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끝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로

(달리기 - SES)

by 피알봇

2. 끝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로

(달리기 - SES)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 나게 억울하겠죠

1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 걸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세상이 불공평하지만 어느 순간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 있다. 납득이 된달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내 걸음으로 지나오면, 가장 소중한 것을 얻게 된다. 이건 인정.


이 순간이 지나가긴 할까 반문하다가도 준비되지 않은 채 다가오는 마감은 고통이 된다. 해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이고, 물리적인 시간은 없는데... 보통 이럴 땐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이 꼭 있다.


아직 한자리 연차였던, 주어진 것들을 다 잘 해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3년 차에서 이직을 해서 조직에 적응을 하고 있을 때였고, 주어진 일을 쳐내는 것도, 새로운 것을 욕심내면서 기획을 하던 시절이었다. 예전에는...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것들이 있었다. 본래 다니던 회사가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것을 감안해도, 내가 이직한 곳은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을 원하는 곳이었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한데 조직에 충성하는 모습이 승진과 연결되는 비중이 훨씬 큰 곳이랄까. 아니다. 정정하겠다. 내가 있었던 그 당시, 그 부서가 유독 심했다. 경험해 보니 그건 조직의 문화라기보다는, 특정인이 만들었던 문화였기에. 여러 번 승진 기회를 놓쳤고 이제 막 자리를 잡아서 승진이 절실한 분이 내 선배, 사수가 되었다. 회의에 가서 일은 선심 쓰면서 다 받아오지만 정작 방향과 회의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고, 전 회사 물을 빼야 한다고 소위 말하는 텃세를 부리는 선배였다. 오자마자 계속되는 밤샘을 보기 민망한 동료들이 일이 많아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해 주고 내 또래 분들은 '여적여'라고 같이 화를 내줬다. 사실 뭐, 단순하게 생각하고, 일이 있으면 일단 끝내고 생각하자라고 생각하며 오늘을 살자-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라, 일 많은 건 괜찮았다... 괜찮았다는 말보다는 견딜 수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사람이 너무 바쁘고 시간에 쫓기면 시야가 좁아진다. 하지 못할 것 같은 순간에, 사람은 초능력을 발휘한다. 마감이란 것이 또 중독성이 있고,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과 (나 이상한 사람 아니다.) 이번 업무 과정에서 느낀 나의 부족함과 다음에 이런 기회가 온다면 더 잘 해내고 싶은 그 경력의 욕심이 보태져서 난 점점 성장하게 되었다.


보고가 잘 끝났고,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간 날이었다. 갑자기 선배가 간부에게 술을 따르라고 시키더라. 그래서 당황해서 쳐다보니,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선배는 여자였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그리고 회의 때 업무에 대해서는 할 말을 곧잘 했던 내가 당황하는 눈빛을 보고, 나의 상사가 그 분위기를 잘 무마했다. 요새 이런 거 시키는 곳이 어디 있냐, 술은 각자 따라 마시자- 이렇게 무마하고 넘어가는데, 선배는 기어코 내가 따르는 술을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차례 강요하고, 술자리에서 노래도 시키더라.


우리가 직장 내 괴롭힘, 따돌림이 있는 드라마를 보면, 극 중 캐릭터를 미워하며 ‘너무한다’고 외치지 않나. 처음에는 저녁까지 고생하는 선배가 안쓰럽기도 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간부들과 먹고, 간부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어떤 부분에서는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각자 조직생활을 이겨내고, 견뎌내고 이뤄내는 것은 자신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다고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것이 진실이었는지, 이제 와서 알 수 없지만, 그 선배가 나를 만만하게 보고, 나에게 일을 자신의 일을 ‘짬’ 시키듯 보냈다고 생각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이... 사실은 내 착각이란 걸 알게 되었다. 선배는 내가 만만했던 게 아니라 그냥 싫었던 거였다. 내가 어렵게 올라온 자리, 너는 경력직으로 편하게 와서 쉽게 쉽게 얻어낸다고 믿었던.. 심통이랄까. 매번 ‘경험’을 쌓게 해 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데 나에게 준다고 선심 쓰듯 일을 넘겼고, 직원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내 업무에 대한 평가를 하는 소리가 탕비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동물원 안에 갇힌 동물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기웃거리고, 내 눈치를 보는 느낌. 불편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느라 온몸이 긴장되는 순간으로 몇 개월이 지났다.


전에 있던 곳에서는 그렇게 일을 배웠냐고 망신을 주면서도 정작 내 보고서를 출력해서 보고하는 선배로 인해 자꾸 주눅이 들었지만, 나는 그녀가 보지 못하는 순간에, 다행히 그가 사무실에 없어준 덕분에 성장했다. 배울 수 있는 사람들,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나의 성장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때 출근길에... 달리기를 열심히 들었다. 때론 이대로 어디론가 달려가버리고 싶었던 그 순간에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가사처럼, 헤드헌터의 전화를 받고 당장 옮겨버릴까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을 설쳤던 시간이 있었다. 보란 듯이 때려치우고 이직하자고 마음먹었지만, 내가 하고 싶어 했던 프로젝트, 내가 쌓고 싶은 경력이 이곳에 있었다. 약을 삼키듯 출근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고난에, 마음고생에 (나의 경우에는) 끝이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고생이다. 누가 고난을 자처하겠는가. 하지만 지나고 보니 참 많은 것을 얻었다. 내가 이직한 조직에서 만나게 된 좋은 사람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호칭을 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3할은 그 시절, 그 해에 만났던 사람들이다.


달리기 노래를 들으면서, 이제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도 있게 되었다. 방을 정리하는데 어느 날, 두꺼운 일기장이 한 권 나왔다. 매일 꾸준하게는 아니지만,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타입의 인간이었으나, 휴대폰에 조금씩 메모하는 것이 습관화되면서 슬슬 펜으로 종이에 정리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여전히, 머리가 복잡하면 펜을 잡고 일단 끄적임을 시작하는 나라는 사람이 남겨둔 수년 전의 표식을 발견했다. 여기서 나만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나만 이상한 것 같았던 그 시절, 그래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표지의 일기장을 사서 아침마다 ' 이 시간도 곧 지나가리라'를 쓰고 하루를 시작했던 그 시절의 끄적임을 넘겨보는데 웃음이 터지면서 눈물이 나더라. 참, 그 시절의 내가 대견하면서도 슬펐다고 해야 하나.


괜찮은 척을 해야 했던 시절. 쉽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의연한 척했던 시절.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일기장에 선배 욕을 쓰면서 하루를 시작했더라. 의연은 개뿔.

단세포 분열을 하는 아메바처럼 끝도 없이 써 내려간 문장은 '이 순간도 지나간다'였다. 곧 이 시간이 지나가고, 난 이 시간을 반드시 견뎌낼 거라는 다짐


앞으로 이런 시간이 또 내게 오지 않겠나.

서로 다른 가치관을 만난 사람을 만나서 서로 충돌하고 타협하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마주하게 되기도 하겠지.


하지만 완주를 했다는 사실, 다시 뛰어야 하고 또다시 피니쉬 라인을 통과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그 사실을 기억하면 될 거 같다.


그리고 뛰고 나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내 옆에서, 내 앞에서 내 이름을 외치면서 응원해주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다음에는 더 잘 뛸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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