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모든 자식의 안부를 위한 기도

(모든 날, 모든 순간-폴킴)

by 피알봇

16. 모든 자식의 안부를 위한 기도

(모든 날, 모든 순간-폴킴)


나를 보는 네 눈빛은 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모든 순간은 눈부셨다

불안했던 나의 고된 삶에 한줄기 빛처럼 다가와 날 웃게 해 준 너

나는 너 하나로 충분해



뉴스를 빠짐없이 챙겨보는 편이다. 한 때는 모니터링 때문에 무조건 봐야 하는 '업무의 대상'이었다면 나이가 들어가고, 내가 사회구성의 일환이라는 걸 자각하면서는 (다시 말하면 내가 사회의 영향을 받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강제력이 없어도 챙겨보는 '확인의 대상'이 되었다.


어쩌면 집안 내력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매시간 뉴스를 챙겨보셔서 할아버지 댁에서 내가 만화를 볼 때마다 나와 리모컨을 두고 경쟁하셨고(평상시에 그렇게 손주 사랑이 넘치는 분이지만 리모컨은 양보하지 않으셨다), 우리 할머니는 돋보기를 쓰시고 2-3개 신문의 모든 면을 꼼꼼하게 읽으셨다. 사설과 부고란까지.


그리고도 궁금해서 우리에게 세상 돌아가는 걸 묻곤 하셨다. 너희들은 눈이 좋아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니- 이런 계몽적인 말씀을 추가하시며. 내 나라 언어를 말하고 쓰는 것조차 통제받았던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셔서 3.1절이나 8.15 광복절 기념일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집중해서 보시다가, 애국가 반주가 시작되면 두 분이 큰 소리로 따라 부르시기도 했다.


외할머지, 외할아버지. 나의 외조부모님들은 뭐랄까... 시트콤 캐릭터셨다. 입담이 재미나다... 이런 걸 떠나서, 뭐랄까 두 분이 같이 계시면 의도치 않게 만담극 한편을 보는 것 같았고, 두 분이 기억하는 과거가 달라 서로 언성이라도 높아지면 100% 할머니가 이기셨는데, 먼저 화해를 청하시는 것도 할머니셨다- "당신이 그때 그랬다고 했었나?" 이렇게 슬쩍 말을 먼저 거시면서. 주거니 받거니, 가장 친한 친구이면서 가장 화를 많이 내는 서로에게 오늘 하루의 뉴스, 오늘 손주들의 일상, 당신 두 분 자식들의 일과를 나누는 루틴은 두 분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자, 평생 일궈온 루틴이기도 했다.


압박에 가까운 면접 중에 면접관의 질문에 할머니의 사례를 들어서 답변한 적이 있다. (난 덕분에 그 면접에 합격했다고 믿고 있다.) 단 시간 내에 효과를 보기 어려운 홍보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실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하는지 너무 막막했고, 앞선 압박질문으로 머리가.. 그저... 텅 빈 상태여서 그냥 할머니를 예로 들어 답했다. "저희 할머니는 매일신문을 읽으십니다. 기사 속 내용을 본인이 이해를 잘했는지 손주들에게 묻기도 하시고, 방송 뉴스를 보면서 답을 찾기도 하십니다. 저희는 할머니께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셔도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을 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때론 그 과정에서 제가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할머니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할머니의 인사이트를 통해 제가 다른 방향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도 있게 되더라고요. 단 시간 내에 효과를 보기 어려운 홍보는 단 시간 내에 성과를 확신할 수 없지만 긴 호흡으로 다양한 우리의 홍보타깃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우리 사업에 대해 접점을 확대하고, 긴 호흡을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지금 쓰면서도 이게 맞는 말인지 확신이 안서지만, 나는 그... 자신 있게 답한 게 참 없었던 그 면접에서 합격 통보를 받은 순간, 합격신이 내 손을 잡아준 건 8할이 매일신문을 읽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신 할머니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외조부모님은 아주 유쾌하셨는데, 지금 나이가 들어서 돌아보니 어쩌면 그건 당신들의 손주들을 위해서 노력했던 '의도된 유쾌함'일 수도,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대함과 손주들을 위한 기원이 담긴 '절실한 유쾌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6.25 전쟁 중에 전사한 유해의 신원을 밝혀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시면 (할아버지는 참전용사셨다)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이제 저 양반 편안하게 눈 감겠네-라는 말로 시작해서, 당신의 참전용사 시절 무용담, 그 시절 할머니의 생활을 이야기하셨는데. 조금씩 디테일이 달라지긴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의 틀은 변함이 없지만 두 분은 매번 그렇게 처음 하는 이야기처럼 몰입하셨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매번 재미있게 주고받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조합이라니!)


