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지금, 내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

(MONSTERS, 최강야구 OST - 이원석)

by 피알봇

12. 지금, 내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

(MONSTERS, 최강야구 OST - 이원석)


뜨겁게 달려가 나는 두려움이 뭔지 몰라 부서지면 거기서 또 시작해

모든 게 선명해 내가 부딪히며 왔던 길 괴물이 된다 해도

날 부르는 기다리는 불을 뿜는 포효가 점점 가까이 들려

태양은 진 적이 없기에 (We are Monsters)

낮과 밤은 의미가 없네



위아래 남자형제들이 있어서, 매년... 아니다 365일 스포츠의 일정을 공유받는다... 롯데팬이었던 오빠(심지어 우리 집안은 부산 지역과는 큰 연고가 없지만... 아빠가 오빠를 데리고 가서 봤던 첫 경기가 롯데경기였고... 그다음 오빠는 롯데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야구단 비슷한... 걸 거치면서... 이번 생에는 영원한 롯데팬이 되었다)는 팀세탁을 하지 못하고, 하루는 기분이 좋았다가, 나머지 날들 대부분 열이 받아 있었고,

축구를 좋아하는 남동생은 대표님 인선이 발표될 때마다 감독에 빙의한 느낌으로 심각하게,

(마치 기말고사 시험을 준비하듯) 각 구성원들의 전력을 분석했다. 저걸 어디 논문으로 낼 것도 아닌데 이렇게 꼼꼼하게 전력을 분석할 일인가... 싶게 진지하고 엄숙하게.


그들은 자신들이 에너지를... 평소보다 과하게, 과도하게, 과잉으로 쏟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신났고, 화났고, 흥분했고, 좌절했고, 수다스러워졌다.

때로는 선수에, 때로는 구단에, 때로는 해설위원으로 칭찬과 흥분의 대상이 시시각각 바뀌면서,

야구와 축구는 단순히 스포츠가 아닌 그들의 삶의 한 축이 되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질 거란 슬픈 예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롯데팬들이 그렇듯

어쩌면 이란 희망에 기대어, 오늘도 롯데 경기를 보는 우리 오빠는

자신의 격해지는 성격이 야구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끊지 못한다.

크게 지고 있다가 소심하게 따라잡는 경기의 순간에 오빠는 해낼 줄 알았다는 확신을 더해,

선수들을 극찬한다.

그리고 역전해서 경기를 이기기라도 하게 되면,

경기 내내 롯데 팬들과 주고받던 카톡을 보다가 뛰쳐나가고야 마는 것이다.


가족의 성향이 제각각이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삼 남매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눌만한 소재가 많지 않았는데 '스토브리그'는 성인이 된 이후 우리 삼 남매의 공감대와 취향을 저격한 작품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좋았던 부분을 이야기하고, 때론 서로의 직장생활과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 그를 투영해서 대화하며 의견을 나누었다. 누구 하나 짜증내거나 화내거나, 감정적인 부분 없이 '대화'를 하게 되는 매개가 되었다.


스포츠를 경기가 아닌 인생의 곡선으로 빗대어 이해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한 경기에서 느끼는 순간이 되었던 그 어느 지점에,

나는 최강야구를 만났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들이 야구장엘 갔다. 나는 순전히 먹으러 갔다. 학생이 되어서는 재미로 갔고, 대학교 입학 이후에는 친구들끼리 놀러, 데이트하러 갔다.

경기 자체의 승부보다는 그저, 그 분위기가 좋았고 때때로 열정을 공유하는 이들의 사이에 있으면 나도 그 열정을 발산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취하는 기분으로 갔다.

응원을 위해서, 순전히 나의 팬심을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간을 쏟고 내 돈을 쓰며 구장을 찾게 된 것은 순전히, 그래. 순전히 최강야구 때문이었다.


