠와 아래 있는 남동생도 부모님께 선사하지 못했던 이색적인 경험들,

예를 들면 분식집을 가려고 교문을 넘다가 교복치마가 찢어진다거나,

친구들이랑 뛰다가 계단에서 굴러 깁스를 하는 등의 작은 사건과 사고를 겪었고,

엄마는 교육과 타고난 본성 그 중간 어디쯤에서 매번 방황하셨다.


부모님이 선택한 나를 위한 태교 방식은 당시 유행했던 클래식이었으나,

자라면서 한 번도 클래식에 집중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인생에 가장 친숙했던 클래식은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이었다.

클래식이지만 클래식 같지 않았고 (내 기준에), 간결했으며 오래 기억에 남아 자꾸 흥얼거리게 되는 곡.

수험생이 되고 나서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이 집중력 향상에 좋다는 말에 열심히 듣다가...

열심히 졸았다. 음이 묵직하고 가슴을 울리는데, 나른해지고 눕고 싶어 지는 게...

나를 자꾸 잠의 세계로 이끌었다.


인생에 즐길거리가 하나는 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엄마의 주도로) 교육관으로,

내 또래 대부분이 그렇듯(피아노를 전공할 것이 아니지만), 피아노가 악기의 기본이라는 생각에

체르니 50번 정도까지 배웠고, (심지어 그 50번도 수업을 빠지고,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겨우겨우,

선생님이 패스해 줘서... 가까스로... 도달했다.)

피아노 이외에 악기를 하나 더 배워야 할 때는 남들과는 다른 악기를 배우고 싶어서

알토 리코더와 단소를 배웠다.

이렇게 말하면 되게, 있어 보이고 예술을 사랑하는 인생 같아 보이지만,

사실 수행평가를 위해 연습했던 악기들이었다.

손이 작은 탓에 피아노의 옥타브를 연주할 때마다 자꾸 미스가 나와서,

좀 더 수월해 보이는 악기들을 선택했다.


수행평가를 위한 음악을 대학입학과 함께 졸업하기 전후로,

당시 학생으로는 진짜 큰 마음먹고 하루 종일 줄 서서 대기해야 했던 오빠들의 콘서트가 그렇게 설레었었다.

가사를 외우고, 랩을 따라 하는 호흡을 익히며 팬클럽 옷을 입고, 풍선을 맞춰 기다리던 그 순간,

개념 팬클럽이 되고 싶어서 쓰레기를 다 주워서 가방에 넣고 집으로 향하고,

전국의 팬클럽이 잔뜩 모여 서로의 포토카드와 사진을 교환하면서 마음이 부자가 되었던 그 시절을 지나,

뮤지컬, 연극, 영화 등을 손꼽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다.

월급을 받는 나이가 되어서는 비용이 부담이 되어도,

내가 보고 싶은 배우의 조합으로 날짜와 시간을 선택해서 보게 되는 여유도 생겼다.

지금으로 따지면... 보고 또 보고 싶은... 파산핑 같은 존재인 나의 배우 조합들.

공연을 가서 졸거나 스탠딩으로 춤추다 지쳐서 땅바닥에 주저앉을지라도

'다양하게 들어보자!'를 모토로, K-팝도, 클래식도 장르 관계없이 들으려고 노력했는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다양해지면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 취향도 성장하고 변화했다.




연차가 쌓였지만 여유가 생기기보다는 걱정이 많아졌다. 업무에 업무에 업무가 꼬리를 물고, 걱정이 가득해지니 자연스럽게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일과 생활을 모두 잘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업무에 매몰되어 여유를 잃었고,

점심시간에 팀원들과 밥을 먹으면서도 오후의 회의 지시를 하고

세면장에서 양치를 하면서도 휴대폰으로 생각날 때마다 메모장에 업무 관련 정리를 했다.

'열심히 일한다 = 나를 갈아 넣는 것' 밖에 몰랐던 시간이 지속되었다.


