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혼자 떠난 여행에도 항상 함께 하는 내 가족

(가족 – 이승환)

by 피알봇

17. 혼자 떠난 여행에도 항상 함께 하는 사람들, 내 가족

(가족 – 이승환)


어떡해야 내가 부모님의 맘에 들 수가 있을지 모르고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하죠

사랑해요 우리 고마워요 모두

지금껏 날 지켜준 사랑 행복해야 해요


난 2남 1년의 중간, 고명딸이라고 불리는 중간 존재로 태어나고 자랐다. 여자여자한 딸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부모님은 오빠를 따라 나가 놀다가 다리를 다치고, 팔이 빠지고, 항상 상처를 달고 사는 나를 보면서 인형 같은 딸에 대한, 드라마에 나오는 까르르 웃으면서 공주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는, 귀엽고 상냥한 딸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내려놓으셨다. 그분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 무던하게 애쓰셨던 거 같다.(이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학교에서 뛰다가 계단에서 굴러 다리에 깁스를 하게 된 날, 아빠는 내 키에 맞는 목발을 주문제작해서 그걸 안고 포장마차에서 술을 드셨고, 친구들과 저녁 자습 전에 분식집을 가려고 담을 넘다가 교복 치마가 찢어진 날, 교복치마를 꿰매는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도대체 내 딸은 왜 이러나, 얘는 누굴 닮았나.


세상 여성스러운 여동생들만 봤던 아빠는 신인류 같은 당신 딸을 보며 한숨 쉬며 음주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엄마는 친구들과 통화하다가 내 이야기가 나오면... 어금니를 꽉 깨무는 순간이 늘어났다.


그렇게 나는 성장했다.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었고,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지고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날 때면, 가끔 내 딴에는 불의를 모른 척하지 않는 대의라는 자만심에 가족들에게 입바른 소리를 해서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TV에 나오는 중 2병 같은 짓을 하면서 - 또래와 비슷하게, 또래가 할법한 것들을 두루 경험하며 자라났다.


키가 크지 않을 때는 아빠 탓을 했고, 함수를 못할 때는 엄마 탓을 했다. 이건 다 유전자의 힘이라고 우기며.

오빠랑 남동생은 한편이고, 나만 혼자인 것 같은 착각을 하며- 내 편은 누가 들어주는 거냐며 하소연을 하고, 오빠는 맏이라서 남동생은 막내라서 다들 챙겨주는데 나는 잡초처럼 큰다며 건방진 불평을 하며

마치 이 집안에서 나만 독립적인 존재인 것 같은 생각을 했다.

나는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 있어-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하며.

(아마도 챗GPT에게, 사춘기가 왔지만 나는 사춘기 따위는 겪지 않는다고 믿는 중2 스타일로 작문해 줘-라고 하면 스크립트에 뜰법한 문장들로... 하루 대화의 대부분을 채워가며)


그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 있는 평안한 일상이 감사한 일이란 걸 몰랐다.

그저 비슷하다, 다른 친구들이랑 똑같네- 이렇게 생각했다.

그저 평범한 게, 별 탈 없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고, 갖지 못한 거에 불평했고, 가진 것에 아쉬워했다.

해맑고 무지했으며, 지금 하는 행동을 후회하게 될 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셈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시선이 따뜻한 아이들로 우리를 키우고 싶었던 우리 엄마는

자식들의 생일날 머리맡에 시집을 선물로 두고 가셨고,

늦게까지 산타를 믿는 아이들을 위해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셨다.

시를 좋아하셨던 엄마의 영향으로, 산책할 때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외우면서 산책을 하곤 했었다.

시가 더 이상 흥얼거리면서 산책할 때 따라 하고 부르는 정도를 넘어 내 문학시험 점수를 결정짓고

수능에서 내 등급을, 그래서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을 결정짓는 존재가 되어

더 이상 편안한 마음으로 음미할 수 없게 된 나이의 터널을 지났다.