나의 최강야구 입문은 나를 부를 때보다 더 다정하게 '이대호' 선수를 부르는 오빠의 영향도 있었지만,

당시 최강야구에 미쳐있는 주변인들의 영향이 컸다. T적 성향을 고수하지만 최강야구 네 글자 앞에서는 모든 걸 무장해제하고 신자에 가까운 태도로 돌변하는 친구와 가게 된 첫 번째 직관경기가 최강야구의 입문을... 뛰어들어가 안기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내가 갔던 직관경기는 콘서트 공연을 보러 더 자주 갔던 고척돔이었고, 그날의 경기는 아주... 특별했다.

한국에서 흔하게 만나게 되는, 우리가 경기에서 보게 되는 대부분의 프로야구선수처럼 엘리트 체육 계단을 밟은 선수가 아니라 사회인으로 생활하면서 독학으로, 포기하지 못한 꿈에 계속 도전하고 있는 '선성권' 선수가 마운드에 올랐던 날이기도 하다. 이날 경기도 독립리그와 최강야구 몬스터즈팀의 경기는 안정적으로 몬스터즈가 승기를 잡고 이끌어가고 있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점수차이가 벌어지자, 김성근 감독은 직관데이에 '선성권' 선수를 마운드에 올린다.


최강야구의 선수들은 한 때 서로가 라이벌이었고, 각기 다른 팀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호흡한다. 어떨 때는 관중석에서 LG의 응원가가, 이대호 타자가 들어서면 롯데 응원가가 울려 퍼지면서 우리나라 각 구단의 대표 응원단이 흘러나오거나 몬스터즈 주제가가 울러 퍼지기도 한다. 뭐랄까, 내 기준에는 전 구단의 통합과 화합의 장 느낌이었다.


이날 고척돔 직관에서- '맞아, 우리가 이래서 야구를 좋아하지'라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마주했다. 큰 이변이 없다면 몬스터즈의 승리가 거의 확실해지는 순간에 김성근 감독이 '선성권' 선수를 등판시키자 진짜 관중석은 환호로 가득했다. 내가 기회를 얻은 것처럼, 간절하게 등판의 기회 한 번이 너무나 절실했던 나에게 공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모두가 내 일처럼 좋아했다. 그리고 선성권 선수가 공을 잡자, 약속이라도 한 듯 경기장이 적막해졌다. 혹시라도, 직관으로 긴장한 선수가 긴장감에 실수라도 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사람들은 숨도 작게 쉬면서 한 마음으로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삼진을 잡지 못했고, 포볼로 선수를 내보내고 나고, 실점으로 이어지면서 선성권 선수는 불안해했다. 김성근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오자, 모든 관중들은 '잘했다, 그래도 잘했다'라며 아쉬워했다. 아마, 누구보다 아쉬웠던 것은 주어진 기회에서 원하는 만큼을 보여주지 못했던 선수 자신이겠지. 마운드의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항상 그렇듯 투수 교체가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선성권 선수만 마운드에 남고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모든 관중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환호했다. 너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 마치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의 허락같이 느껴져서,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또 누군가는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으로 환호하고, 응원했다. 당신의 도전이 성공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실점이 이어지고 있지만, 감독은 투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고, 어려운 첫 번째 기회, 그보다 더 무거운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된 투수에게 우리는 할 수 있는 가장 큰 박수로 응원을 보냈다.


왜, 눈물이 날 것 같았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누군가의 응원과 믿음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고

주어진 기회에 원하는 만큼 성과를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나와 친구 모두 인사를 평가받는 입장에서, 직원에 대한 평가를 나의 상사에게 해야 하는 경력을 쌓아가는 연차였다. '신뢰와 믿음'의 적정 수준, 적정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항상 혼란스러울 시기였다.

괜히, 나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고, 정말 잘하고 싶어서 연습을 열심히 하고 실수해서 내내 자책하고 있었던 나에게 내 본 실력이 이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고 츤데레스럽게 세상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아 더 서러워졌달까.


