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친구란 나의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자

(혼자라고 생각말기 – 김보경)

by 피알봇

15. 친구란 나의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자

(혼자라고 생각말기 – 김보경)


지치지 않기 포기하지 않기 어떤 힘든 일에도 늘 이기기

너무 힘들 땐 너무 지칠 땐 내가 너의 뒤에서 나의 등을 내줄게

언제라도 너의 짐을 내려놓아도 된다고 혼자라고 생각말기 힘들다고 울지 말기

너와 나 우리는 알잖아



당신에겐 없길 바란다.

너무 화가 나서 왈칵 눈물이 나게 하는 사람, 당장 내일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뭐든 걸 패대기치게 하고 싶었던 사람, 내가 바닥으로 갈 때 너도 같이 끌고 가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게 한 사람.


이런 사람을 살면서 만나지 않는다면 너무 축하할 일이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나랑 다른 사람이 아닌, 내 기준에 허용되지 않는 '틀린' 사람들을 만나서, 부대끼는 과정에서 종종 때때로, '흑화'되는 순간이 온다. 나에게는 커리어고 나발이고 그저, 이 상황에서 너한테 사표만 던질 수 있으면 다 감당하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사람이 있었고,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는 사람을 마주할 때는... 생각했다. 누군가가 잘못되게 기도하는 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땐 생각했다.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저 새끼 진짜 똑같이 누군가에게 당해봐야 하는데, 너 같은 놈 만나라고.


그때, 나는 화가 나있었다.

변하지 않은 조직이나, 눈치를 보면서 나에게 아직도 '너의 일'이라는 논리적인 구조를 만들어서 업무를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아가지 못하는 나한테 화가 나고, 분명히 선을 긋지 못하는 나한테 화가 나고,

이렇게 지쳐서 언젠가는 마음이 망가질지도 모르는 나한테 화가 나 있었던 시절.

누구보다 나를 아끼는 마음에 누구보다 애달파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동기랄 것도 없는 상황에서 큰 부서마다 한 명씩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끼리 친해져서,

우리끼리 서로의 동기가 되고 선후배가 되어 힘든 순간에 위로를 나누고,

업무를 할 때는 정보를 나누며 돈독해졌던 그 시절의 시간을 함께 기꺼이 공감해 준 사람들을 얻었다.


바르고 싶고 반듯하고 싶고 누군가 힘든 이가 있으면 손을 내밀 정도의 여유는 있었으면 좋겠고,

감사한 것에는 꼭 고맙다고 고개 숙여 인사할 줄 아는 사람이길 바라고,

노력 없이 얻게 되는 것과 노력보다 과학 결과도 부담을 느끼는 '나라는 인간의 복잡함'을

너무 잘 이해해 주는 친구들. 나의 사람들.


그들은 고집과 아집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나의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자인 동시에 나의 슬픔을 적절하게 나눠서 구석구석 숨겨주고,

슬픔에 적당한 양념을 쳐줘서 웃음으로 승화시켜주기도 한다.

내가 지금의 슬픔에 집중할 때, 늘어난 내 체중과 이로 인한 피부 노화가 더 큰일이라고 미래지향적이고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화두를 던져줘, 기존의 슬픔을 잊게도 해준다.

둥글둥글을 외치지만 싫은 사람한테는 꼭 티 나게 한마디 하는 '나'란 사람과

나의 기존 성향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게 된 자기 방어심리가 적절하게 섞여 자꾸 업그레이드되는

'새로운 나의 자아'를 낯설어하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들여주며, 단단하게도 뿌리내리게 해주는 대지가 되어 주기도, 안전하게 여행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내 길을 찾아주는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학창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나의 친구들에게는 나의 순수했던 모습은 물론 연애, 취업 과정 과정 나의 흑역사를 포함한 인생의 변천사를 함께 지켜봐 줬기 때문에 내 삶의 굴곡 앞에서도 부끄럽 없이 바닥을 보여줄 수 있다. (표출했다... 가 맞는 표현이겠지...) 서류에 떨어져서, 면접에 떨어져서. 이번 면접은 3차까지 있어서 3차까지 올라가는 동안 이미 내 회사라는 애사심이 내 마음에 한가득 생겨버렸는데 최종에서 선택받지 못하고 마음이 허전해서 방황하는 '그 시절의 나'가 보고 있을 때 나를 탈락시킨 기업의 가장 큰 안티팬이 되어 주었고, 술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취하고 싶어 사이다만 2캔 원샷하는 나의 질척거림을 함께 해주며 내 성장을 같이 공유한 사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료에서 시작해 친구는 짧은 시간,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사회생활이란 접착제로, 사회생활이 만들어주는 흑역사로.

