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너에게 - 스웨덴세탁소(feat. 최백호)
1. 깜깜한 그 밤, 나와 함께 걷던 노래
(두, 손 너에게 - 스웨덴세탁소(feat. 최백호)
사라질까요 지금 그리고 있는 미래도
아주 오래전 매일을 꾸었던 꿈처럼 잊혀질까요
걱정 말아라 너의 세상은 아주 강하게 널 감싸 안고 있단다
나는 안단다 그대로인 것 같아도 아주 조금씩 넌 나아가고 있단다
이 노래를 들으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수시로 때때로 곱씹었던 그날이었기에 어제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 같다.
종이를 구기고 나면 꼼꼼하게 잘 펴내도 실금 같은 자국이 남는데, 마음이라고 괜찮을까.
사무실에서 터질까 꾸깃꾸깃, 잘 접어낸 마음들은 공간 밖으로 나와서 잘 펼쳐도 자국이 남는다. 오며 가며 그 공간을 지나갈 때도 문득.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서도 문득. 마음이 멈춰 선다. 그때보다 단단해졌지만,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는 자국이 남아서 그렇겠지.
매일 루틴 한 일상보다 고된 하루가 마음에 자국을 남기고, 일기장에 기록되듯이, 힘든 기억은 미화되고, 지나간 어려움도 추억이 된다는데, 나에게는 그날 그 공간이, 그리고 웃돈을 주겠다고 해도 잡히지 않는 택시 사이에서 심야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가던 사막 같이 건조했던 시간이, 추운 바람에 자꾸 움츠리게 되었던 내가 생각난다. 공기가 차가웠고, 그래서 한기가 드는 날이었다. 봄이 오는 중이었는데, 내 마음이 그래서였는지 유난히 차가운 밤이었다.
이제 곧 드라이클리닝해서 넣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한 곳에 미뤄둔 패딩을 입고 출근한 날이었다. 봄이 오기 전에 겨울의 마지막 자락을 손으로 잡은 날이었다. 냉기를 막고자 입고 출근한 패딩이 버스에 앉으면서, 덜컥. 모자가 머리 위를 덮었다. 매일 하는 익숙한 행동이었다. 출퇴근을 하면서 평일에 2번은 반복적으로 하는 그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냥, 눈물이 났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을 이 버스라서, 마치 내가 엄마라고 부르면서 울어도 아무도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해외의 어느 도시같이, 우주의 한 복판 같아서 왜 우는지 나도 이유를 모르고 그렇게 울면서 퇴근했던 날이 있었다.
내 이름이 박힌 명함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크게 울어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슬픔에 공감하지만 내 앞에 닥친 상황은 가슴에 묻지 않고 흘려보내기 위해 노력했고, 감정에 지지 않으려 애쓰는 타입이고, 실제로 지금까지 잘 이겨냈었다. 근데, 그날은. 숨을 제대로 고르지 않으면,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의 자리까지 들릴 정도로 끅끅. 목까지 숨이 차오르게 눈물이 나왔다. 우는 나조차 얼마나 당황했던지. 처음 겪는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운데, 멈출 수는 없고. 근데 멈출 수 없으니 오히려 울면서도 안도가 되는 마음. 서른몇 해를 살면서도 이렇게 내가 컨트롤되지 않아 당황하는 순간은 손에 꼽혔다.
마음이 사막 같았고, 내가 서 있는 위치를 계산해 보는 것조차 버거운 날이 몇 주 계속되었던 시기였지만,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던 것도 아니고,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에 ‘지나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늦은 밤. 자정에 퇴근하는 그날.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고, 그저 이대로 순간이동해서 사무실 근처를 최대한 빨리 떠나고 싶었던 그날, 콜택시조차 응답하지 않았던 그 밤.
습관처럼 귀에 꽂은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최백호 씨의 목소리가,
넌 나아가고 있다는 다독이는 목소리가 나를 위한 응원가처럼 들려서,
계속 넘어지고 옆구리가 아파서 더 이상 걸을 힘조차 없는 나에게 완주를 해도, 완주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주는 위로 같아서.
온 세상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있다는 말이 왜 그렇게 서럽고 감사하던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듯이 걱정 말라는 목소리에 눈물이 쏟아졌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추워서 혹은 취기에 패딩 모자를 눌러쓴, 승객으로 보였겠지. 그날 창밖이 은하수 같았고, 나는 우주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왜 눈물이 났을까.
내 마음에 찰랑거리면서 고였던 눈물이 더 이상 고여있을 공간이 부족해서 역류했는지 모를 일이다. 늦은 퇴근길에 눈이 부시게 번쩍이는 사무실들의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불빛이 위로가 되었던 것인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잘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끊임없이 눈물이 눈물을 끌어내리는 그날, 마치 나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한 거 같았다. 고백만으로도 위로받은 기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이제 다시 홀가분해지는 마음이랄까.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하면서, 모자를 벗었다.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했지만, 괜히 눈물에 콧물이 함께 나는 그 순간에, 잠깐 여행을 다녀온 듯. 가슴에 고여있던 물을 눈물로 내보내고 나니, 비어있는 공간만큼 깊은숨이 쉬어졌던 그날이 나에게는 자기 치료였고, 전진이었다.
다음 날, 평범하고 일상적인 출근을 하고 내 공간에 앉아 단단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누구나 사회 생활하면서 스스로 작아지는 순간이 있겠지만, 누군가 나를 작게 만들도록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를 조금 더 키우고, 노력을 더 하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위로가 필요한 날에도, 내가 나에게 실망한 날에도 이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고 싶지만, 자꾸 발 끝을 떼기 힘든 순간에 나 스스로를 위심하게 되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계속 듣기로 고정해 두고 이 노래를 듣는다. 나는 나아가고 있고, 나는 소중한 존재라고 스스로에게 알려주면서.
절실하게 기도하고, 간절하게 준비했던 면접에서 탈락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에서 울면서 전화를 한 친구는 내가 그 버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고인 물을 퍼냈다. 다른 승객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섬처럼 앉아 각자의 집으로 향해 내가 우주먼지 같아서 위로가 되었던 그 순간으로 떠올라, 괜찮을 거란 말조차 친구에게 생채기를 줄 것 같아 그저 같이 울었다. 아무 대화도 없이 그저 흐느꼈던 통화 후에 이 노래를 보냈다. 오늘 밤. 친구의 세상이 친구를 감싸 안아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