어느 날, 퇴근을 해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단체카톡방에 쌓이기 시작하는 카톡을 보는데 어느 순간, 휴대폰이 되돌릴 수 없도록 망가지고, 부서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손을 떠나, 그저 불가항력적으로- 그냥, 휴대폰이 부서져서 카톡을 확인할 수 없었어요- 이렇게 변명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라고 상상하는 나를.


내 마음의 빨간불이 삐요삐요 울렸다.

안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내가 사무실에서 나란 인간의 바닥을 보여줄 것만 같았다.

나도 선배 마음에 쏙 드는 후배는 아니었겠지만, 같은 말을 여러 번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며 숙지하지 않고 나를 매번 다산콜센터처럼 쓰는 후배와 클라이언트 이름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덤벙거리는 신규에게 날카롭게 말이 나가려는 걸 꾹꾹 참고,

같은 회의에 참석했는데 전혀 다른 말을 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고집하는 본부장이 이해가 안 되어 (평소에도 이해는 잘 안 되었는데...) 자꾸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 내 회사생활의 퇴사를 스스로 재촉하고 있는 나를 자꾸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거울 속 내가 화가 나 보였다. 그냥 여유 없이 사무실에서 사는, 그저 그런 사람.

눈빛에 반짝임이나 입가에 웃음이 전혀 없이 로봇같이 살고 있는 나의 모습.

힘들어도 유머 한 자락은 손바닥에 꼭 쥐고 사무실에서 여유를 잃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고,

지금까지 제법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은 바람이 가득 들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터지고야 마는 고무풍선의 외피 같이 위태로워졌다.




그때, 친구가 예매해 둔 클래식 공연을 가게 되었다.

클래식 공연에 짧은 곡은 듣고 '나도 들어본 곡이군' 이렇게 생각하다가,

곡이 조금만 길어지면 중간에 졸기도 하는, 나는 정말 평균의 사람이었다.

공연시간에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공연 에티켓으로 휴대폰의 전원을 꺼두어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당시 동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대리를 달았던 나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거 같다.

긴급한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회사에서 오는 전화는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압박에

영화를 예매할 때도 통로 자리를 예매했고,

뮤지컬을 볼 때는 인터미션 때마다 밖으로 뛰어나가 부재중 전화에 대한 콜백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나는 그때 항상 준비된 사람이 되고픈 강박이 있었던 거 같다.

그런데, 클래식 공연을 볼 때 휴대폰을 끄고는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 이후로 나는 조금씩 빈도를 높여가며

'오늘은 예매해 둔 공연이 있어서 휴대폰을 받을 수 없습니다'를 간간히 흘렸고,

동료들은 내 휴대폰이 꺼져있으면, 연락이 안 닿으면 '오늘 공연을 보러 갔나 보군'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숨 쉴 틈이 필요해서 시작했는데, 차츰 이 시간이 나에게 새로운 의미가 되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끄는 순간이 좋아서 찾기 시작한 클래식 공연장이, 나에게 기다려지는 공간이 되었다.


"우리가 재벌이 아닌데 네가 재벌 딸로 컸구나."라는 부모님의 탄식처럼,

나는 처음에는 음악보다는 내 휴대폰이 고요해지는 그 시간이 좋아서,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마음에 울림을 주는, 내 플레이리스트에 더하고 싶은 곡들을 만나면서

도대체 악기에서 어떻게 저런 음악을 내는 거지... 싶은 순간들을 예매처의 VIP가 되면서 경험하게 되었다.

선예매를 위해 많은 사이트의 기간제 유료회원님이 되었고,

여전히 유명한 클래식 곡의 1악장, 3악장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내 시간이 녹아들어 간 그 시간들은 꾸준하게 듣고, 공연장을 찾게 만드는 끌림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나, 나의 시간을 쓰는 만큼 음악들이 더 좋아졌다.