직장생활 긴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관람할 수도 있고, 차라리 몸개그가 나을 나의 맨땅에 헤딩을 실시간 메신저로 공유받는 이들인 만큼, 나의 밥벌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부침과 고단함을 위로받고 하소연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된다.

그들에겐 가장 강력한 강점이 있는데, 내 조직의 돌아이를 말하기 위해 부연설명을 적게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점! 회사생활의 기본 정보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서럽고 속상한 마음을 토로할 때, (뒷담 화할 때) 사전 예열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000 직책은 곧 승진을 앞둔 사람이니 업무를 과하게 펼치는 사람,

000 직책은 승진을 하고 바로 보직을 받은 사람이니 업무를 최소로 하고 싶은 사람,

000 직책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에 보직을 받기 어려우니 예민한 사람... 등


이니셜로 간단하게 말해도 전후상황을 알아듣고, 혹시 본인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격렬하게 공감대를 형성하며, 뒷담 화할 때, 사전브리핑 시간을 줄여서 알차게 나의 섭섭함을 토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직장 동료고 시작했지만, 하루의 가장 긴 시간을 근무라는 환경으로 같이 공유하게 되면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가정이 늘어나는 일, 생로병사 속 애사와 경사를 모두 공유하며 나의 절친이 되고, 서로가 회사를 떠나도 그저 '친구'라는 이름으로 내 인생에 함께 하게 된다.


직장도 사람이 사는 곳이지만, 가끔... 너무 정글 같거나 너무 사막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에도 출근을 하는 건,

너무 화가 날 때는 메신저 한 번으로 숨을 돌리고,

신입의 대답이 기가 찰 때는 잠깐 티타임으로 내 멘털을 다잡고,

사랑으로 상처받았을 때는 서로 소개팅을 알아보고,

사람들이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체중이 늘어 트렌치의 팔뚝 부분이 땡땡해지는 걸 손가락으로 찔러보며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직언할 수 있는 진짜 친구가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월급 받으려고 직장 다닌다는 말이 있다.

물론 맞다. 내가 업무를 사랑하고 잘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월급을 많이 받을수록 회사에 대한 애정도 커지는, 역학관계를 발견하고 있다.

이런 나를 알아가고 배워가는 과정에 참관자, 응원하는 관중이 되어 주는

나의 사회친구, 회사친구에게

덕분에 어떤 결정의 순간에도 외롭거나 지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보낸다.


내 친구의 어깨에 올려져있을 내 슬픔의 한줌만큼 친구 한숨의 한자락, 나의 애코백에 담아서 친구의 가슴에서 덜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아는 것을 티 내지 않고, 힘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지 않지만

누구라도 함께 근무하고 싶은 실력을 가진 친구 아버지의 부고를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다. 평상시 (업무를 하면서 필요한 내용들은 차근차근 말하지만) 조용한 성격의 친구이고, 부고를 전하는 일조차 누군가의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할, 결벽증을 알기에 다음 날 오전 발인이라는 말을 듣고 청바지에 검은 쟈켓 차림이지만 회사에 반차를 쓰고 장례식장으로 나섰다.

그저, 그 친구가 빈소에서 외롭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친구를 통해 전해 듣기만 했던 친구의 아버지에게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나라도 빈소에 앉아있어 줘야겠다... 부디 장례식장에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 싶은 욕심에.


현장에 도착해 보니, 참전용사셨던 친구 아버님의 친구들이 가득, 자리를 채워주셨다.

상주가 외로울까 봐, 떠나는 친구가 상주들 걱정에 마음이 무거울까 봐.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바꿔가며 한가득 자리를 채워주셨더라.


친구가 알리지 않아도 알음알음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와서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을 보며

불안한 마음에 부지런히 회사에 반차를 내고 기차를 타고 달려간 우리 모두, 서로가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상주가 정신없이 손님을 맞이하면 눈치껏 손님들을 상으로 안내하고, 자리가 없다 싶으면 안면 있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붙이고 넓히면서.


손님들이 많이 오셔서 자리를 어서 내어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조용히 일어나서 나오니, 상주가 슬리퍼를 신고 급하게 따라 나왔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만난 이후 처음으로 울기 시작했다. 병원의 장례식장 복도에서, 그제야 보이는 눈물.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평생의 어버이를 여의는 일은 너무 아프고 슬픈 일이고, 상주의 책임감으로 내내 의연하게 버텨왔을 그 어깨가 잠깐 떨렸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힘든 순간에 생각나는 친구였고, 불쑥 연락을 해도 누구보다 서로를 반겨주던 사이.

서로의 커리어를 응원하고, 이직을 고민하는 순간에 누구보다 솔직하게 나의 고민에 진심을 담아 답해줬던 친구. 회사친구, 사회친구라는 수식어 없이 이제는 그저 '내 친구'의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돌아오는 내내 우리 모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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