남편이 전쟁터로 간 새댁.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큰 집 살림을 해야만 했던, 문학소녀가 꿈이었던 할머니의 삶을 듣다가, 철없는 도련님으로 사셨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집안 제사만큼은 칼같이 지키셨던 종손의 삶을 사신 할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나는 잠이 들곤 했다. 가끔 두 분은 당시 유행했던 노래를 화음을 넣어 주거니 받거니 따라 부르다가 가사가 틀린 사람에게 무안을 주시기도 하면서... 똑같은 하루의 일상에 나름의 변주를 주셨다. 두 분은 엄청... 수다스러우셨는데(내 어린 기억에 그렇다), 그런 두 분도 당신들의 첫 딸, 잃고 가슴에 평생 묻고 산 딸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듣고 있을 때는 하지 않으셨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첫 아이라 고르고 고른 이름을 지어줬는데, 그 아이를 안았던 순간이 너무 생생해서, 두 분은 서로의 공간에서 당신들의 첫 아이를 끊임없이 그리워했다. (우리 엄마는 오 남매의 둘째셨는데, 오 남매 맞이인 삼촌 위로 있었던 딸을 잃으셨다고 한다.)


나는 몰랐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자식을 잃거나, 뉴스에서 사고로 인명피해가 난 기사를 접할 때면 항상 '저 집 부모 어떻게 사냐'며 가슴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의 아픔을 같이 나누는 공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외조부모님의 가슴에 묻은, 평생 품고 있는 당신들의 첫 아이 이야기를 알게 된 이후에는 두 분의 모든 간절함들이 당신들의... 이야기였구나...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아침 뉴스로 인해서 저녁까지 가슴 아파하셨다.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지진 뉴스, 건물 붕괴, 다중추돌 사고 뉴스를 보신 날은 생존자 구조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더 큰 피해는 없는지 - 매 시간 뉴스를 챙겨보시며, 내 가족 일처럼 걱정하셨다. 부모로 살아보고, 조부모가 되어보니 가족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고 오늘과 같은, 별일 없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하늘에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셨다고, 말씀하시면서 염주알을 굴리시며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외셨다.


10주기를 맞은 세월호 뉴스를 보면서 할머니 생각이 났다. 사고 당시, 할머니가 얼마나 우셨던지, 저 부모들 어떻게 살아가냐며 뉴스를 보고 울고, 울고, 우셨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당시 뉴스를 보시지 못하게 해야 할 정도로, 식탁에서도 말씀을 하시다가 자꾸 목이 메어서 수저를 내려놓으시던 그때. 구조되지 못하고 수습되었던 학생들, 서울광장에서 한 시간을 넘게 서서라도 그들의 명복을 빌었야 했던 분향소의 울음소리... 노란색 리본에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던 모두의 마음. 모두가 각자가 믿는 신을 향해,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너무나 절실해져서 '제발 제발 제발'을 되뇌었던 4월 16일 이후의 일상.


평소에 좋아하는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 노래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뉴스클립을 보고 짐작조차 되지 않는 유가족들의 슬픔 끝자락에 손이 닿는 느낌이라 울컥했던 순간 이후, 나에겐 이 노래는 더 이상 듣기 좋은 발라드가 아닌, 모든 부모의 기원이자 기도이자, 희망이자 편지가 되었다.


모든 날, 모든 순간- 당신들 가슴에 묻은 자식을 생각하며 모든 자식의 안부를 항상 걱정했던 내 외조부모님이 생각나는 밤이다. 잠든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두런두런 당신들의 사랑을 쏟아내 주셨던, 그날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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