내 나이는 오빠의 학원 가방을 가져다주기 위해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엄마에게 들려줄 동시를 외우던 그때보다 세 배는 많은 숫자의 삶을 살게 되고,

생각 없이 쿨하다고 내뱉은 말이 갑자기 떠올라 화끈거림을 알게 되는 나이,

시집보다는 에세이나 소설,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되는 재테크에 대한 책을 뒤적거리는 나이가 되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거고, 외로움은 누구나 느끼는 거라고 말하며, 얼마나 오만방자했던가.

무작정 회사에 사표를 내고 어학연수, 대학원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서 떠났던 호주 여행을 하다가,

친구와 함께 여행을 온 미국 아줌마를 만났다.

시드니에서 머무는 일주일 동안 한 곳의 숙소에 묵었는데

아줌마는 조식당에서 나를 만나면 (동양 여자애가 혼자 돌아다니는 게 걱정되었나 보다...)

"아침은 먹었니? 엄마한테 연락을 했니?" 이렇게 굿모닝에 이은 질문을 이어갔다. 전 세계 어머니들의 공통점이랄까. 쌀쌀해서 카디건을 챙겨야 하나... 생각하는 나에게 미국 아줌마 1, 아줌마 2 그룹은 내 민소매 차림을 보며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워서 옷을 하나 더 챙기렴" "아침은 든든히 먹었니?"...이렇게 나를 챙겼다. 이렇게 엄마미소 장착한 아줌마들과 굿모닝을 하고 나니, 여행을 갈 때는 언제든지 긴팔, 반팔 두 종류를 챙겨야 한다고 강조하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졌고, 예쁜 곳을 보니 이곳에 내 가족들이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못 볼까 봐 마음을 졸이며 동동거리다가 춤추는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만나서 울컥했던 그 순간에도

인간이 정말 이런 걸 만들었냐고 감탄하는 스페인 가우디 성당 안에서도

항상 가족이 생각났다. 열심히 찍는 사진들은, 지금의 감동을 공유하고 싶은 욕심과

이 순간에 그들과 함께 있길 바라는 염원을 섞어 연신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내가 뾰족해지니,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찌르게 되더라.

나도 모르게 나가는 가시 같은 말들이 가족들을 다치게 할까 봐,

작아지는 내가 이러다 닳아 없어질 거 같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만 꽉 채운 여행일정.

번아웃이 온 나에게 이번 여행의 To Do List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고 쓰고,

나를 비워서 채우자고 다짐했던 그 여행에서 나는,

내가 가진 것들, 내 가슴에 채워진 것들을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거실 TV에 내가 좋아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틀어두던 오빠

누나가 좋아하는 치킨 시켰다고 괜히, 업된 목소리로 집에 바로 올 거냐고 확인하는 남동생.

정작 당신은 누구보다 무서웠던 상사였지만, 일을 열심히, 잘하는 딸도 좋지만 그저 물 흐르듯 살길 바라는 아빠와

오늘도 나를 위한 천배로 하루의 아침을 시작하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폐쇄적이고 숨 막히는 조직 분위기가 싫어 출근이 너무 고 통스러었던 나에게,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자꾸 스스로 들볶지 말고 물 흐르듯 살아보자는 아빠에게

"아빠, 난 젊잖아 그래서 내 마음이 그렇게 물 흐르듯 안된다고!"라고 외쳤던 나도

이제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 욕심내는 막내들이, 마음같이 성과가 나오지 않아 좌절하는 신입들을 보며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나이가 되었다.


흐르듯 살기에는 매 순간 일희일비하고,

재테크 잘해서 부모님 호강시켜 드리는 자식들도 많다는데 난 여전히 유리통장이고

오빠랑 남동생에게 살갑고 싶은데 매번 짜증을 내지만,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며

단단하고 반듯하게 도전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애정하는 일을 찾았고 (어쩌면 하던 일을 애정하게 되었고)

여전히 내 자리인지 아직은 의심하지만 (이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의심하지 않으면서.(나를 위해서,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가족은

혼자 떠난 여행에도 함께 하게 만든다.

나를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계속 좋은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이제는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6. 모든 자식의 안부를 위한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