그래, 우리가 이래서 야구를 좋아했지.

지금을, 지금의 순간을 가장 찬란하고 빛나게 만드는 마력이 있어 우리가 너를 사랑했지.


그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경기 중간에 녹여져 있는 우리가 마주하고 싶었던 세상이 들어가 있고

실수를 했지만 두 번째 기회에서 더 잘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의지를 볼 수 있었고, 무조건적으로 응원하면서 그의 다음 도전이 꺾이지 않도록 하는 관중이 있고.

은퇴를 했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가 가장 잘하고 싶은 야구를 위해 빠짐없이 훈련에 몰입하는 선수들이 있고,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2군 선수들이든 경기를 할 때 최선을 다하는 진심이 있고,

일주일, 한 달, 365일 내내 야구만 생각하며 아직도 또박또박 상대편 선수의 전력을 메모하는 감독이 있고,

수많은 징크스를 지키며 혹시라도 우리 팀에 누가 될까 몸을 사리는 수많은 응원군이 모여 이루는 '최강야구'.


그 이후로도 정말 운이 좋아 직관을 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우리 오빠가 사랑하는 롯데와의 원정경기였는데,

사직구장에서의 경기는 정말... 장관이었다. 심지어 일단 되는 자리를 잡으려고 티켓팅을 해서, 나는 롯데 홈팀에 앉아서 최강야구팀을 응원하게 되었는데, 주변의 정겨운 야유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잠실 구장에서 경기를 볼 때는... 사람들이 5회 이후부터 취하기 시작했던 거 같은데, 롯데 홈팀은 이미 야구장에 입장하면서부터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1회를 시작할 때는 새로운 잔을 들었으며, 2회가 되기 시작하니 너 나 할 것 없이 어깨춤을 췄다.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가 솔로홈런을 치자 상대편임에도 불구하고 '이대호'를 환호하며 역시 우리 대호를 외쳤다. 마치, '너의 모든 순간을 응원해...' 나조차 뭉클하게 만드는 함성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게 만드는 환호와 응원을 받아본 사람들은 외롭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니라며, 지치지 않고 선수들에게 환호를 보낼 줄 아는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줄을 서서 굿즈를 사고, 유니폼을 입고 정갈하게 응원가를 외우게 만들었던 나의 몬스터즈.


야구란 스포츠의 룰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경기의 순간에서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한결같이 노력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다시금 깨달았고,

덕분에, 많이 웃었고 많이 외쳤고, 서로를 응원하는 분위기에 소름이 돋았고, 그래서 관중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어느 순간에는 지금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덕질이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즐기게 되었고,

그래서 가끔, 피하고 싶은 어떤 순간이 온다고 해도 견디고 버티고 맞설 수 있는 힘을 비축할 수 있게 되었다.


아웃이 확실한 순간에서도 나를 응원해 주는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전력질주하며 아웃을 당하는 선수들과

아웃이 될지언정 전력을 다해 질주하는 선수들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내는 응원단,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찬란한 순간을 만들어주는, 존재들.

몬스터즈 모두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최강야구'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 프로그램을 만나긴 어렵겠지만 (팬의 입장으로... 이 내홍이 잘 정리가 되어서 야구팬들에게 기쁨이 되어주길 바란다)

재방송을 돌려보게 만들었고, 선수들의 입단을 계속 확인하면서 내 가족의 일처럼 그들이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기도했던 모든 순간에 나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야구를 주제로 대화할 수 있는 동생이자 누나가 되었고, 내 주변 최강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직관을 성공한 성덕이 되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야구선수들이 은퇴한 이후에 자신의 다른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나의 어느 순간 은퇴를 상상하며 기분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고마워요, 몬스터즈. 나에게는 당신들이 최강최강.

keyword
작가의 이전글11. 좋은 일은 추억이 되고, 안 좋은 일은 경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