용재오닐의 비올라, 클라라 주미강의 바이올린, 백건우와 손열음의 피아노, 한재민의 첼로 공연은 달력마다 표시를 해서 기다리게 되었고, 손민수 피아니스트의 간결한 공연은 가끔 내가 너무 일을 못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유튜브로 재생해서 보는 최애 영상이 되었고, 조성진, 임윤찬 피아니스트 연주회 티켓팅은 주변 친구들과의 협동작전으로 변함없이 단단한 우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어느 해의 12월 말,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갔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서 끊임없는 박수가 나오자,

오케스트라가 우리에게 선사한 앙코르곡은 '시벨리우스의 안단테페스티보'.

와, 길지 않은 곡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우아하게, 모든 시간의 마무리를 완벽하게 매듭지어주는 곡이었다.

어떤 곡인지도 모르고 들으면서, 눈물이 조금 났다. 너무 감탄해서 입을 좀 벌리고 들었던 것도 같다.

마치 꿈에서 내가 좋아하는 해외 배우와 영어를 쓰지 않고도 대화가 가능해진 느낌이랄까.

그냥, 이 곡이 나에게 다가왔다.

여운이 너무 길어서... 조금 더 앉아있고 싶었다. 그 여운의 공기를 흐트러트리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공연장 무대를 사진으로 찍고,

공연장 밖으로 뛰쳐나가 앙코르곡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오늘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있어서, 이 음악을 듣고, 곡의 이름을 알게 된 나 스스로를 칭찬했다.

"이제 듣고 싶을 때 또 들을 수 있겠어-" 이런 만족감과 기특함으로 가슴이 가득 차올랐다.


지쳤을 때는 100번은 족히 봤을 '쇼생크 탈출'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튼다.

백색소음 같이 느끼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그 장면만큼은 행동을 멈추고 몰입해서 본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 이름은 성별이 다르지만 이름은 모두 '앤디'다...

난 영화 속 앤디들이 너무 좋다)

마치, 오늘이 처음 보는 장면인 것처럼. 익숙해서 더 잘 보이게 되는 장면들이 내가 다가오는 순간을 맞는다.

자꾸 부정적인 마음이 생길 때는 '해리포터 1, 2편'을 보며

헤르미온느와 덤블도어의 행동패턴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과 창의적이고 포용적인 자세를 가진 이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때로, 마음의 진정이 필요하고 조용히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

너무 기분이 설레고 들뜨는 마음 때문에 혹시라도 실수할까 나를 잠시 다독여야 할 때,

너무 화가 나서 천장을 보면서 한숨을 세 번 정도 내뱉어야 할 때,

너무 우아해서 왈츠를 추고 싶었던 '안단테 페스티보(Andante festivo)'- 이 곡을 듣는다.

크리스마스 축일을 염두에 두고 작곡된 곡이라는데,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좋은 생각이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든다. 한 해의 감사한 사람들과 나의 단단했던 가슴에 말랑하게 다가왔던 순간들이 엔딩 크레디트처럼 나에게 보인다.

고르고 골라, 내 마음에, 좋은 것들이 스며들듯 담기는,

좋은 것이 내 마음에 찰랑거리는 마법 같은 순간이... 나에게 찾아온다.

그렇게 한해를 잘 마무리 함에 대한 감사와 함께

내가 좋아하게 된 것들, 내 취향에 담겨가는 많은 것들에 대한 설렘을 잊지 않으려고 생각한다.


내일은 또 무엇을 마주하고,

내 취향에 어떤 것이 담길까.


당신의 행복 치를 높여주고, 힘든 순간에 당신을 지탱하게 만들어줄,

당신의 취향을 우연하게 마주하게 되길 바라며.

우연같이 마주해서 더 특별하고 선물같이 느껴지는 그 순간이

당신에게 찾아가길.

그래서 당신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당신을 위해 준비된 마법 같은 온기의 순간이 당신을 감싸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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